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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입는 옷을 만드는 여성들에게 재앙이 다가온다

허프포스트가 직접 자카르타를 방문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김도훈
  • 입력 2018.05.18 15:29
  • 수정 2018.05.18 17:51
ⓒELISABETTA ZAVOLI FOR HUFFPOST

대도시 자카르타의 교외에 있는 의류 공장에서 벨이 울린다. 9시간 교대 근무 시점을 알리는 벨이다. 이스티야로는 로커에 넣어둔 짐을 찾으러 서두르며 “오늘은 잔업이 없다.”고 말한다.

찌는 듯한 늦은 오후, 노동자들이 서서히 공장 밖으로 나온다. 대부분 여성들로 구성된 이들은 점점 불어나고 대화 소리도 커진다. 이스티야로(보통 이스티라고 불린다)는 먼 출구까지 가는 밴 한 대에 올라탄다.

알록달록한 머리 두건을 쓰고 키득거리는 십여 명의 다른 여성들 사이에 끼어 탄 이스티야로는 오늘의 일이 어땠는지 들려준다. “한 시간에 셔츠 80벌의 어깨에 더블 스티치를 했다. 가끔은 목표를 맞추기가 힘들다.” 한숨 돌리고 있지만 피곤하다.

올해 35세인 이스티는 200만명이 넘는 인도네시아 의류 업계 종사자 중 하나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며, 10대 의류 수출국에 속한다. 인도네시아는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 등 다른 동남아 개발도상국에 비해 의류 산업 의존도가 덜한 편이지만, 인도네시아 의류 노동자의 약 60%가 여성이다.

U.N. 국제노동기구는 아시아의 노동자 수백만 명에게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자동화, 로봇, A.I. 때문이다. 이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게 될 노동자들 역시 여성이다.

인도네시아의 여성 노동자들은 H&M, 자라, 아디다스, 나이키 등에 저렴하고 신속하게 공급하는 방대한 전세계 공급 체인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 중 하나다. 세계가 패스트 패션에 굶주려 있기 때문에 이스티 같은 여성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전세계 의류 업계는 2020년에는 1조650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2011년에 비해 60% 성장한 수치다. 수요가 이렇게 늘어나면서, 생산의 가속화 및 최적화를 위한 새롭고 높은 수준의 자동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기에는 임금이 워낙 싸서 업계 전반의 혁신이 저해되었다.” 국제노동기구의 게리 린하트의 말이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나며 근로 조건과 임금이 서서히 개선되었다. 이제 의류 업계는 갈림길에 서 있다. 자동화를 통해 비용을 다시 낮추고 유례없이 빠른 생산 속도를 달성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일자리의 상당 부분, 혹은 전부를 대체할 수 있는 자동화 기술이 이제 존재한다. 임금이 결정적 요소가 아니게 되는 게 언제일지가 문제이다 … ‘언제’의 문제이지, ‘과연 그렇게 될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목격해왔듯,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 린하트의 말이다.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국제노동기구는 말하고 있지만, 아시아 국가들과 힘없는 노조들은 이런 경고들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의류 업계 노동자들은 변화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걱정된다. 나는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다.” 이스티의 말이다.

 

밴이 멈춰선다. 이스티는 시끄러운 골목을 15분 걸어 집으로 돌아간다. 다른 여러 의류 노동자들처럼, 이스티의 집은 0.55제곱미터짜리(주: 약 2평) 덥고 좁은 방이다. 이웃과의 벽은 얇디 얇고, 월세는 25달러다.

금속 지붕 아래 간이 주방, 옷이 단정하게 정리된 플라스틱 옷장 두 개, 재봉틀, TV, 이스티가 매일 밤 펴는 매트리스가 있다. 크리스마스 조명 한 줄과 두 딸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그녀에겐 소중한 장식이다. 사진 속에서 11세의 딸은 무용복을 입고 있고, 17세의 딸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이스티의 딸들은 먼 곳에서 이스티의 부모가 키우고 있다. 이스티는 매달 받는 250달러의 월급으로 가족 전부를 부양한다. 동남아 대부분 지역에 비해 높은 임금이지만, 자카르타의 생활비 역시 높은 편이다.

7년 전 이스티의 세계는 지금과 아주 달랐다. 전업주부로 생활했고, 남편이 길에서 닭고기 볶음밥(나시 고렝)을 팔아 가족을 부양했다. 그러나 폐렴 합병증으로 남편이 사망한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스티는 딸과 떨어져 살며 일을 해야 하게 되었다.

 

ⓒELISABETTA ZAVOLI FOR HUFFPOST

이스티는 딸들만 행복하다면 자신도 괜찮다고 우기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진다. “이 문을 열 때면 나는 외롭다. 엄청난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안전하지 못하기로 악명 높은 업계다. 여러 여성들은 언어적, 육체적, 성적 희롱을 겪는다. 자동화를 통해 숙련직이 더 많이 생길 수 있고, 일부 노동자들에겐 공장 노동을 덜 위험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스티와 같은 여성들에겐 확실함은 적고 두려움은 넘친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제까지 이루어진 자동화의 상당 부분은 낡은 기계를 교체하여 생산을 최적화하고 지역 내의 치열한 경쟁에 적응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국제노동기구 조사에 의하면 인도네시아 기업의 35%는 2016년에 테크놀로지를 업그레이드했다고 한다. 동남아 평균인 27%보다 높은 수치다. 노동자들은 전반적으로 이런 변화를 반겼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자동화는 이미 일자리 감소를 불러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인건비는 인도네시아에서 자동화가 번지고 있는 여러 이유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전직 의류 공장 노동자이자 자카르타 북부의 세리카트 페케르자 나시오날 전국 노조 지도자인 로버트 시아기안은 이를 큰 문제로 본다.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내가 일했던 기업들은 컨설턴트를 불러 비용 최적화를 꾀했다. 그래서 그들은 절단기 등의 기계를 구입해 생산 과정을 자동화하고 직원들을 해고했다.”

그는 6년 전 생산량이 30% 이상 증가했는데 노동자 45명 중 9명이 해고되었던 부서가 있었다고 한다. 허프포스트는 당시 해고된 노동자 한 명을 만났다. 현재 자바 서부의 마을에 살고 있는 이스티코마라는 여성이다.

ⓒELISABETTA ZAVOLI FOR HUFFPOST

이스티코마는 “나는 현대적 기계들로 일하는 게 좋았다. 근무 조건이 개선되었고 우리는 더 정확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옆에서는 3살박이 아이가 놀아달라고 보챘다.

“하지만 기계가 도입되자 압박이 커졌다. 멋진 기계가 있으니 일을 더 많이 하라고 했다. 목표가 점점 높아졌다 …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야단 맞았다. 점심을 걸러서 병에 걸린 동료들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기계가 되길 원했다.”

이스티코마는 가끔 간식을 팔아 돈을 번다. 남편이 좋은 일자리가 있어 자신은 운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여성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그들 대부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정부는 준비를 해야 한다. 무료 훈련과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노조들은 자동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인정한다. 생산성을 높이고, 섬유 염색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유해한 화학 물질에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미리 계획을 잘 세워둘 필요가 있다.

“기업들은 우리가 준비할 수 있도록 새 기계를 사기 최소 2년 전에 미리 경고를 해주어야 한다.” 가르텍스 섬유 의료 노조 연합의 엘리 로시타 실라반의 말이다.

 

공장에 새로 도입되는 테크놀로지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레이저를 이용해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직물을 훨씬 더 빨리 자르는 기계도 있다. 기계가 다림질과 바느질을 하고 인간은 완성품을 싣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자카르타 서부의 탕그랑에 있는 팬 브라더스 스포츠웨어 공장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대시보드에는 노동자들의 목표가 그 날 그 날 뜨고, 쭉 늘어선 재봉틀들이 웅웅 움직인다. 그러나 ‘사진 촬영 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은 유리 벽 뒤에는 2주 전에 구입한 기계가 있다. 중국에서 2만 달러를 주고 산 것으로, 다운 재킷의 각 부분에 들어갈 깃털의 정확한 무게를 재고 골고루 펴는 기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게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손과 막대기를 사용했다.” 팬 브라더스의 마리시 조던 부팀장의 말이다. 이제 인력은 절반이 투입되고 생산성은 두 배로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도입될수록 필요한 인력 투입량은 점점 낮아진다. 미국 기업 소프트웨어 오토메이션은 수봇(Sewbot)을 만들어 큰 관심을 끌었다. 티셔츠 등 간단한 옷의 재단과 바느질을 다 해내는 기계다. 인간은 필요가 없다. 의류 기업 공급 체인을 크게 줄여 소비자들이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옷을 주문할 수 있게 하는 게 최종 목표다.

현재 수봇을 사용하고 있는 기업들은 거의 미국과 유럽 업체들이다.

소프트웨어 오토메이션의 팔라니스와미 라잔은 수봇이 의류 노동자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자동화는 “더 나은, 숙련직들을 위한 에너지를 자유롭게 할 것이며, 보다 복잡한 일에는 앞으로도 인간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애틀랜타 본사에서 전해왔다.

길게 보면, 로봇이 아시아의 의류 공장을 장악하게 될지의 여부는 이스티와 같은 여성들의 미래에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동남아에는 싼 노동력이 많으므로, 자동화가 기업에게 비용 절감을 가져다 주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릴 수도 있다. 자카르타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들이 외주 노동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집에서 절반 정도의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보장받는 권익도 적다.

인도네시아에서 일부 제품을 공급받는 패스트 패션 대기업 H&M은 업계의 미래를 “예측하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아시아 시장은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공급처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소매 시장이기도 하다.” H&M 대변인이 이메일로 전해왔다. 자카르타의 화려한 쇼핑몰을 가리킨 말이지만, 이스티로선 꿈에서나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에 팔리고 있다.

국제노동기구는 H&M 등의 대형 브랜드는 노동 조건 기준을 개선해 왔다고 밝힌다. 그러나 미국 노동자 권익 단체 연대 센터(Solidarity Center)의 동남아 지부장 데이비드 웰시는 대형 의류 기업은 노동자들을 우선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브랜드들은 각 시장의 역학 관계를 파악하고 통제하며, 의도적으로 착취하는 시스템이다.”

반면 소비자들은 인도네시아 의류 노동자들의 위태로운 위치를 대부분 모르고 있다. 업계에 대한 비판은 주로 방글라데시와 캄보디아 같은 국가들에 집중된다. 이들 국가는 의류 생산이 경제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며, 위험한 노동 조건과 낮은 임금이 전세계에 보도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자동화가 미치는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사람들에겐 심각한 결과가 생길 수 있으나, 의류 업계는 인도네시아 경제 전체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세계 매체와 소비자들은 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웰시의 설명이다.

작은 집에 돌아온 이스티는 딸들과 매일 하는 전화 통화를 얼른 하고 싶다. 일요일에는 공동 화장실을 청소한 뒤 이웃들과 달리기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너무 피곤해 인스턴트 국수 이상을 요리할 힘이 없다. 인도네시아 리얼리티 쇼 ‘카르마’를 시청한다. 등장 인물들은 자신의 행동들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한다.

“나는 내 가족이 나를 자랑스러워하길 바란다.” 이스티의 말이다.

ⓒELISABETTA ZAVOLI FOR HUFFPOST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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