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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윤태호 “블록체인 공부 전엔 유시민이 옳다 생각”

"콘텐츠 부문에서의 잠재력을 발견했다"

ⓒ코인데스크코리아

‘미생’의 원작자이자 한국만화가협회장인 윤태호 작가가 지난달 24일 “미래에 웹툰은 블록체인으로 연재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 삼성동에서 열린 세계웹툰포럼 기조연설에서 이 발언을 했다. 윤 작가는 불과 2달 전 코인데스크코리아 창간 인터뷰 요청을 사양한 바 있다. 블록체인을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는 이유였다. 불과 2달 만에 윤 작가는 블록체인에 관심을 가진 수준이 아니라, 미래 만화 생태계에 블록체인이 전면적으로 도입될 것이란 예측을 하고 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윤 작가의 생각을 자세하게 듣기 위해 지난 1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자리한 그의 화실을 찾았다.

-지난달 세계웹툰포럼에서 블록체인이란 화두를 꺼냈다. 취지가 무엇이었나.

“블록체인을 접하고서 공부를 하다 보니, 콘텐츠 부문에서의 잠재력을 발견했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플랫폼과 창작자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을 가능성이다.”

-최근 레진엔터테인먼트, 코미코 등의 웹툰 플랫폼과 작가들 사이에 수익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사실 레진은 포털의 부속서비스로 전락해 무료라는 인식이 강했던 웹툰을 유료화했던 업체다. 인터넷의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하려 했던 레진조차 인터넷의 또 다른 문제인 플랫폼으로서의 공정성 문제가 제기됐다. 블록체인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나.

“만화잡지와 출판만화의 시기를 경험했던 세대로서 각 시기마다 특징이 있다. 출판만화 시기엔 단행본을 찍고 유통하는 데 상당한 비용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어떤 작품을 단행본으로 찍을지 살펴보는 역할을 만화잡지가 맡았다. 만화잡지로 시장의 반응을 본 뒤에 단행본으로 찍을 작품을 고르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팔리는 것들만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대개 일본 만화 중에서 이미 성공한 작품이거나, 유행하는 특정 장르였다. 특히 장르 편중현상이 심했다. 학원폭력물이 유행할 땐 너도나도 그 장르만 그렸고, 판타지 무협물이 인기를 얻으면 그쪽으로 확 쏠렸다. 그런데 웹툰 시대가 열리면서 잡지 생태계엔 진입하지 못하던 작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림은 다소 투박할 수도 있지만, 굉장히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하지만 포털 서비스의 일환이 되면서 만화가 무료라는 인식이 강해졌고, 유료화를 시도하는 독자적인 웹툰 사이트는 포털과 경쟁하기가 어려웠다. 여러 유료화의 시도가 실패한 뒤에 레진이라는 빛나는 유료 사이트가 등장했고, 만화도 돈 내고서 볼 수 있구나란 인식을 심어줬다. 레진이 비록 지금은 비판을 많이 받지만, 그들이 시도하고 모험해서 만든 영역에 대해선 평가를 해야 한다. 또 레진이 받는 비판 중에서도 그들이 작가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의 잘못과 여러 수익사업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성향을 구분해야 한다. 후자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아닌 플랫폼으로서 필수적인 고민이다. 만화 그 자체로만 수익을 내기가 어려우니, 플랫폼 업체는 드라마나 영화, 게임과 캐릭터 등의 판권 사업에서 우선협상권 내지는 전권을 위임 받아서 하려 한다. 이 와중에 발생한 창작자와 플랫폼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란 고민을 하다가 블록체인에서 백서라는 새로운 개념을 발견했다.”

-백서의 어떤 점을 주목했나.

“블록체인 분야에선 자신이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 백서를 통해 밝히고서 투자를 받는다. 다시 보니 백서가 계약서였다. 백서는 대개 둘 사이의 계약이 아니라 투자자가 있다. 이전에 계약서는 작가와 플랫폼 사이의 계약이었고, 플랫폼에 비해 작가는 빈약한 정보를 기반으로 계약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익이 한 쪽으로 쏠리기 쉬운 구조다. 그래서 지금 만화계에선 플랫폼 업체와 작가 간에 과연 공정한 계약이 가능할까라는 불신이 많다. 하지만 백서를 통해 창작자와 플랫폼이 계약을 맺으면 이익의 균형에 이전보다 신경쓸 수 밖에 없다. 한쪽으로 이익이 쏠리면 투자자들에게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지금까지는 플랫폼과 작가의 계약에 있어 비밀주의가 관행이었다. 작가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 드라마나 영화가 되면 판권료가 얼마가 될지 등을 모두 비공개로 했다. 하지만 백서를 통해 사업계획을 밝히고서 투자를 받으려면 이런 수익구조들이 상당 부분 투명화 될 것이다. 이런 정보 공개도 각 주체들의 이익 균형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백서로 연재계획을 밝힌다는 것은 알겠는데, 아직 웹툰이 블록체인으로 연재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이해가 안 간다. 블록체인이 적용되는 플랫폼에서 연재된다는 뜻인가?

“사실 블록체인을 처음 접한 시기가 한 달 반 전이라서 내가 제대로 감을 잡고 있는지 모르겠다. 블록체인은 마치 인터넷을 처음 접했을 때처럼 감이 안 잡힌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무엇이든지 이미지로 떠올려 본다. 내 작품이 블록체인에 올라가고, 거기서 소비된다는 그림이 명확하진 않다. 다만 블록체인이 플랫폼을 새롭게 정의하고, 중간자 없이 우리 창작자들이 독자를 직접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다. 하지만 그것도 창작자의 입장이지,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꼭 그렇진 않을 것 같다. 독자들이 작가 개개인을 찾아올 것 같진 않고, 작품들이 모여있는 플랫폼으로 올 것 같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의 세상에서도 플랫폼이 필요할텐데, 블록체인이 적용된 플랫폼은 어떤 모습일지 아직 정확힌 모르겠다. 한편으론 이렇게도 생각한다. 인터넷도 처음 등장할 때, 이것이 정보의 자유, 분권 등의 가치를 부르짖었던 것에 비해 지금은 힘 있는 소수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네이버도 결국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블록체인으로 뛰어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우려했던 소식을 접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블록체인 사업을 시작한다는 뉴스였다. 그때 ‘결국 이렇구나. 돈과 인력이 있는 곳에서 블록체인도 하는구나’라고도 생각했다. 아마 머지 않아 웹툰 작가들이 네이버, 카카오와 맺는 계약서에 ‘블록체인 플랫폼에 연재될 때 어떻게 수익을 배분한다’는 내용이 들어올 수도 있다.”

– 블록체인이 콘텐츠 업계에 주는 시사점이 상당해서 문화예술계에서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두 달 전 코인데스크코리아 창간인터뷰를 요청했었다. 그땐 관심이 없다고 하시더니,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그땐 정말 블록체인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한 달 반 전에 지인에게서 블록체인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호기심이 생기긴 했지만, 정말 창피할 정도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책을 두 권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 이후엔 관심이 깊어져 각종 책과 글, 유튜브 동영상 등을 찾아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관심을 가진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한 달 반 동안 푹 빠져서 공부했다. 다만 블록체인과 코인은 별개로 보려 한다.”

-국내에서는 블록체인을 암호화폐와 구분해서 보려는 시각이 강하고, 심지어 암호화폐를 죽이고 블록체인만 살리자는 주장도 있다. 이런 시각에 동의하는 건가.

“그건 전혀 아니다. 내가 별개로 본다는 것은 코인에 빠지지 않고, 블록체인의 이해에 집중한다는 의미다. 유시민 작가께서 지난번 jtbc 토론에서 주장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억지로 분리시킬 수 없다. 사실 지난번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교수가 출연한 토론을 생중계로 봤다. 그땐 블록체인을 공부하기 전이라서 유시민 작가의 발언 하나하나가 모두 ‘사이다’였다. 유시민 작가의 주장이 모두 맞는 말 같고, 그 주장을 듣다 보니 상대편을 향해 나도 ‘저 나쁜놈!’, ‘역시 유시민!’, 이러면서 시청했다. 블록체인을 공부하고 나서 그 영상을 다시 보니, 유시민 작가의 발언이 꼭 맞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비트코인의 한계만 논의하게끔 토론을 잘 설계했고, 그거대로 진행했을 뿐이다.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난 화폐가 유통되고, 그것에 투기 수요가 몰리는 등 무엇을 우려했는지는 알 것 같다. 다만 지금은 그의 발언을 ‘사이다’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직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진 못하겠다곤 했지만, 결국엔 플랫폼에 블록체인의 요소가 어떻게 접목될지가 중요할 것 같다. 웹툰 플랫폼의 투명한 운영에 접목될 수도 있고, 암호화폐로 투자를 받고 결제를 하는 토큰이코노미가 적용될 수도 있다. 혹은 웹툰의 그림 모두가 분산된 데이터에 저장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파일코인이란 프로젝트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전세계의 컴퓨터를 연결해서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만들려고 한다. 이처럼 블록체인을 적용한다는 것이 다양한 의미가 되고 있다. 웹툰 플랫폼은 어떨까.

“사실 웹툰 플랫폼은 좀 더 고민해봐야 하고, 그 전에 방금 설명한 분산 데이터센터를 듣고 보니, 문득 세티(SETI) 프로젝트가 생각난다. 우주에서 지구로 오는 수많은 전파와 잡음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다. 혹시나 우주에 지성을 가진 생명체가 특정한 신호를 보낼 수도 있으니, 이를 찾아내는 프로젝트다. 이 일을 개개인의 컴퓨터로 할 수 있다. 세티에서 제공하는 화면보호기를 내 컴퓨터에 설치하면, 사용하지 않을 때 내 컴퓨터가 그 전파 분석작업을 한다. 만일 어떤 의미 있는 신호를 내 컴퓨터가 발견했다면, 그 신호에 내 이름이 붙는 방식이라고 들었다. 나도 그 화면보호기를 꽤 사용했다. 사실 블록체인을 공부하면서 자꾸 세티 프로젝트가 생각났다. 세티프로젝트에 블록체인의 요소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티는 저도 좋아했던 프로젝트다. 분산된 컴퓨터가 합의하면서 같이 일을 해나간다는 점에서 분명 블록체인의 요소가 있어 보인다. 이 대화를 나누다가 생각난건데, 블록체인으로 세티프로젝트 2.0도 가능할 것 같다. 유휴 cpu 자원을 모아서 우주전파 분석 뿐만이 아니라, 다른 의미 있는 일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보상으로는 내 이름을 붙여주는 것보다 더 직접적으로 ‘코인’을 지급할 수도 있다. 아니면 굳이 코인으로 보상 받지 않아도 이 cpu를 모아서 코인을 채굴해서 그걸로 저소득층을 지원한다거나, 결식아동을 지원하는 스마트 복지를 위해 빅데이터 분석에 활용하는 방식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특히 공익적인 목적에 사용된다면 더 호응이 높을 것 같다. 사실 블록체인이 공익적인 부문에 적용되리란 기대도 크다. 기부한 돈이 엉뚱하게 쓰였다는 못 믿을 사건들이 터지고서 각종 공익재단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블록체인으로 그 부분이 투명화된다면, 기부나 공익적인 활동도 더 활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문화예술계에서 웹툰 말고도 블록체인이 접목될 분야가 더 있지 않을까.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조용필 코인’이 발행되고, 그 코인에 투자하면 기대 수익도 있으면서 그의 노래를 다 들을 수 있다면 어떨까. ‘월간 윤종신’처럼 매달 노래를 내는 뮤지션이 시도할 수도 있다고 본다. 영화제작사들도 투자 배급사 거치지 않고 ico로 투자자 모을 수도 있고, ‘무한도전’ 같은 TV프로그램도 시즌별로 ico를 해서 투자자 모으고, 백서에 제시한대로 제작하고 상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 구체화되진 않지만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모든 것의 기원을 찾는 ‘오리진’이란 만화를 연재 중이고, 그동안 바둑, 점성술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하나하나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블록체인도 비슷하게 단기간에 깊이 있게 파고든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태호 작가는 평소 어떻게 공부할까를 궁금해할 사람도 꽤 있을 듯 하다. 독자들에게 ‘윤태호의 공부법’을 소개한다면?

“사실 별다를 것 없이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색다르게 반복하기’다. 블록체인도 좀 어렵긴 하지만, 같은 의미를 여러 글과 동영상에서 다른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책 한권을 반복해서 읽으면 지겹지만, 같은 내용도 여러 책에서 접하고 동영상으로도 보면서 반복하면 이해도가 높아진다. 오리진 4권의 주제가 ‘상대성이론’이다. 그것도 같은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어릴 때 공부 잘하던 애들은 이미 그렇게 공부하고 있었다.(웃음) 참고서를 굳이 여러 종류 사서 본 이유가 같은 말이라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됐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같은 수학공식이 적용된 여러 유형의 문제를 계속 풀어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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