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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은 드론으로 최루탄을 쏘고 실탄을 '조준사격'했다

이스라엘 쪽에서는 한 명의 부상자도 없다.

  • 허완
  • 입력 2018.05.16 10:13
ⓒIbraheem Abu Mustafa / Reuters

타이어 태우는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윙윙거리며 비행하는 드론에서는 최루탄이 축포처럼 쏟아진다. 장벽 너머에서 이스라엘 병사들이 발사하는 최루탄이 공중을 가른다. 검은 연기, 최루탄, 최루가스 사이로 실탄이 발사된다. 실탄은 땅바닥을 기어오는 사람들을 향해 조준돼 발사된다.

한 청년이 땅바닥을 기어간다. 손에는 철조망 절단기를 쥐고 있다. 그의 주변에서 사람들이 총알을 맞아서 쓰러진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한 남성이 다리를 총을 맞았고, 10대 소년은 머리에 총을 맞아 즉사했다. 죽음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청년은 땅바닥을 계속 기어가다가 결국 장벽에 손을 댔다. 이스라엘과 가자지구를 가르는 분리장벽이다. 그리고 청년은 다시 땅바닥을 기어서 되돌아간다.

팔레스타인 청년 이스마일 카아스(23)는 “해냈어요. 최우선 과제이니까요”라고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가 한 일이란 장벽에 손을 대고 돌아온 것이었다.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이스라엘 독립 70주년인 14일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접경 곳곳에서는 장벽이나 철조망에 접근하려는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를 저지하는 이스라엘군 사이에 최대 충돌이 벌어졌다. 15일에는 팔레스타인인 수십명의 합동장례식이 치러졌다. 수천명이 동료 시민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다시 접경 지대로 행진을 시작했다. 타이어를 태운 연기와 최루탄이 또 하늘을 덮었다.

지난 3월30일부터 시작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위대한 귀환 행진’은 이날 이스라엘 독립 70주년에 즈음한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개관에 대한 항의가 더해지며,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최소 60명이 숨지고, 2700명이 부상했다. 이 중 1360명은 실탄에 의한 부상자이고, 130명은 중태라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건부가 밝혔다.

‘위대한 귀환 행진’은 이스라엘 독립 선포로 시작된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의 축출 사태인 ‘나크바’(재앙) 70주년을 맞아 펼쳐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향 귀환 투쟁이다. 물론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부모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가자지구 및 서안지구에 가두어두는 분리장벽 때문이다. 특히, 가자지구는 지난 11년 동안 이스라엘에 의해 사실상 봉쇄되며 200만여명을 가둔 거대한 수용소로 변했다. 

ⓒIbraheem Abu Mustafa / Reuters

 

1개월 반 동안 지속된 이 행진 시위는 그동안 113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모두 팔레스타인 주민들이고, 이스라엘 쪽에서는 한 명의 부상자도 없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가자지구 및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접경 장벽에 접근하려다, 이스라엘군의 총격을 받아 쓰러지고 있다. 그동안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 접경 지대 5~6곳에 설치된 캠프를 중심으로 장벽 돌파 투쟁을 벌여왔다.

지난 11일부터 행진 시위는 가자지구의 접경 지역 전역 13곳에서 벌어지며 규모가 커졌고, 결국 하루에만 58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이는 2014년 7월초부터 7주 동안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일방적으로 폭격한 ‘가자 전쟁’ 이후 하루 동안 발생한 이-팔 충돌의 희생자로는 최대 규모다.

위대한 귀환 투쟁은 불타는 타이어의 검은 연기, 땅바닥을 기는 팔레스타인 주민, 그리고 이스라엘군의 조준 사격으로 상징된다. 장벽을 넘으려는 이 투쟁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기껏해야 장벽에 손을 대고 돌아오거나, 장벽 위에 서서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드는 것만으로 이 투쟁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투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이날 장벽에 접근한 팔레스타인 주민 중에는 검은 니캅으로 전신을 가린 여성들이 적지 않았다. 여성들은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투쟁을 기록했다. 시위대에서 여성이 늘고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군이 여성에게는 발포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Ibraheem Abu Mustafa / Reuters

 

시위대는 이스라엘군의 시야를 방해하려고 타이어를 태워 검은 연기로 주변을 채운다. 또 폭탄을 장착한 연을 날려 장벽 너머의 이스라엘군 진영에서 폭파를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무장한 이스라엘군의 압도적 군사력은 이런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저항을 무력화한다. 하늘을 메운 드론이 연신 최루탄을 터뜨리고, 이스라엘군은 땅바닥을 기어오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다리를 조준경으로 겨냥해 총격을 가한다. 이스라엘군은 더 나아가 탱크를 동원해 시위대의 뒤쪽으로 포격을 가하기도 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모든 나라는 국경을 방어할 의무가 있다”며 “하마스 테러 단체는 이스라엘을 파괴할 의도를 선언하고는 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수천명을 보내 장벽을 파괴하려 한다. 우리는 주권과 시민을 보호하려고 계속 단호히 행동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이스라엘 병사들은 “최루가스 같은 통상적인 방법으로 해산되는 시위대가 아니라 테러 행위를 한 사람들에게 발포했다”고 강조했다. 

ⓒMohammed Salem / Reuters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고작 장벽에 접근하는 절망적인 투쟁을 하는 이유는 그들의 인생이 ‘수용소’의 삶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장벽에 손을 대고 돌아온 카아스는 23살의 인생 내내 가자를 떠나본 적이 없고, 직업도 없이 낮잠으로 하루를 보낸다고 말했다.

2007년 가자지구에서 이슬람주의 정파 하마스가 집권한 이후 이스라엘은 이곳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 그 이후 이스라엘은 2008년과 2014년 가자지구를 대대적으로 공습하는 두 차례의 전쟁을 벌였다. 지하통로 폐쇄 등으로 외부 연계를 막기 위한 것이다. 그 이후 길이 41㎞, 폭 6~12㎞에 넓이 365㎢의 가자지구는 200만명을 가둔 거대한 수용소가 됐다.

이날 시위대의 뒤쪽에서는 12살 소녀 아셀 나세르가 이스라엘에 대한 ‘성전’을 찬양하는 시를 낭송했다. 아버지 칼릴 나세르(47)는 딸이 어떤 위험에도 위축되지 않는다며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순교하는 것은 영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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