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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에서 ‘헝거 게임’같은 잔혹극이 펼쳐지고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 백승호
  • 입력 2018.05.15 17:19
  • 수정 2018.05.16 10:18
ⓒ영화 '헝거게임 : 더 파이널' 스틸컷

2008년 출간된 뒤 영화로도 흥행에 성공한 작가 수전 콜린스의 <헝거 게임> 3부작에는 ‘판엠’(Panem)이라는 무자비한 독재국가가 등장합니다. 판엠의 특징은 13개 구역으로 국가를 나누고 인구의 이동을 철저하게 통제하며 나머지 12개 구역에서 얻은 모든 부를 제13 구역인 ‘캐피톨’에 집중시킨다는 점입니다. 이 판엠의 잔인성이 극도로 드러나는 행사가 바로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헝거 게임’입니다.

작품을 보면, 과거 나머지 12개 구역이 부가 집중된 캐피톨에 반란을 꾀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는데요. 캐피톨은 12개 구역에 반란 실패의 죄를 물어 매년 제비뽑기로 10대 소년·소녀 24명을 뽑고, 완벽하게 통제된 경기장에 던져놓은 뒤 단 1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게 합니다. 24시간 중계되는 이 게임을 지켜보며 캐피톨의 주민들은 즐거워합니다. 캐피톨 주민들은 다른 12구역에 사는 주민들의 죽음에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습니다.

살인 시합에 출전하기 전, 캐피톨의 관중에게 환호를 받고 있는 <헝거 게임>의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
살인 시합에 출전하기 전, 캐피톨의 관중에게 환호를 받고 있는 <헝거 게임>의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 ⓒ영화 '헝거게임' 스틸컷

 지난 5월 14일 이 작품과 비슷한 광경이 현실에서 벌어졌습니다. 이날 오후 4시 이스라엘과 미국의 고위급 관리들이 모여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이전 개관식에 참석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영상 축전을 통해 “정확하게 70년 전 전직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이스라엘을 독립국으로 인정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공식적으로 미국의 대사관을 예루살렘에 엽니다”라며 “이스라엘은 다른 모든 국가처럼 주권 국가이고, 자국의 수도를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진실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도는 예루살렘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2017년 12월 6일 제 지시에 따라 미국은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인정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한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화”라는 말도 잊지 않았는데요. 장내에 박수와 환호가 터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맏딸이자 백악관 선임 고문인 이방카 트럼프, 그의 남편이자 백악관 수석 고문인 재러드 쿠슈너, 미국의 재무부 장관 스티븐 므누신 등도 군중들 사이에서 함께 박수를 쳤습니다. 므누신 장관이 장막을 걷어 새 대사관의 현판을 공개했고, 이방카 트럼프가 아버지 도널드 트럼프의 이름으로 거듭 개관을 선언했습니다. 이들 셋은 모두 유대교 신자거나 유대인입니다. 므누신과 쿠슈너는 유대계 출신이고, 이방카는 쿠슈너와 결혼하면서 정통파 유대교로 개종했습니다.

 

ⓒLior Mizrahi via Getty Images

같은 시간 불과 약 70㎞ 떨어진 가자 지구에서는 2014년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미국 대사관의 이전 개관식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위대한 귀향 행진’(Great Return March)을 이어갔습니다.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동예루살렘을 향후 건립될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의 수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은 나눌 수 없고 영원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위대한 귀향 행진’은 지난 3월 30일 ‘땅의 날(Land Day)’부터 5월 15일 대재앙의 날인 ‘나크바(Nakba)’까지 고향 땅을 향해 이어가는 대규모 행진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건국일인 5월 15일은 곧 팔레스타인에는 고향을 빼앗긴 재앙의 날입니다. 말은 행진이지만, 주변은 이집트와 이스라엘, 그리고 바다로 막혀 있어 그리 멀리 가지도 못합니다.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Mohammed Salem / Reuters

 

‘지구 상에서 가장 거대한 감옥’으로 불리는 가자 지구는 폭이 고작 6㎞, 길이가 50㎞에 불과합니다. 이곳에 200만명에 가까운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결국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행진’은 자신들의 고향인 이스라엘 점령지구 경계선 근처로 집결해 경계선 돌파를 시도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특히 이날은 미국 대사관 이전 개관식에 맞춰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웨스트 뱅크)에 최대 인원이 모였습니다.

‘팔레스타인 무력시위’ 또는 ‘폭도’라는 보도를 보면, 이스라엘 군인들과 총싸움을 하는 백병전을 상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시위의 양상은 백병전보다 학살에 가까웠습니다. 시위대는 타이어를 태운 연기로 연막을 치며 총알을 피해 가자지구 바깥의 땅, 자신들의 고향 땅으로 돌아가려고 시도하다 총에 맞았습니다. 이스라엘 매체인 <하레츠>의 보도를 보면, 가자 지구 경계에 모인 약 4만명의 시위대 가운데 59명이 사망했고 770명이 다쳤습니다. 가스 흡입으로 사망한 8개월 된 아기가 59번째 희생자이며 나머지 58명 중에는 14살 소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4년 2000여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낸 가자 전쟁 이후, 하루 동안 가장 많은 이들이 희생된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위대한 귀향 행진’이 시작된 3월 30일 이후의 사망자는 1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은 ‘시민들을 폭도로부터 지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 역시 이번 학살의 책임을 가자 지구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정치세력 하마스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라즈 샤 백악관 부대변인은 14일 늦은 오후 브리핑에서 “이번 비극적인 죽음의 책임은 분명히 하마스에게 있다”며 “하마스가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해서 이런 반응을 부추겼으며, 마이크 폼페이오(미국 국무장관)가 말했다시피 이스라엘에는 방어권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백악관의 입장대로,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행진은 얼마나 위협적이었을까요? 현지의 보도를 보면,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가자 지구의 번화가에서 행진을 시작해 5㎞ 정도 떨어진 이스라엘 경계선에 다다라 ‘가벼운’ 무장을 하고 이스라엘 군의 방어벽을 뚫으려고 했습니다. 엠에스엔비시(MSNBC)의 현지 리포터는 “많은 이들이 타이어를 태우거나 굴리면서 철조망을 무력화하려고 시도했으며, 돌팔매를 가지고 있었고, 새롭게 발명한 불을 지르기 위한 연을 날렸다”며 “그러나 이 무기들은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피해를 주기에는 매우 어려워 보였다”고 표현했습니다. 특히 이 리포터는 “이스라엘 군에서 쏜 대포가 나와 나의 팀을 타격할 뻔했다”고 밝혔습니다.

 

ⓒNurPhoto via Getty Images

 

이번 행진으로 인해 사망한 이스라엘 군은 아직 한 명도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폭도일까요? 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갈립니다. 이스라엘과 일부 미국 언론은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합니다. 이스라엘 언론인 <와이넷뉴스>,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의 <폭스뉴스 비즈니스> 등입니다. 반면, 미국의 진보 언론과 유럽 언론은 대부분 ‘시위대’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캐피톨’ 주민의 시각에서 이들을 바라보느냐, 억압받는 나머지 12개 지역의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의 차이는 갈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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