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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명 넘은 '동일범죄 동일처벌' 청원이 말하고자 하는 것

단순히 '남자라서 더 빨리 잡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의 처리 과정과 관련해 불만이 솟구치고 있다. 지난 11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으며 3일 만에 참여인원이 31만명(14일 15시 기준)을 넘어섰다.

 

 

내용은 홍대 누드크로키 불법촬영 사건이 이례적으로 빨리 처리되고 있으며 심지어 피의자에 대한 구속 수사까지 결정된 상태에서 여성이 피해자인 불법촬영 범죄는 방치되고 있거나 미온적인 수사가 진행된다는 것이 내용이었다.

청원 제안자는 ”누구나 범죄를 저질렀다면 벌을 받고 누구나 피해자가 되었다면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을 절실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경찰 측은 이런 불만에 대해 반론했다.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사건은 범행 장소나 참여한 사람이 특정됐던 사안”이라며 ”성별에 따라 (수사) 속도를 늦추거나 빨리하거나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마포경찰서 관계자도 ”사건이 쌓여있는데 하나라도 빨리 수사하는 게 좋지 왜 수사를 안 하고 붙들고 있겠느냐”며 ”이번 사건은 범행 현장이 특정됐고, 용의선상에 있는 인물도 특정됐기 때문에 빠르게 피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같은 설명만으로는 쉽게 문제제기를 가라앉힐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경찰의 설명대로 대검찰청 2017 범죄분석에 따르면, 2016년에 발생한 카메라 등 이용 촬영범죄는 총 5249건이었으며, 이 중 4968건이 검거돼 검거율은 94.6%이었다. 일반 검거율 84.2%보다 분명 높은 수치였다. 물론 여기에는 신고되지 않은 불법촬영 범죄는 포함되어있지 않지만 신고된 범죄에 한해서는 검찰이 높은 확률로 범죄자를 검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maxkabakov via Getty Images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카메라 등 이용 촬영범죄로 검거된 사람 중 기소된 사건은 1716건이었고 이중 구속 사건은 154건에 불과했다. 약식재판으로 벌금형에 처해진 건도 81건에 이르렀다.  언론과 사회에 주목을 받고 있는 이번 사건과 비해 그동안 여성들이 대상이었던 대부분의 불법촬영 범죄는 상대적으로 주목도 덜 받았고 제대로 된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불법 촬영물의 유포가 남성과 여성에게 가하는 피해의 무게가 다르다는 문제도 청원에서 지적한다. 이들은 ”불법촬영을 경찰에 신고도 하고 게시물을 없애기 위해 노력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주변에서 돌아오는 2차 가해”라며 ”그러게 옷을 얌전히 입었어야지, 네가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 아니냐?, 신고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고 무고죄가 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다, 잡기 힘들다” 등의 말을 듣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실제 2016년 성폭력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이같은 인식은 무리가 아니다. ”성폭력 피해에 여성이 책임이 있냐”는 물음에 대해 긍정한 사람은 전체의 34.4%에 달했으며 ”수치심이 있는 여성은 강간신고를 하지 않는다”에 대한 긍정 답변도 34.4%였다.

불법촬영 범죄의 피해는 그 게시물이 온라인상에 계속 유포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이며 장기적이다. 게다가 사회가 그 피해의 책임을 일부 여성들에게 돌린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하지만 이런 무게에 비해 불법촬영 범죄자들이 받는 처벌이나 져야 하는 책임의 수위는 낮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경찰만의 책임이 아니다. 사법당국, 의회, 사회 전체가 나서서 뜯어고쳐야 한다. 이미 삼십만 명을 넘어서 청와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이 청원은 단순히 ’누굴 더 빠르게 수사하지 않았다”라는 말로는 답이 되지 않는다. 이 청원은 ”국가의 보호를 요청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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