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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린폴리시에 실린 이 칼럼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최상의 칭찬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예루살렘에 있었다면..."

  • 허완
  • 입력 2018.05.15 17:27
  • 수정 2018.05.15 18:10
ⓒBloomberg via Getty Images

″호전적인 네타냐후 대신 평화를 추구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예루살렘에 있었다면, (이스라엘과) 이란·팔레스타인의 긴장은 고조되는 대신 진정됐을 것이다.”

대니얼 레비 유럽외교협회(ECFR) 중동·북아프리카국장은 11일 포린폴리시 기고문에 이렇게 적었다. 이 글은 아마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최상의 칭찬일 것이다.

에후드 바락 전 이스라엘 총리(199년~2001년 재임) 시절 정책자문을 지냈던 그의 논지는 제법 간단하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이 중동에서는 갈등과 대립을 초래하고 있는 반면, 한반도에서는 평화적 해법으로 향하고 있는 데에는 두 지역 동맹국 지도자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과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나란히 미국 트럼프 정부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갈등’을 추구해왔다는 점이다.

ⓒNICHOLAS KAMM via Getty Images

 

여기에는 역대 그 어느 미국 대통령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이 자리하고 있다. 트럼프가 두 지역에서 미국의 외교 정책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동맹국 지도자의 정책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

그는 이란·팔레스타인에 대한 트럼프의 위협과 북한에 대한 트럼프의 위협에 두 지도자가 각기 다르게 대응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호전적인 성향을 유감없이 드러내왔던 네타냐후는 트럼프의 위협을 ‘기회’로 받아들였고, 평화를 추구하는 문 대통령은 이를 위기로 인식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두 지도자의 전혀 다른 리더십이 상반된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트럼프의 거친 위협이 외교적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주장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트럼프 본인의 변덕스러운 성질이 그의 외교에 있어 결정적인 부분은 아닐 수 있다. 예측불가능성은 국정 운영 기술에 있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이것이 효율적으로 활용되려면 주의깊게 구성되고 사전에 계획된 전략이 필요하다. 트럼프의 고위 참모들조차 다음 단계의 조치가 무엇일지 추측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대통령이 그들에게 말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대통령 본인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중동과 한반도 두 지역 모두에서 합의의 초석을 다지거나 또는 (정반대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만든 건 (두) 지역 지도자들의 성향과 우선순위였다. (포린폴리시 5월11일)

ⓒBloomberg via Getty Images

 

먼저 이스라엘을 살펴보자. 트럼프는 지난해 12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14일에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끝내 이스라엘주재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이에 반발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이스라엘 군과 충돌하면서 하루 만에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을 불문하고 이스라엘 건국 이후 지난 70여년 동안 모든 미국 대통령들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지 않았다. 동예루살렘을 미래의 수도로 규정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국제사회 역시 같은 이유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는 이 암묵적 합의를 깨뜨렸다. 네타냐후가 오랫동안 꿈꿨던 일이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는 국제 사회와 유럽 동맹국들의 강력한 만류를 뿌리치고 끝내 이란 핵합의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핵 개발을 중단하는 대가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기로 한 이 기념비적 합의는 3년 만에 사실상 휴짓조각이 됐다. 네타냐후는 트럼프 정부의 ”대담한 결정”을 환영한 몇 안 되는 지도자 중 하나였다.  

이에 앞서 네타냐후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다분했던 ‘영어 연설‘에서 이란이 합의를 어기고 있다고 주장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즐겨보는 ‘폭스 앤 프렌즈’에도 출연해 같은 주장을 늘어놨다. 또 그는 트럼프의 사위이자 유대인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을 일찌감치 끌어들여 미국 대사관 이전 문제를 논의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정부의 이란 정책, 팔레스타인 정책은 네타냐후의 뜻대로 움직였다. ”이스라엘인들이 듣기에 이란 핵합의에 대한 5월8일 트럼프의 발표는 친숙한 느낌을 줬다. 바로 그들의 총리가 10년 넘게 입에 올려왔던 위협, 대립, 정권 교체, 이란을 굴복시키는 것에 대한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Bloomberg via Getty Images

 

문재인 대통령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트럼프를 끌어들였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한반도를 둘러싼 지금의 정세 변화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북한 선제타격론이 트럼프 정부에서 흘러나오며 ‘한반도 4월 위기설‘이 퍼졌다. 트럼프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는가 하면 북한 정권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큰 핵 버튼’도 거론했다.

트럼프는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한국 정부를 깎아내리는 듯한 말도 했다. 또 ”대화는 더이상 답이 아니다!”라거나 ”리틀 로켓맨과 협상을 시도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말했고, 군사 옵션을 비롯한 ”그 어떤 것에도 준비가 되어있다”고 했다. ”타락한” 북한 정권을 겨냥한 ”최대압박”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레비는 문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을 미국의 호전적 대북 정책(또는 레토릭)을 바꿔낼 ‘게임 체인저’로 활용하는 데 성공했다고 적었다. 남북 고위급 회담에 이은 남북 정상회담, 남북 정상 간 핫라인 설치,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 주선 등으로 숨가쁘게 이어진 외교전을 탁월하게 이끌어 왔다는 것.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대하는 문 대통령의 ”능숙한 솜씨(skillful playing)”가 마침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공간을 만들어 냈다고 그는 평가했다. 

사실 이 글의 주인공은 문 대통령이 아니다. ‘귀 얇은’ 트럼프와 미국의 주요 국가안보 정책이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상태로 전례 없는 방식으로 방치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이 글의 숨은 주인공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노벨 평화상 수상 가능성에 대한 말들이 나오자, 문 대통령은 재빨리 트럼프를 추켜세우고 스포트라이트를 그에게 양보했다. 한국 대통령은 이미 갈등에서 벗어날 방안을 협상해냈고, 없어서는 안 될 중재자가 되었으며,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대선 이후의 약속인 ‘한반도 운전자론’을 달성해냈다.” (포린폴리시 5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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