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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회담 취소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탄도미사일'이 아니었다

일단은 다행스러운 신호다.

  • 허완
  • 입력 2018.05.25 12:21
  • 수정 2018.05.25 17:46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이후 북한이 내놓은 첫 반응은, 다행스럽게도, 격한 비난이나 탄도미사일 발사가 아니었다. 이에 따라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논의가 재개될 여지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25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위임에 따라’ 발표한 담화에서 ”우리는 항상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아무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고 덧붙였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를 전격 발표한 다음날 아침 비교적 신속하게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도 회담 취소를 발표하면서도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알려 달라’고 밝힌 만큼, 북한과 미국이 내놓을 후속 입장 및 조치에 따라 얼마든지 회담이 다시 열릴 가능성도 생긴 것으로 보인다. 

ⓒKCNA KCNA / Reuters

 

북한이 ‘크게’ 한 걸음 물러났다

김계관 제1부상이 발표한 담화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애초 회담을 수락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용단”을 추켜세운 부분이다. 또 미국이 제시한 비핵화 방법에 대해 ”은근히” 기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시기 그 어느 대통령도 내리지 못한 용단을 내리고 수뇌상봉이라는 중대사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데 대하여 의연 내심 높이 평가하여왔다”고 밝혔다. 

김 제1부상은 ”또한 (비핵화 해법에 있어) ‘트럼프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쌍방의 우려를 다같이 해소하고 우리의 요구조건에도 부합되며 문제 해결의 실질적 자용을 하는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하였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 사유로 지목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 담화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기도 했다. 최 부상의 담화는 ”일방적인 핵폐기를 압박해온 미국 측의 지나친 언행이 불러온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 

이같은 메시지는 앞서 북한이 미국의 ‘일방적 핵폐기 강요’를 맹비난하고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 맛보게 할 수 있다”고 위협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보여준)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을 회담 취소 이유로 제시한 것에 비춰보면 북한이 비교적 신속하게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KCNA KCNA / Reuters

 

회담 취소 직후, 일각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 등으로 격하게 반응하고, 이에 대해 미국이 제재·압박을 강화하면서 더 나아가 군사행동까지 검토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과거의 사례들을 보면 이런 경우 북한도 물러서지 않고 거칠게 맞대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북한이 일단 크게 한 걸음 물러나면서 대화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연합뉴스에 ”북측이 이번 담화를 통해 대화 여지를 열어두고 있어서 단기적으로 형성된 북미간의 상호 불신을 걷어내면 만남이 재개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적어도 북한은 협상을 깨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라며 ”간극이 있는 아젠다 조정도 가능하다는 의지를 담아 전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협상 테이블을 뒤엎지는 않겠다는 의지는 김 제1부상의 담화에도 잘 나타난다. ”(회담 취소라는) 불미스러운 사태는 역사적 뿌리가 깊은 조미적대관계의 현 실태가 얼마나 엄중하며 관계 개선을 위한 수뇌상봉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트럼프의 ‘도박’이 통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누구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결정이 미국의 입장에서는 ‘까칠게’ 굴던 북한을 돌려세운 형국이 됐다. 또 북미정상회담의 주도권이 미국에 있음을 대내외에 확인시킨 계기가 됐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는 나름의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흥적 트윗이나 원고에 없던 돌출 발언이 아니라, 직접 서명까지 남긴 공식 문서로 회담 취소를 발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3일 밤과 24일 오전 사이 이 결정을 논의하는 과정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메시지의 톤이나 시점상의 파격을 빼고 보면, 내부적으로는 나름의 절차를 거쳐 메시지를 다듬었다는 뜻이다.  

물론 이번 결정의 배경에 대한 분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책 ‘협상의 기술‘을 함께 쓴 토니 슈워츠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에고’를 지키기 위해 회담을 취소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그는 ”트럼프에게는 심한 창피를 당하고 부끄러워지는 것에 대한 병적인 공포가 있다”며 ”이건 누가 가장 세고 강력한 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약하고 초라해 보이게 될 가능성에 지극히 민감하다. 트럼프로선 그보다 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란 없다.”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회담이 재개될 경우 미국으로서는 한층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삐딱하게 나오면 회담을 취소할 수도 있다’는 걸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줬기 때문. 이는 본격적인 비핵화 방법에 대한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미국 내의 비판을 잠재우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동안 미국 내에서는 ‘너무 성급하게 회담 제의를 수락했다‘는 비판이나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 구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의 회담 취소에도 북한이 변함없이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나설 의지를 밝힌 것은 북한이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설 뜻이 있음을 보여준다. 대화가 재개되기만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합의가 성사될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일각에서는 북한의 이번 담화에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응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 서명까지 남긴 서한을 보냈듯,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답장’을 해야 한다는 것.  

″혹여라도 이 중요한 정상회담에 있어 마음이 바뀌신다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전화나 편지를 주시기 바랍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북한은 비교적 신속하게 달라진 태도를 취했다. 아직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우려했던 것보다는 상황이 나쁘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외교를 되살릴 시간은 아직 남아있다”며 이렇게 적었다.

″북한의 위협을 해결해야 할 시급성을 받아들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잘한 것이다. 북한의 핵물질과 핵무기, 미사일 및 핵 실험 시설을 제거하겠다는 그의 전반적인 목표는 옳다. 그것을 달성하는 데는 인내와 양쪽의 양보가 요구된다는 점은 분명하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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