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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이라는 미군은 왜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나?

미국인들은 우방을 위해서라도 전쟁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Anna Altenburger via Getty Images

“미군은 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봄, 합참회장인 해군 장군 조셉 던포드 주니어는 아프가니스탄을 5일간 방문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AP는 탈레반 및 IS에 맞서는 미국이 지원하는 전쟁에 대해 “손에 잡힐 듯한 낙관”을 품고 전쟁 지역에서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터널 끝의 빛 같은 것이었을까?

던포드 장군은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을 통해 미군과 아프간군이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의 말을 듣던 기자들 중 세계 최고의 군사력이 그런 접근을 생각해 내는데 16년이나 걸린 이유를 물은 사람이 있었는지는 저 기사엔 나와있지 않다. (그리고 던포드가 언급한 변화들 중 근본적인 변화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질문은 던져볼 만하다. 미국인들이 끊임없이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미군은 ‘역대 최강의 전력이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게 옳다면, 미국에 비해 지극히 초라한 자원을 가지고 싸우는 적들과 맞설 방법을 찾는 게 이토록 어렵고 어토록 오래 걸려야 했을까?

이것은 미국의 현재 분쟁들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 뉴스를 보니 볼티모어 선 특파원으로서 직접 목격했던 예전의 전쟁이 생각났다. 나는 그 전쟁의 마지막 3년을 취재했다.

베트남에서, 또 그 이후의 전쟁에서, 미국과 지역 동맹은 적들에 비해 재래식 화력으로는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기지 못했다. 나는 이런 의문이 든다. 미국의 정치와 군사 지도자들, 미국의 대중이 베트남을 보다 정직하게 기억했다면, 괴로운 진실을 위안이 되는 거짓 믿음으로 감싸지 않았다면, 미국은 21세기의 무력 충돌에 대해 보다 총명하고 효과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을까?

예를 들어 미군이 베트남에서 총력을 다해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졌다는, 끈질기게 나오는 이야기는 어떤가. 로널드 레이건은 정치인들이 “미군이 이기게 하는 걸 두려워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이야기가 암시하는 바는 명백하다. 이미 해왔던 것을 좀 더 많이 했거나, 더 오래 했으면 미국이 이겼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다른 분쟁에서도 군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같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만약 미국이 베트남에서 진 것이 물리력 부족 때문이었다면?

 

국지전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여러 팩트를 보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이 동원한 파괴력의 양을 보라. 육군 군수사령부의 연구에서는 “군 역사상 유례가 없는 양의 파괴적 재래식 화력”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항공과 육로로 어마어마한 양의 군수품을 날랐다. 미군 지휘관들은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이동성, 장비, 보급품을 동원해 싸웠다. “무제한에 가까운 보급, 놀라울 정도로 공급되는 장비의 작전준비태세, 쉴새없이 들어오는 탄약과 석유, 외부적 제정 제한 면제가 특징이었다.”

간간이 총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보기에도 미국 화력 수치는 어마어마했다. 국방부 기록에 따르면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적에 비해 무려 600배 빠른 속도로 탄약을 소비했다. 예를 들어 1969년에는 이들은 지상탄약을 매달 10만톤 사용한 반면, 공산군은 150톤만 사용했다. 미군이 전투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남베트남 지휘관들이 미국의 군사 지원이 줄어들어 보급이 부족하다고 쉴새없이 개탄했던 1974년에도, 남베트남측은 상대보다 65배 많은 탄약을 사용했다.

이 수치에 폭격까지 포함하면 비율은 더더욱 한쪽으로 치우친다. 베트남전에서 미 폭격기가 북베트남, 남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에 투하한 폭탄의 양은 독일과 일본이 세계 2차 대전 때 투하한 폭탄의 양을 합친 것보다 약 두 배 많았다.

이 수치들을 보면 미국이 베트남에서 지나친 제약을 받으며 싸웠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미군은 화력, 테크놀로지, 기동성에서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우월함을 가지고 7년을 싸우고도 이길 수 없었다. 동맹 세력이 이길 수 있게 해놓지도 못했다. 미국의 군사교리, 워싱턴에서 생각하는 군사력의 개념이 이 분쟁에는 적용되지 않았다고 결론내리는 것이 훨씬 논리적이다.

다음 세대의 미군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품고 간 교리는 어땠을까?

1996년 문서를 업데이트하여 2000년에 작성된 합동비젼 2020’(Joint Vision 2020)에서는 ‘전방위지배‘(Full Spectrum Dominance)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앞으로 20년 동안 미군이 진화하는데 있어 이것이 ‘개념적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작성자들은 설명했다. 그 내용은 슬로건보다도 더욱 오만하다. “군사 작전 전방위에 걸쳐 우세한 세력 - 설득하여 평화를 꾀하고, 전시에는 결단력을 갖고, 어떤 형태의 분쟁에서도 우위를 갖는다 … 세계 어디에서든 군사 작전의 모든 영역에 걸쳐 승리할 준비가 되어 있고 … 군사 작전 전방위의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적도 무찌르고 통제할 [능력이 있다].”

어떤 적도 무찌른다? 어떤 상황도 통제한다?

2020년까지 열 건 중 아홉 건의 비율로, 엄청난 화력과 테크놀로지를 갖춘 미군은 참전한 곳에서 전면적 우세 비슷한 것조차 이루지 못했다. 초라한 무기를 갖춘 군대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반군이 저급 기술로 저렴하게 만든 폭탄을 배치하는 걸 막지도 못했다. 지역 경찰이나 공무원이 시민들을 수색하는 것을 막지도 못하여, 내란 진압전에 중요하다고 우리가 말하는 대중의 지지를 약화시켰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최근 약 17년 동안의 경험을 보면 ‘전방위지배’는 망상 속의 판타지처럼 들린다.

미국이 베트남에 대대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을 때는 2차 대전의 위대한 승리가 겨우 20년밖에 되지 않았을 시점이었다. 2차 대전은 미군을 이끌고 베트남에 들어간 고위 장교들을 형성한 경험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오만함은 이해가 가기도 한다. 반면 전방위지배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사람들, 거기에 영향을 받은 지휘관들은 베트남전 이후 약 20년 뒤의 사람들이다. 그러니 전능에 대한 그들의 착각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그리고 베트남전이 끝났을 때, 당시의 미군은 전략이나 수행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그리고 지금도 우긴다). 정치인들이 그들을 너무 제한해서, 혹은 너무 빨리 멈추게 만들어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우겼다. 그런 종류의 발언을 증명하거나 부정할 방법이란 없지만, 세계 2차 대전 승리에 걸린 시간에 비해 2배(베트남), 3배(이라크), 거의 4배(아프가니스탄)의 시간을 썼다는 걸 생각하면 그들에게 제약이 심했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이런 주장도 공허하게 들린다.

 

손자병법: 네 친구를 알라

‘합동비젼 2020’ 문서를 아무리 검색해 봐도 ‘동맹’, ‘연합’, ‘주둔국 정부’, ‘지역군’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이런 것이 빠졌다는 사실엔 의미가 있다. 베트남전 및 최근 전쟁들에서, 미군과 동맹들이 물질 자원을 압도적으로 많이 갖고도 성공을 거두지 못한 근본적 이유는 미국 관료들이 놀랄 정도로 인정하기를 꺼리는 미국의 현지 파트너들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는 정보(광의, 협의 양면 모두에서)에 대한 미국의 접근에 암시하는 바가 있다. 군사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처럼, 정보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2500년도 더 전에 손자병법에 나왔던, 정보의 첫 번째 목표는 ‘적을 알라’는 것이라는 점을 보자. 미국 지휘관들이 적을 더 잘 알았더라면, 지난 50년 동안 미국이 치렀던 전쟁에 분명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전과 그 이후의 전쟁들에서, 정보 방면의 가장 큰 실패는 적을 잘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 친구를 잘 알지 못한 것이었다. 미국인들은 지역 동맹의 참담한 나약함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했다. 일부러 모른 척한 것인지 정말 몰랐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미국이 베트남에 투입한 무기, 돈, 조언은 남베트남군이 나라를 쉽게 지킬 수 있게 해줄 만했다고 미국인들은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러나 미국의 돈과 물자는 동맹군의 지휘관들을 효과적이고 경쟁력있는 군인으로 만들어주지 못했다. 리더십의 부족함을 메꿔주지도 못했다. 훨씬 가난하지만 숙련과 원칙, 지략을 가진 적군에게 남베트남이 패한 주요 원인이 그것이었다.

미국의 동맹이었던 사이공 정권의 가장 큰 약점은 만연한 부패였다고도 할 수 있다. 부패 때문에 남베트남인과 군인들이 분노하고 정부에 등을 돌렸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부패 때문에 정부와 군대의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졌음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1966년에 사이공을 방문한 미국 연구 단체의 내부 메모는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행정 시스템 내의 높은 수준의 부패와 시스템의 무능함 사이에는 치명적인 상관 관계가 있다. 윗사람들이 부패한 하급자들을 격려하고 승진시키고, 업무 성과가 나쁘거나 명령을 대놓고 거부해도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은 사기를 꺾으며, 부패에 가담하지 않는 능력있고 헌신적인 사람들을 솎아 내는 역할을 한다.”

이 글을 썼으며 부패 부분 초고를 작성하기도 한 프랭크 스코튼은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 복무했으며 현지 사정에 정통한 사람 중 하나이다. 비망록 ‘힘든 싸움’(Uphill Battle)에서 스코튼은 한 베트남 장군의 말을 인용했다. “나는 부패한 장교들의 이름을 여럿 댈 수 있지만, 부패했으면서 능력있는 지휘관은 한 명도 댈 수 없다.” 그 장군은 결국 정권 비판 때문에 해고되었고 망명길에 올랐다.

이 연구 단체는 남베트남에 필요한 개혁 추천 목록에 ‘부패의 현저한 감소’를 첫 번째로 올렸다. 하지만 이 내부 메모가 작성되고 나서 거의 6년 뒤에 베트남에 가게 된 내가 목격한 남베트남 시스템은 스코튼의 설명과 완전히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여러 해 전에 적었듯, 내가 만난 가장 정직하고 유능한 장교들은 가장 좌절하고 사기가 꺾인 사람들이었다. 약 3년 후 남베트남이 패전하고 마지막 철수팀과 함께 베트남을 떠날 무렵, 나는 사이공 정부가 패전한 가장 큰 이유는 부패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 이후 알게 된 그 어떤 사실도 내 생각을 바꿔 놓지 못했다.

 

유령 군인의 귀환

나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은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서 봐도 비슷한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게 보였다.

충격적인 뉴스가 들려오기도 했다. 2014년 가을에 이라크에서 IS의 공격이 거세지고, 비교적 소수인 이들의 손에 도시들이 연달아 함락되었다. 미군이 훈련시킨 이라크군의 실제 전투력이 서류상의 능력에 비해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 드러났다. 왜냐하면 사단 4개에 해당하는 무려 5만명의 군인이 ‘유령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거나 군대를 떠났지만 등록되어 있는 이들 명의로 월급은 계속 나왔고, 그 돈은 지휘관이 챙겼다. 예를 들어 IS가 모술을 공격했을 때, 모술을 지키고 있는 정부군은 표면상으로는 25000명이었지만 실제로는 그 절반도 되지 않았다. 2003년에 미국이 침공한 후 250억 달러 정도를 지원받은 군대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와 똑같은 일을 비롯한 다양한 부패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일어났다. 훈련, 조언, 자금을 지원하는 미국인들의 최우선 과제는 아프간 보안군의 능력 개선이었는데도, 2016년에 어느 주에서는 정부의 임금을 받는 군인과 경찰의 절반 가까이가 존재하지 않거나 출근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모든 군인의 급료, 무기, 차량, 총알, 전투화가 미국 자금으로 지급되는 남베트남군에서, 월급 빼돌리기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병사가 사망해도 이를 알리지 않고 월급을 지휘관이 가로채는 ‘유령 군인’이 있었다. ‘꽃 군인’, 즉 장식용 군인은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지내며 월급을 상사에게 주었다. 그러므로 남베트남군의 전투력은 공식 보고서에 기재된 것에 비해 훨씬 못 미쳤다. 명목상으로는 300명이 소속되어 있는 부대의 실제 병력은 반이나 3분의 1 정도인 경우가 흔했다. 모술에서 패배한 이라크군에도 ‘유령 군인’이 잔뜩 있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지원했던 정부와 21세기에 지원한 정부들은 참 많이 닮아있다. 부패와 관리 무능이 만연해 있고, 미국의 목표를 이루는데 큰 장애물이 되었다. 미국 역시 이런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저널리스트 더글러스 위싱이 ‘적에게 돈 대기’(Funding the Enemy)라는 책에 썼듯, 아프가니스탄에 만연한 부패에 대한 대대적 연구 보고서에서는 미국 정부가 부패에 대한 의미있는 행동을 취하기는 커녕 거의 ‘무시했거나 부추겼다’고 밝히고 있다. 아프간 재건 특별 감찰관의 수많은 보고서들 역시 보다 외교적인 표현을 쓰긴 했어도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탈레반이 미국의 자금을 가로채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설명하며, 위싱은 탈레반이 그 돈을 전부 무기, 오토바이, 휴대전화에 썼음을 지적한다. 탈레반은 종교적 양심 때문에 개인적으로 횡령하지 않은 것이다. 위싱은 “탈레반은 최소한 미국 납세자들의 돈을 정직하게 사용하기는 했다”고 통렬하지만 적절한 언급을 덧붙였다.

 

새로운 연극, 똑같은 대본

2018년의 세계는 반세기 전의 세계와는 아주 다르다.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는 아주 다른 국가들이다. 각 국가들의 전쟁은 각기 다른 기원과 정황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미군은 베트남에서 싸웠던 미군과는 아주 다르다. 그러니 단순한 비교는 힘들다. 그러나 이 전쟁들의 내러티브를 압축시켜놓고 보면 놀랄 정도로 닮아있다. 무제한적 화력을 지닌 미군이 대대적으로 투입된다. 훨씬 더 초라한 무기를 가진 군대를 무찌르려고 수 년 동안 싸운다. 미국 지원 당국은 좋은 정부를 세우고 번영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돈과 조언을 마구 뿌린다. 적어도 대부분의 시민들이 미국이 지원하는 쪽을 지지할 수 있을 정도는 될 만큼의 좋은 정부, 번영한 국가를 만드는 게 목적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얻으려 했던 목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효율적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현지 주민들이 보기에 정당하고 미국에게 우호적인, 안정적인 지역 정권은 생기지 않는다. 미국은 직접 목표를 달성하려던 시도를 포기하고, 미국이 지원하는 세력에게 미군처럼 싸우는 법을 가르치면 목표가 이루어지겠거니 생각한다. 그러나 현지군에겐 미군 만큼의 자원이 없다. 예를 들면 부상병들을 실어나를 헬리콥터가 부족하다. 현지 군인들은 돈많은 미국인들이 있는 동안 헬리콥터에 익숙해졌는데 말이다. 이런 정책 역시 당연히 잘 통하지 않는다.

같은 상황을 두세 번씩이나 겪으면서도 이런 시나리오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왜 다들 빨리 깨닫지 못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 속에 들어가 있다보면 물이 끓게 되어도 모를 수 있다. 워싱턴과 국방부의 사고는 미국인들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정확히 기억하지 않기 위해 미화화하는 성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베트남전을 기념하는 국방부 웹사이트가 좋은 예다. 그렇다 해도, 베트남전을 겪은 군인들과 미국인들은 최근 수십 년 동안 미국이 품고 있는 전쟁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을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미군 지휘관들이 스스로에게, 상사에게 우리의 성취와 동맹의 능력에 대해 계속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한다는 걸 몰랐단 말인가. 그런 채로 베트남전 이후의 분쟁들에서 그토록 오래 싸웠단 말인가.

거의 언제나 그렇듯, 문제를 설명하는 것은 해결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깊이 뿌리내린 구조와 믿음을 크게 바꾸어야 한다. 사리 추구에 대한 개인과 단체의 자각이 바뀌어야 한다. (미국인들은 미군이 세계 최강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걸 그만 둘 수 있긴 할까?) 미국은 전쟁과 현실 세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이미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교훈을 얻지 못하면 대가는 비극적으로 더 커질 뿐이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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