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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단독주택 공시가격 시세의 70%까지 끌어올린다

조세 형평에 대한 무제가 제기됐었다

ⓒ한겨레

고가 단독주택과 상가 등의 공시가격이 실거래가의 50% 수준에 그쳐 보유세가 제대로 부과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가 단계적으로 부동산 공시가격을 실거래가의 70% 이상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 고가 아파트일수록 실거래가 반영률이 떨어지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도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올 하반기 이런 내용을 포함한 ‘부동산 가격공시 제도 개선 5개년 로드맵’을 마련해 발표할 방침이다.

23일 국토교통부 고위관계자는 <한겨레>에 “부동산 가격공시 제도에 대한 근본적 개선을 위해 5개년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다. 큰 틀에서 투명성과 객관성, 형평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세부 계획을 짜고 있다”고 밝혔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의 세금을 물리는 기준이 되며, 국토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해마다 한차례씩 발표한다. 내년부터 실거래가 반영률이 낮은 부동산의 공시가격을 점진적으로 끌어올려 조세 형평성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국토부와 한국감정원 등의 담당자 말을 종합하면, 로드맵에는 실거래가 데이터가 부족한 단독주택이나 토지의 시세를 파악하기 위해 연간 40만~50만건에 이르는 민간 감정평가 자료를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연간 60만건가량의 실거래가를 가격 산정에 활용하는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의 경우 활용 가능한 자료가 약 4만건에 불과하다”며 “전문가들이 평가한 감정가를 활용하면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조사·산정보고서 등 관련 자료와 가격 산정 기준 등을 공개하는 방안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현재 시세반영률이 70%대 안팎인 아파트 공시가격도 좀더 현실화할 방침이어서, 향후 아파트와 단독주택 모두 시세반영률이 80%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로드맵이 마련되면, 고가 주택들의 보유세 부담이 종전보다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다음달 말 보유세 개편에 대한 권고안을 낼 예정인 가운데, 이와 별도로 국토부가 공시가격 산정 체계부터 바로잡겠다는 의도다. 국토부는 세부계획을 마련한 뒤 공청회 등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가 이런 조처에 나선 배경은 공시가격이 실제 시장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고가 주택일수록 시세반영률이 떨어지는 등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는 논란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단독주택 공시가격의 시세반영률은 40~50% 수준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최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시세가 498억원으로 추정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소유 주택(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올해 공시가격은 261억원(52.4%)이다. 공시가격의 시세반영률이 아파트 수준인 70%라면 6억1천만원가량(주택 1채 보유 가정 때)의 보유세를 내야 하지만 현 공시가격 기준으로는 4억3천만원을 내면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7년간 보유하다 지난해 67억5천만원에 매도한 강남구 삼성동 자택의 당시 공시가격은 27억1천만원으로 시세반영률은 40.1%에 불과했다.

토지의 공시지가와 건물의 기준시가를 따로 매기고, 세금도 따로 부과하는 비주거용 부동산은 반영률이 더 낮다. 경실련이 서울에서 5대 재벌이 소유한 비주거용 부동산 가격을 조사한 결과 시세반영률은 40%에도 못 미쳤다. 공시가격 합산 4조9315억원(토지 3조6617억원, 건물 1조2699억원)인 잠실 제2롯데월드의 시세는 11조8375억원으로 추정돼 시세반영률이 41.7%에 그쳤고,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공시가격 8155억원, 추정 시세 2조3180억원)의 시세반영률은 35.2%에 불과했다. 비중이 큰 토지의 공시지가가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비해 단독주택이나 토지 등은 거래가 적어 시장가치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영률이 낮다는 것이 정부 쪽 설명이다. 아파트의 경우 연간 80만건가량 거래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실거래가를 같은 단지 내 다른 아파트들에도 적용할 수 있어 시장가치를 파악하기에 수월하다. 부동산 가격공시 제도는 시장가치와 동떨어진 과세표준을 현실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토지에 대한 공시제도는 1989년부터 도입됐고, 주택은 2005년 도입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시가격 제도가 처음 도입될 당시 충격을 우려해 매우 낮은 수준에서 시작했다. 공동주택은 그동안 많이 끌어올렸지만, 단독주택과 토지는 아직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공동주택 사이에서 고가 아파트와 저가 아파트 간 형평성을 맞추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가격이 빠르게 오르는 강남권 고가 아파트는 공시가격이 시세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해 저가 아파트와 격차가 갈수록 벌어진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주공2단지 아파트(전용면적 44.52㎡)의 시세반영률은 72.4%(실거래가 2억1천만원, 공시가격 1억5200만원)인 반면,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전용면적 76.79㎡)의 시세반영률은 62.9%(실거래가 14억5천만원, 공시가격 9억1200만원)로 10%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난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장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세부담을 조절하기 위해 공시가격 자체에 개입하는 대신, 공시가격은 시세를 투명하게 반영하고 세부담은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산세의 경우 법에서 정한 표준세율의 50% 범위 안에서 세율을 지자체에서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고, 종부세의 경우에는 세액이 전년도의 50%를 넘지 못하도록 상한을 정하고 있다. 김 팀장은 “정부의 개입 없이 객관적인 가격 산정만 이뤄져도 형평성은 자연스럽게 제고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시가격의 활용 범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현재 공시가격은 생계급여 수급 기준이나 건강보험료 부과 등 60여가지 행정 목적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최근 수년 사이 공시가격이 급등한 제주의 경우 생계급여 수급자격에서 탈락하는 저소득층이 잇따르는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정수연 제주대 교수(경제학)는 “근본적으로 공시가격을 과세 외에 여러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문제”라며 “행정 목적에 맞는 지표를 마련하거나 공시가격에 따라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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