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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에 대한 잘못된 믿음 7가지

가장 문제가 큰 잘못된 믿음들이다.

ⓒMAHMUD HAMS via Getty Images

이스라엘 건국 70주년 하루 전인 5월 14일, 트럼프 정권은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약속을 실행에 옮겼다. 서안과 가자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스라엘군이 발포하여 어린이 등을 포함한 팔레스타인인 60명 이상이 사망했고, 3000명에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전문가, 정치인, 일반 시민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오래된, 문제가 있는 시각을 가지고 벌어지는 대화가 많다. 가장 문제가 큰 잘못된 믿음 7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이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싸워왔다.  

가장 자주 반복되는 부정확한 믿음이다.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은 오래전부터 싸워온 게 아니다. 그 시작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보다 정확히 말하면 세계 1차 대전 후 영국 위임 통치 기간부터다. 그들의 싸움이 오래되었다는 주장은 역사적으로 부정확할 뿐 아니라, 이 이슈가 해결이 불가능하고 곤란한 일이라는 프레임이 된다. 게다가 아랍인들이 야만적이고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라는 오래된 생각을 강화하는 일이다.

 

2. 종교분쟁이다. 

이 역시 부정확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모두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다. 무슬림이 다수이지만, 팔레스타인 커뮤니티에는 늘 무슬림, 크리스천, 유대인들이 있어왔다. 오토만 제국 말기에 시오니스트들이 이주하여 정착하기 전의 역사적인 팔레스타인에는 종교적 다양성이 있었다. 유대인들의 이주가 시작되고 나서도 시오니스트 정착자들은 주로 세속적인 사람들이었고 원래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건 역사적 정확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분쟁이 종교 분쟁이라고 해버리면, 우리는 서로 다른 경전을 쓰거나 해석을 달리하는 똑같이 독실한 두 집단이 싸우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기 쉽다. 간단히 말해, 이건 종교 문제가 아니다. 외부에서 온 정착자들이 원주민이 살고 있던 땅에서 토지 강탈, 추방, 인종 청소를 벌여서 생긴 문제다.

  

3. 아주 복잡한 문제다.

확실히 복잡한 면도 있다. 한 세기 이상 충돌이 계속되다 보니, 다양한 진실 주장, 정책, 해결책들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잡한 문제’라는 주장은 아주 단순한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으로 사용될 때가 많다. 그건 추방, 살해, 강탈, 투옥, 저령 당한 사람들이 70년 동안 괴로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분쟁을 보다 세세하게 이해할 필요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전혀 복잡하지 않은 요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4. 팔레스타인인들은 공정한 제안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이것은 땅을 도둑맞은 사람들에게 그 땅을 같이 쓰자고 제의하는 게 공정하다는 잘못된 전제를 깐 주장이다. 상대적으로, 실용적으로 봐도 이건 사실과 다르다. 1947년에 U.N.이 인구의 33%에 불과하고 땅의 7%를 소유한 유대인들에게 땅의 55%를 넘긴 것을 생각해 보라. 2008년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마흐무드 아바스 대통령과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전 총리가 협상을 시도했을 때, 인접한 팔레스타인 영토도 허락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둘러싼 싸움의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았던 것은 어떤가. 팔레스타인인들은 진정한 독립국, 비옥하고 풍족하며 안전한 국가를 제시받은 적이 없다.

 

ⓒIbraheem Abu Mustafa / Reuters

 

 

5. 팔레스타인인들은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아랍인들이 선천적으로 폭력적이며 비이성적이고, 전근대적이며 서구의 민주주의나 외교를 얻을 자격이 없다는 오리엔탈리즘적 주장이다. 잔혹한 점령과 억압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주장이기도 하다. 점령당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킬 법적, 도덕적 권리가 있다. 그들에게 저항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조용히 죽으라는 말과 똑같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평화를 원한다. 그러나 정의는 언제나 평화의 전제조건이다.

 

6. 이스라엘은 존재할 이유가 있다.

이 주장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하스바라’, 즉 프로파간다에서 나온 말이다. 첫째, 이 주장은 수사적으로 오직 이스라엘의 경우에만 나온다. 팔레스타인이나 기타 세계 다른 민족 국가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지지 세력들에게 팔레스타인이 추상적 개념, 실제 공간, 독립국가로 ‘존재할 권리’를 선언하라고 꾸준히 요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주장은 보다 근본적인 진실을 덮는 말이다. 존재할 권리가 있는 국가란 없다. 사람만이 존재할 권리를 가진다. 민족 국가가 ‘존재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우리는 이스라엘의(혹은 모든 이주자-식민지) 기원에 대해 도덕적으로 비난할 능력이 약화된다.

국가가 존재할 자연권을 갖는다면, 국가가 땅을 습득하고, 기존 주민들과 교류하고, 국제 및 국내법에 관여하는 수단들에 도전하기가 힘들어진다. 존재할 권리가 있었다는데, 어쩌겠는가? ‘존재할 권리’ 주장은 민족 국가가 비교적 새로 생긴 정치적 상상의 구조라는 사실을 은폐하며 민족 국가를 구체화한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는 존재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 반역사적이며 부정직한 것이다.) 또한 이 주장은 세계를 다른 식으로 상상하고 다른 정치적 구조를 생각할 능력을 해친다. 현재는 이스라엘이 된 역사적 팔레스타인을 인종, 계급, 젠더, 종교와 무관하게 모든 시민들이 살 수 있는 하나의 민주 국가로 재구성하는 걸 꿈꿀 수도 있는 것 아닌가.

 

7. 당신은 반유대주의자다!

반유대주의는 전세계에 실재로 존재하는 현상이다. 반유대주의가 나타날 때마다 우리는 그를 지적하고 파괴해야 한다. 그러나 민족 국가 이스라엘의 행동을 비난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을 전부 반유대주의자로 몰아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반유대주의 주장은 대화를 끝내버리려고 던지는 반사적 공격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것은 시오니스트 전략의 핵심이다. 유대교를 시오니즘, 이스라엘 국가 자체와 동등하게 놓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이스라엘 비판은 곧 유대교 비판이다. 이런 주장은 유대 전통이 정의와 공정함을 추구한다는 점 역시 무시하고 있다. 유대 전통의 원칙은 이스라엘 정부의 행동과는 근본적으로 정반대다.

이 지역에 평화, 정의, 자유를 불러 오기 위한 대화를 나눌 때 이런 점들을 인식하고 더 깊고 의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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