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8년 05월 18일 16시 30분 KST

당신의 딸이 입는 페미니스트 티셔츠는 왜 문제인가

페미니즘의 엄니를 빼고 싸구려 트렌드로 잔뜩 팔아먹는 짓이다.

Melodie Jeng via Getty Images

내겐 10살인 딸이 있다. 그래서 나는 지난 10년간 어린이 패션의 젠더 분열을 내내 목격해왔다. 아이가 어리던 조지 W. 부시 대통령 임기 후반에는 거의 핑크색과 파란색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버락 오바마 정권 시절엔 디즈니의 공주 의상이 매장에 쫙 깔렸다. 어렸던 내 딸이 거기에 혹했던 것 같지는 않다. “어떤 공주를 제일 좋아하니?”라는 끔찍한 질문에 내 딸은 늘 “내가 좋아하는 공주는 레아 공주 뿐이고, 레아 공주는 국회의원이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자랑스러웠다. 고결한 척하는 어머니만이 그럴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여성 대선 후보가 등장한 이래, 그 후보가 일반 투표에서는 승리했으나 대선에서는 패배한 이래, 아동복 제품들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늘 있어왔던 유니콘과 이모티콘 옷은 계속 나왔지만, 걸 파워에 영향 받은 옷들도 많아졌다. 공주들은 성 대신 걸 파워를 선택했다. 그러나 내가 느낀 것은 내 딸이 입을 수 있는 옷이 많아졌다는 기쁨보다는 혼란이었다.

올드 네이비 이번 시즌을 보라. 올드 네이비는 미국에서 그 어느 곳보다 노골적인 이미지가 담긴 티셔츠를 더 많이 판다고 말한다. 소녀들은 “세상을 바꾼다”, “세상을 움직인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소년들은 그저 “느긋하게” 있고 싶을 때가 아니라면 “야수를 풀어놓는다”.  물론 올드 네이비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남성이 우세한 강력한 프랜차이즈에서 선택할 수도 있다. 바로 스포츠 팀과 슈퍼히어로다.

아무 매장이나 찾아가 보라. 면에 실크 스크린으로 출력된 비슷한 메시지들을 잔뜩 발견할 수 있다. 소녀들은 세상을 바꾸고 긍정성을 보인다. 소년들은 즐겁게 놀거나 슈퍼 히어로가 된다. 이것이 젠더에 따른 생득권이다. (타깃은 다른 소매점들과는 달리 과학과 예술, 다정함과 다양성의 메시지를 담은 남아 티셔츠를 판다.)

내가 짜증을 내고 있다고 보인다는 건 안다. 만족할 줄을 모르는 여성으로 보일 것이다. 멋부린 공주들이 프린트된 옷이 아닌, ‘세상을 움직인다’는 티셔츠를 입은 소녀들이 많다는 건 분명 진전이다. (옛 바비나 다름없는 ‘겨울왕국’의 가짜 자매애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그냥 잊어버리라, 즉 ‘렛 잇 고’하라고 당신은 내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 노래는 어디에서나 들려온다!)

핑크와 파란색으로 양극화되었던 어린이 옷 시장은 소녀들이 방어적으로 ‘규칙’을 강조하고 소년들은 ‘느긋하고 멋지게’ 있을 수 있게 바뀐 것만은 아니다. 세상이 엉망진창이고, 우리가 소녀들에게 세상을 고치라고 하고 소년들에겐 공놀이나 하라고 하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물론 부모 세대가 저지른 잘못을 해결하는 건 초등학생들의 몫은 아니다. 적어도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이 셔츠들은 내 아이가 근본적으로 불평등하다고 보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행동을 취하고, 이런 옷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실제 걸 파워를 얻는 것과도 동떨어져 있다.

대기업이 파는 이른바 ‘힘을 주는(empowerment)’ 티셔츠를 구입하는 것이 정치적 행동이라고 느끼는 부모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어머니들이 그럴 것이다. 쇼핑은 주로 어머니가 하니까.) 그건 자본주의의 제다이 마인드 트릭일 뿐이다. 페미니즘의 엄니를 빼고 싸구려 트렌드로 잔뜩 팔아먹는 짓이다. 저항? 스팽글 장식을 단 밋밋한 슬로건을 달아서 도매가로 팔 수도 있다.

내 옛 스승들에 의하면 자본주의와 아이러니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이번 경우, 우리는 실크 스크린 걸 파워의 득세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70년대 중반, 한 급진적 페미니스트 서점(반 자본주의적이었지만 그건 사실 말할 필요도 없다)은 ‘미래는 여성이다’(The Future Is Female)이라는 문구가 인쇄된 티셔츠를 팔았다. 레즈비언 분리주의 운동의 메시지였다.

2015년에 브루클린의 한 매장이 이 셔츠를 다시 만들었다. 수입의 4분의 1은 가족 계획에 기부했다. 세인트 빈센트부터 카라 델레바인 등 유명 레즈비언들이 이 셔츠의 사진을 찍었고, 뉴욕 타임스 스타일 기사에 실렸고 여러 복제품도 나왔다. 디오르는 모델들과 제니퍼 로렌스를 동원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750달러짜리 티셔츠를 입히고 패션 쇼와 고액 광고 캠페인을 펼쳤다. 패션 잡지들은 디오르에게 존경을 표했다. 패스트 패션도 그 뒤를 따랐고, 걸 파워는 곧 체형을 불문하고 모든 여성들에게 있어 입고 버릴 수 있는 필수 패션이 되었다.

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작가 앤디 자이슬러는 여성 친화적 구매와 정치 사이의 긴장에 대한 꼭 필요한 책을 썼다.’우리는 한때 페미니스트들이었다(We Were Feminists Once: From Riot Grrrl to CoverGirl®, the Buying and Selling of a Political Movement)’라는 적절한 제목의 책이다. 여기서 자이슬러는 재미있고 기분이 좋은 것들을 파는 ‘장터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행동의 일에서 정치성을 제외한다고 말한다. 페미니즘 행동 자체는 보통 재미있지도, 기분이 좋지도 않은데 말이다.

“페미니즘이 재미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늘 그게 문제였다. 재미있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복잡하고 어렵고 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든다. 페미니즘이 맞서는 근본 이슈는 임금 불평등, 노동의 젠더에 따른 분열, 제도적 인종 차별과 성 차별, 구조적 폭력, 또한 신체 자주성이다. 이건 굉장히 섹시하지 않다.” 자이슬러의 글이다.

우리 페미니스트들이 산통을 깨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는데는 이유가 있다. 즉, 투쟁은 기쁨이 아니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나는 내 아이가 평범한 기쁨을 알길 바란다. 또한 힘든 페미니즘 작업 및 자신의 여성성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갑자기 퍼진 재미있는 티셔츠가 여성의 권력을 최소한 명목상으로는 표준에 가깝다고 주장하기는 해도, 그것이 페미니즘의 지난한 노력이 아니란 것을 알기는 해야 한다.

모든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에게 임신 중절이 무엇인지 가르치려 하지는 않는다. 내 딸은 2017년에 여성 행진에 처음으로 참가해 여성의 선택권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설명해 줄 때까지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티 댄싱’과 포즈 버튼이 이 가르침을 주는데 꽤 유용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딸은 내 어머니가 준 보라색 낙태 찬성 티셔츠를 입는다. 직접 선택한 걸 파워 셔츠다. 그 이유도 이해하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소녀들과 여성들에게 실제로 힘을 부여하는 일에 마법 같은 요소는 없다. 대부분의 패션 프로듀서들, 최소한 한 곳의 티셔츠 생산자는 아마 올해에 소녀들에게 유니콘이 되라고 말했을 것이다. 소녀들에게 유니콘이 되라고 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실제 소녀들이지 유니콘이 아니다. 물론 나는 내 딸이 이모티콘 티셔츠(난 도무지 못 참아주겠다)보다는 ‘세상을 움직인다’ 티셔츠를 입은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 옷들의 메시지들이 우리의 문화가 예전부터 주지 못하고 있던 자존감, 야망, 존엄을 전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정말 소녀들이 세상을 움직이게 하고 싶다면, 우리는 그런 메시지들이 유니콘이나 이모티콘으로 전락하게 둬서는 안된다. 우리는 소녀들(과 소년들)이 슬로건이 적힌 셔츠를 입는 것 이상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 과정에는 힘들고 섹시하지 않은 일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내 딸은 아마 레아 공주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잠옷 차림으로 공주 행세를 하는 일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