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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물을 입양하려면 수술에 동의해야만 했다

동물의 중성화 수술은 논쟁적인 사안이다

ⓒhuffpost

개를 입양했다. 암컷이고 ‘사람’이다.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 활달해서 하루 두 시간씩은 데리고 나가야 행복해한다. 집 근처에 숲길이 있어 다행이다. 인적이 드문 시간을 골라 단둘이 걷는다. 진흙을 튀기고 잡초를 쓰러뜨리고 가끔 청설모를 쫓는다. 비가 내리면 느티나무 밑동에서 비를 피해 간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 날엔 세상이 멸망하고 그저 우리 둘만이 남은 기분이 든다.

 

ⓒYevgen Romanenko via Getty Images

 

우리가 재건할 문명 이후의 세계를 상상해본 적도 있다. 그녀가 다 자랄 때까지는 내가 사냥을 도맡게 될 것이다. 내 뜀박질 능력이 굼떠질 때쯤 그녀는 청설모를 잡기 시작할 테고, 점점 더 사냥감의 크기를 늘려가고, 어느 날 숲 어귀를 어슬렁거리던 잘생긴 수컷 한 마리를 만나….

거기서 상상은 끝난다. ‘사람’의 배 가운데에서 아래까지 복개 수술의 기다란 흔적이 남아 있다. 호치키스 자국과 함께. 자궁적출술을 받았다. 동물보호단체로부터 유기동물을 입양하려면 수술에 동의해야만 했다. 번식이 불가능한 생명에게 멸망 이후의 생존이 어떤 의미를 갖는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식량을 나누어 그녀를 먹이고, 나를 위험에 빠뜨려 그녀를 살릴 것 같다. 생물학자들은 투자 실패라고 부르겠지만, 세상이 끝나고 나면 나는 생물학자가 아니라 내 개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게 틀림없다.

동물의 중성화 수술은 논쟁적인 사안이다. 그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 억겁을 이어온 생명의 사슬이 인간의 선택에 따라 막다른 길에서 끝난다고 생각하면 명백한 월권으로 느껴지지만, 많은 동물보호단체들이 중성화 수술을 권장하고 있다. 다른 종의 번식 권리를 압수하는 게 어떤 의미의 ‘보호’ 방식이 될 수 있는가? 쉽게 납득되는 설명은 없다. 동물의 건강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내 생각에는 모두 불충분한 대답이다. 감히 노골적으로 표현할 용기가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인간의 문명은 이미 공생동물의 종 자체를 ‘안락사’시켜야만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freemixer via Getty Images

 

개나 고양이 한 마리에게 사랑을 듬뿍 쏟을 수 있고, 그다음 세대까지 책임질 사람도 있겠지만, 공생동물종의 영속적인 운명을 책임질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번식하는 한, 그들의 후손은 잔혹하고 처참한 미래와 확정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인간의 거주환경은 동물과 공존하기 어렵게 바뀌었고, 인간의 거주환경 근처에는 야생의 가능성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종들에게 어떤 장밋빛 미래도 약속할 수 없다. 아프지 않은 멸종으로 인도하는 것 외에는. 겸허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인간이 먼저 손을 내밀어 시작되었던 수만년의 우정은 슬프지만 막을 내리는 중이다.

150년 전 영국 북부의 작은 마을에 ‘벤’이라는 개가 살았다. 74개의 도그 쇼에서 우승한 이 전설적인 명견은 종견으로서 무수히 많은 자식을 낳았다. 그중 가장 뛰어난 열 마리의 새끼가 전세계 모든 요크셔테리어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1990년대 후반까지 한국에서도 가장 흔한 반려동물종이었던 요크셔테리어는 이제 동물보호소의 철장을 채운 애물단지가 됐다. 인간 곁에 남은 이들은 반려인을 따라 나이가 들었고, 활기차게 산책하던 거리를 웰시 코기와 포메라니안에게 내주었다. 세상 마지막까지 함께할 것 같던 인간의 취향과 함께, 종 전체가 노년에 접어든 셈이다.

십여년의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 우리는 오랜 벗 종과 아름답게 작별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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