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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17일 16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17일 18시 06분 KST

영화 '버닝'은 '실체없음'과 '이유없음'이 일으키는 분노를 그린다

실체없는 의심이 고통을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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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 아트하우스

*이 글에는 ‘버닝’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밑바닥으로 향한다. 손가락까지 잘린 채 간신히 벼랑 끝에 매달린 사람이 버티고 버티다가 탈진해 추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그의 영화다. ’밀양’의 신애(전도연)는 아이를 잃은 고통을 애써 삼켰지만, 누군가가 대신 유괴범의 죄를 용서했다는 사실에 폭주하고 탈진해버린다. ‘시’의 양미자(윤정희)는 아름다운 것만 보고 언어로 남기고 싶은 욕망과 손자가 저지른 추악한 죄 사이에서 탈진한다. 이들 영화에 비해 ‘박하사탕’의 탈진이 좀 더 보기 편했다면, 그건 밑바닥에서 시작해 주인공 영호가 탈진해왔던 과정을 역으로 목격하는 이야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 같은 이야기를 전해온 이창동 감독의 신작 제목이 ‘버닝’(Burning)이라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버닝’의 주인공 또한 자신을 반복해 태워가며 밑바닥을 향해 가는 인물이다. 단, ‘시’와 ‘밀양’, ‘박하사탕’등 그의 전작에서는 인물의 고통에 특정한 가해자(그게 자신일 수도 있고)가 있었다면, ‘버닝’에는 가해자가 없다. 고통을 느끼게 만드는 의심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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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원작은 미스테리 하나를 모호한 분위기로 던져놓고 끝난다. ‘버닝’은 그 미스테리에 끝까지 매달리는 남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종수(유아인)는 유통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어느날 그는 배달을 나갔다가 어릴 적 한동네에서 자란 해미(전종서)를 만난다. 해미는 종수를 집으로 초대하고, 자신이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 동안 집에 있는 고양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그날 해미와 섹스를 한 종수는 나름 로맨스에 젖어 해미가 없는 해미의 집을 오고간다. 그런데 얼마 후 돌아온 해미는 혼자가 아니다. 그녀의 곁에는 아프리카에서 만난 벤(스티븐 연)이 있다. 북한군의 대남방송이 들리는 파주 외곽의 허름한 농장에 사는 종수는 그때부터 포르쉐를 몰고 반포의 고급빌라에 사는 벤의 생활방식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해미가 사라진다. 해미의 이유없는 실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종수는 벤을 의심한다. 벤이 자신에게 고백했던 은밀한 취미생활 때문이다. 그 취미생활은 바로 “2개월에 한 번씩 쓸모없고 눈에 거슬리는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이었다.

CGV 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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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키마 하루키의 짧은 원작을 2시간 40분 가량의 영화로 각색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원작이 남겨놓은 미스테리의 해결일 것이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은 이 미스테리를 끝까지 미스테리로 남겨놓으면서 대신 이 미스테리에 집착하는 20대 남자의 밑바닥을 묘사한다. 주인공 종수의 집착은 파주와 반포의 거리,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와 “놀면서 돈버는” 상류층 사이의 거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처음 해미와 함께 나타난 벤에게 알 수 없는 경쟁심과 질투를 느끼지만, 그의 자동차와 그가 사는 집을 보면서 그의 삶에 매혹되기도 한다. “어떻게 저 나이에 저렇게 사는 거지? 한국에는 개츠비들이 너무 많아. 뭐 하는지 모르겠는데 돈은 많은 수수께끼의 저런 사람들....” 종수가 느끼는 매혹은 이후 벤의 일거수 일투족을 추적하는 동안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증폭된다. 벤을 쫓는 종수의 모습은 ‘밀양’의 신애와 비슷하게 보인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할까. 신애는 자신이 의지했던 신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생각에 분노의 폭주를 하는데, 이때 영화 속 주변 사람들이나 영화 밖 관객들이나 그녀를 바라보는 태도는 거의 같다. ‘버닝’의 종수가 낡은 화물트럭을 모고 벤의 페라리를 추적하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단, 신애가 자신이 ‘불청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반면, 종수는 그런 용기조차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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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은 종수가 자신을 지옥에 빠뜨리는 과정의 밀도를 영화적인 긴장감으로 채운다. 푸른 안개로 자욱한 새벽의 시골길을 달리는 종수의 모습, 행선지를 알 수 없는 포르쉐와 화물트럭의 추격전, 무엇보다 황량한 파주의 벌판을 배경으로 보이는 노을, 그리고 노을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해미의 실루엣. 특히 이 장면은 이창동 감독의 전작에서 보기 드물었던 영화적인 감흥으로 가득하다. 전작의 영화적인 순간들이 배우들의 몸과 표정, 혹은 ‘박하사탕’과 같은 시간의 형식에서 비롯됐던 것에 비해 ‘버닝’은 더 적극적이다. “이 영화에는 진짜 영화적인 것 밖에 없다”는 칸 영화제 상영 후의 반응은 ‘버닝’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문장일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노을과 실루엣의 대비로 주인공 혜자의 고속버스 장면을 촬영했던 홍경표 촬영감독은 ‘버닝’에서 또 한 번 오랫동안 회자될 영화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물론 ’버닝’으로 데뷔한 신인배우 전종서를 이야기할 때도 수없이 반복될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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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은 ‘버닝’이 지금 세계에 사는 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최근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이 영화는 분노와 함께 무력감을 느끼는 젊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버닝’이 보여주는 세계에서 분노와 무력감의 원인은 실체 없음, 이유 없음, 알수 없음이다. 파주와 반포의 거리,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와 “놀면서 돈버는” 상류층 사이의 거리, 포르쉐와 낡은 화물트럭 사이의 거리, 고층호텔의 헬스클럽과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대로변 사이의 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버닝’은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헤매는 청춘의 여정을 그리는 영화다. 이 여정은 꽤 길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챙겨온 관객에게도 흔치않은 경험이 될 여정이다. 안타깝게도 이 청년은 그 여정에서 더 많은 박탈감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