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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 부족한 일본, 임금은 왜 오르지 않을까?

어쩌면 한국의 미래

일본의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통상 3%의 실업률을 완전고용에 가깝다고 보는데 2017년의 일본 실업률은 2.8%에 불과했다. 같은 해 유효구인배율(유효구인자수/유효구직자수 : 이 수치가 1이 넘으면 일자리가 구직자의 수보다 많다)은 1.5배에 달했다.

2012년 기준 실업률은 4.3%, 유효구인배율은 0.83배였다. 5년 동안 추세를 살펴보면 일본은 노동자가 귀해지고 있고 취업도 어렵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일할 사람이 귀해지면 임금이 올라야 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일본의 명목임금(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않은 말 그대로 절대적인 화폐 액수를 의미한다)은 2007년에 비해 3.7% 하락했다. 최저점을 기록한 2009년에 비교해봐도 0.6% 오르는 데 그쳤다. 물가상승률까지 고려한 실질임금도 지난 2000년 이후 연평균 0.45%씩 하락했다. 일손은 부족한데 임금은 오르지 않고 있는 이상한 상황이다.

일본의 ‘완전고용’은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노동시장의 양적개선은 이뤘지만 질적 상황을 뜯어보면 정체되거나 오히려 악화되었다. 한국은행이 공개한 리포트(일본 임금상승 부진 원인과 시사점, 아베노믹스의 성과와 과제)를 살펴보면 일본의 고용지표가 개선되었음에도 임금이 오르는 등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데에는 크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노인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높아졌다

 

 

2000년을 기준으로 일본의 전체 취업자 중 여성 취업자 수의 비율은 40.8%에서 2017년에는 43.7%까지 올랐다. 여성 취업자 수의 비율이 늘었다는건 그만큼 남성 취업자의 수가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년층의 비율은 눈에 크게 띌 정도로 늘었다. 2000년에 7.5%에 불과했던 노년층 취업자 비중은 2017년에 12.4%까지 상승했다. 이 기간 동안 청년층(15~34세) 취업자 수는 470만명 감소한 반면 고령층은 320만명 증가했다. 

이는 저출산 고령화의 결과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1997년 8699만명으로 정점을 기록한 이후 점점 감소했는데 2017년에는 7604만명까지 떨어진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드는 만큼 빈자리를 여성과 노인이 채웠다.

 

 

문제는 이들이 주로 저임금 비정규직에 종사한다는 점이다. 2000년부터 2017년까지 여성 취업자 중 비정규직의 비율은 46.7%에서 55.5%까지 늘었다. 노년층은 54.1%에서 74.4%까지 무려 20.3%p 증가했다.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노동시장에 편입된 여성과 노인 대부분이 비정규직이 되었다. 

2017년 현재 일본의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65.5%에 불과하다. 일자리 수가 같더라도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지면 전체 임금 규모는 쪼그라든다.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 한국의 전체 노동자 중 여성 노동자의 비율은 지난 2012년에 38.7%에서 2016년에 41.1%까지 오른다. 일본보다 더 가파른 속도다. 그러나 한국의 여성 노동자 비율이 증가하는 만큼 시간제/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도 높아졌다. 지난 2006년 39.3%에서 2016년 50.1%까지 올랐다.

이는 남녀 임금의 차이로도 나타난다. 2015년 기준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6.6%, 일본은 26.6%다. 한국은 격차가 제일 심한 나라이며 일본은 세 번째이다.

 

돈이 가계로 흐르지 않는다

일본은 90년대, 소위 버블시대라고 불리는 호황이 끝난 후 장기간의 디플레이션에 빠졌다. 저성장 저물가 상황이 오래 지속되었다. 고이즈미, 간나오토 등 과거 일본 정권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개혁, 내수 활성화 정책 등 각종의 경제정책을 펼쳤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등장한 아베는 크게 세 가지 방향의 정책을 취한다. 정부에서 인위적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공격적인 성장전략 추진. 아베는 이를 통해 기업과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이 활력이 다시 가계소득을 높이고 민간소비를 회복하는 선순환구조, 이른바 ‘낙수효과’가 성공하길 바랐다.

 

 

일단 아베노믹스의 시작은 성공적이었다. 장기간 엔저 현상이 이어진 탓에 수출 기업의 수익이 개선되었다. 창업률과 여행수지도 좋아졌다.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이래 일본의 명목 및 실질 GDP는 사상 최대수준으로 증가하였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감소한 명목 GNI(국민총소득)도 상당 부분 회복되었다.

 

 

기업의 수익성도 개선되었다. 일본의 2016년 전산업 영업이익은 아베노믹스 실시 이전(10.1조엔)보다 5.8조엔 증가한 15.9조엔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률도 3.2%에서 4.8%로 1.6%p 상승했다.

하지만 기업의 실적 개선이 가계로 이어지진 않았다. 일본 기업들은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신규투자나 설비투자를 꺼렸다. 급변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단 명분으로 돈을 쌓아두기 시작했고 고용도 저임금, 비정규직 위주로 대체했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일본 내 비정규직은 730만명이 늘었고 사내유보금은 212조엔이 증가했지만 설비투자는 금융위기 이후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아베는 기업의 실적개선이 가계에까지 미치는 선순환, 낙수효과를 원했지만 결과는 사내유보금의 증가와 비정규직의 증가였다.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늘지 않으니 민간 소비도 살아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일본의 가계소비지출은 2000년 이후 하락세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생산성 향상이 더디다

일본 기업의 고용유연화, 바꾸어 말하면 비정규직 위주의 고용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냈다. 투자를 꺼리다 보니 기술혁신과 인적자본의 축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양질의 일자리가 줄다 보니 업무 요구수준보다 높은 수준의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는 노동자(숙련 불일치 - Skill mismatch)가 OECD 평균(21.4%)을 훌쩍 넘는 전체의 1/3에 이르게 되었다. 인적 자본 배분의 비효율이 심해진 것이다.

이는 노동생산성 향상의 둔화로 이어졌다. 일본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2007년까지 연평균 1.4%를 유지했지만 2011년부터는 0.5%에 불과했다.

 

 

따라서 아베가 구상한 생산성 제고를 통한 임금·소득 증가 → 소비 증가 → GDP 증가 및 수익성 개선 → 고용 증가 및 임금 상승으로 다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는 빨간 불이 켜지게 되었다.

 

답보 상태의 아베노믹스, 그리고 한국의 미래

아베노믹스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장기침체로 역동성이 저하되어 있던 일본 사회 전반의 활력을 제고하면서 성장세 회복, 엔화 약세, 기업수익성 개선, 고용 확대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반작용도 있다. 기업들은 개선된 실적을 직원들과 나누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대신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아래 사내유보금을 쌓고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며 체질개선에 나섰다. 그 결과 소득의 양극화가 심해졌고 가계의 실질 소득은 증가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런데 국내 소비가 늘어날 여지는 거의 없었다.

한국도 일본과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다. 극심한 저출산과 노인 인구 증가로 인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줄기 시작했다. 일본만큼의 저성장은 아니지만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최근 몇 년간 좀처럼 3%를 넘기지 못했다.

기업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장기적 리스크에 대비해 설비투자를 줄이고 있으며 사내유보금을 쌓고 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사회진출은 늘어나고 있지만 그 숫자만큼 비정규직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인구절벽은 한국이 직면하게 될 미래다. 하지만 일본의 상황을 보면 인구가 감소한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영향만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취업률과 각종 지표들을 보면 그렇다.

고용여건은 개선되었지만 저임금, 비정규직 위주의 질 낮은 일자리만 늘어나게 되었고 가계소득이 개선되지 않아 생산성 저하와 내수 침체라는 악순환을 맞고 있는 일본의 사례는 우리가 맞게 될 인구절벽의 또 다른 과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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