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8년 05월 11일 15시 50분 KST

이 104세 과학자의 '자발적 죽음'에는 슬픔도, 고통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부르겠어요."

Stefan Wermuth / Reuters

“내게 무엇을 선택할 기회가 남아 있다면, 마지막으로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부르겠어요.” 

휠체어에 몸을 기댄 백발의 노인이 작은 방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따뜻한 박수로 그를 맞았다. 노인은 내일로 ‘예정된’ 죽음에 대한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난 더 이상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 내일 삶을 끝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기쁘다. 이를 가능하게 해준 이곳 의료진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104살 데이비드 구달이 10일 오후 12시30분께(현지시각) 스위스 바젤에서 ‘조력사’ 조처를 받고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그는 지난 1일 오스트레일리아 <에이비시>(ABC) 방송에 출연해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로 건너가 의료적 조처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뭐냐는 현지 언론의 물음엔 ‘신체의 노화’를 꼽았다.  

 

앞서 9일 구달은 바젤의 작은 호텔에서 생애 마지막 기자회견을 열고 9번 교향곡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를 독일어로 힘차게 불렀다.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낙원의 딸들이여. 우리 모두 정열에 취해 빛이 가득한 성소로 들어가자!” 작은 호텔방에 모인 여남은 명의 기자들이 다시 한번 따뜻하게 박수를 쳤다.

지난 2일 오스트레일리아를 출발한 구달은 아들이 사는 프랑스 보르도를 방문한 뒤 7일 마지막 안식처가 될 바젤에 도착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처럼 안락사를 금지한다. 지난해 남동부 빅토리아주에서 안락사가 합법화됐지만, 불치병에 걸린 상황에서 ‘6개월 미만’의 시한부 선고가 내려져야 하는 등 엄격한 조건이 붙어 있다. 그나마 이 제도는 2019년부터 시행된다. 이에 견줘 스위스에선 건강한 사람이라도 상당 기간 동안 죽고 싶다는 명확한 뜻을 밝혀왔다면 안락사에 필요한 의료적 조처를 받을 수 있다. 세계 의학계의 뜨거운 논쟁 주제인 이른바 ‘스위스 옵션’이다. 

신체의 자연스러운 노화 외에 별다른 병이 없는 구달이 안전하게 죽기 위해선 결국 스위스로 건너갈 수밖에 없었다. 구달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죽고 싶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스위스보다 훨씬 많이 뒤처져 있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의 사례가 세계에서 안락사에 대한 규제를 재고하는 데 도움을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Stefan Wermuth / Reuters

 

그는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삶에 대한 의욕이 넘쳤다. 생태학자인 구달은 100살이 넘은 뒤에도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퍼스의 이디스카원대에서 논문을 발표한 현역이었다. 2016년 대학에서 그에게 “출퇴근이 위험하니 자택에서 연구를 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이를 거부하고 대학 연구실에 출퇴근하며 일해왔다. 

삶에 대한 의지를 꺾은 사고가 발생한 것은 몇달 전이었다. 그는 자택 방에서 혼자 넘어져 큰 부상을 당했다. 청소부가 그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길 때까지 이틀 동안 방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안락사를 결정한 이유를 묻는 현지 언론의 질문에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난 이제 104살이다. 내 삶은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건강 상태가 더 악화되면 더 불행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남은 문제는 돈이었다. 그는 스위스로 건너가 안락사 조처를 받는 데 드는 비용인 1만5천 오스트레일리아달러(약 1200만원)를 모으기 위해 인터넷을 활용했다. 320명으로부터 1만9천 오스트레일리아달러가 모였다. 

영국 출신인 구달은 2차 대전이 끝난 뒤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한 뒤 오랫동안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에서 근무했고, 평생 130여편의 논문과 저작을 남겼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