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8년 05월 16일 08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16일 10시 55분 KST

북한이 고위급회담 연기를 '일방통보'한 이유는 뭘까?

관건은 한국과 미국 정부의 대응이다.

뉴스1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북한이 16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기로 한 남북 고위급회담을 한-미 연합군사훈련 등을 이유로 ‘중지’(연기)한다고 남쪽에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 앞서 북쪽은 15일 오전 9시 조금 넘어 남쪽의 제안(14일 개최)을 수정(16일로 이틀 순연)해 받아들였으나, 15시간여 만인 16일 오전 0시30분 돌연 ‘회담 중지’ 방침을 남쪽에 통보해왔다. 정부는 당혹감 속에 북쪽이 태도를 180도 바꾼 핵심 원인과 배경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보내온 전통문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파악을 하는 중”이라며 “오전 10시께 통일부에서 1차로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북쪽의 회담 연기 통보는 평창겨울올림픽을 매개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27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 채택, 6월12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이르는 최근의 한반도 정세 급진전 와중의 돌출 악재다. 무엇보다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세기의 회담 일정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가 주목된다.

고위급회담 북쪽 단장(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16일 오전 0시30분께 남쪽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 앞으로 전화통지문을 보내와 “‘맥스썬더’ (한-미 연합)훈련을 이유로 고위급회담을 무기연기한다고 알려왔다”고 통일부가 오전 3시께 밝혔다. 통일부는 “이에 따라 오늘 예정된 회담을 개최되지 않으며 정부 입장은 유관 부처 협의를 거쳐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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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고위급 회담이 무산된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맥스선더 훈련은 한-미 공군의 연례적 연합훈련으로 11일 시작돼 25일까지 진행 예정이다. F-22 스텔스 전투기 8대와 B-52 장거리폭격기를 포함한 F-15K 전투기 등 100여 대의 양국 공군 전력이 참가한다. F-22 8대가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F-22 스텔스 랩터와 B-52 폭격기는 북쪽이 극도로 경계하는 미국의 핵심 핵전략무기로 북쪽이 극도로 경계하며 문제 삼아 왔다.

북쪽은 이날 새벽 3시께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보도’를 통해 “남조선에서 무분별한 북침전쟁 소동과 대결 난동이 벌어지는 험악한 정세 하에 16일로 예견된 북남고위급회담을 중지하는 조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북쪽은 ‘보도’를 통해 “남조선 전역에서 우리를 겨낭하여 벌어지고 있는 이번 훈련은 판문점 선언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며 좋게 발전하는 조선반도(한반도) 정세 흐름에 역행하는 고의적인 군사적 도발”이라며 “미국과 남조선 당국이 우리의 주동적이며 아량있는 노력과 조치에 의해 마련된 북남관계 개선과 조미대화 국면이 이번 전쟁연습과 같은 불장난 소동을 때도 시도 없이 벌려놓아도 된다는 면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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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오산공군기지에서 임무수행을 마친 미 공군 A-10 공격기가 착륙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공군은 이날부터 2주간 한미 공군 연합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훈련을 실시한다.

 

북쪽은 “북남고위급회담이 중단되게 되고 첫걸음을 뗀 북남관계에 난관과 장애가 조성된 것은 전적으로 제정신이 없이 놀아대는 남조선 당국에 그 책임이 있다“며, 비판의 주표적을 남쪽 정부로 삼았다. 아울러 “미국도 남조선 당국과 함께 벌리고 있는 도발적인 군사적 소동 국면을 놓고 일정에 오른 조미(북미) 수뇌상봉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며, ‘미국의 책임’도 거론했다. 다만 “우리는 미국과 남조선 당국의 차후 태도를 예리하게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여, 아직은 남쪽과 미국을 향해 열린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을 생각이 없음을 내비쳤다.

북쪽은 “특히 남조선 당국은 …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워 우리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판문점 선언을 비방 중상하는 놀음도 버젓이 감행하게 방치해놓고 있다”고 짚었다. 이는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14일 국회 강연과 자신의 저서(<3층 서기실의 암호-태영호의 증언>) 출판 기념 간담회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성격이 “대단히 급하고 즉흥적이며 거칠다”고 하는 등 ‘반(反)김정은 발언’을 쏟아낸 것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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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 전망 : 북한전문가 초청 강연'에서 강연하고 있다.

 

북쪽은 이와 관련해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은 그 어느 일방의 노력으로써는 이행될 수 없으며 쌍방이 그를 위한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힘을 모아 조성해나갈 때 비로소 좋은 결실로 이어질 수있다”고 밝혔다.

요컨대 북쪽이 <중통> ‘보도’를 통해 밝힌 회담 연기의 핵심 이유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태영호 전 공사의 ‘반김정은 발언’이다. 뒤집으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반 김정은’ 언행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해달라는 메시지다.

실제 한-미 양국은 평창겨울올림픽 및 패럴림픽 기간과 일정이 겹친 ‘키리졸브’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규모와 시기를 줄여 북쪽에 긍정적 메시지를 발신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1월10일 전화통화에서 “남북 간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어떤 군사적 행동도 없을 것임을 분명하게 알려주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청와대가 공개한 바 있다. 이에 비춰보면. 한-미 양국의 ‘맥스썬더’ 훈련 진행, 무엇보다 미국의 핵전략무기인 F-22 랩터와 B-52 폭격기의 훈련 참여는 북쪽으로선 ‘한-미 양국의 약속 불이행’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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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공군 연합훈련 '맥스선더' 가 진행된 11일 오전 F-22랩터 전투기가 공군 제1전투비행단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있다.

 

북쪽이 고위급회담을 연기하며 드러낸 한-미 양국을 향한 불만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언제까지 지속될지 가늠할 1차 관문은 23~25일로 예정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 공개 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한-미 양국의 정세 관리 의지와 능력이 북쪽 태도에 영향을 비칠 가능성이 높다. 한-미 양국이 북쪽의 이런 주장을 ‘생트집’으로 간주해 무시하거나 역공을 펼 경우 정세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한-미 양국이 공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사실상 한-미 연합훈련의 조정이나 중단,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표적으로 한 비난 발언의 자제 등의 ‘우호적 조처’를 취한다면, 정세 흐름에 역전이 발생하지는 않을 듯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앞서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발전을 견인하는 총괄 회담 창구였던 남북장관급회담과 관련해 5차 회담 개최 당일인 2001년 3월13일 아침 회담 불참을 통보해온 전례가 있다. 당시 북쪽은 2월27일 남쪽의 회담 개최 제안을 3월7일 동의했으나, 회담 당일 아침 태도를 바꿨다. 5차 장관급회담은 6개월의 공백을 거쳐 그해 9월 중순 서울에서 열렸다. 당시 북쪽의 회담 불참 배경엔 갓 출범한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강경한 대북 태도, 특히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파기 움직임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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