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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10일 15시 1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10일 15시 10분 KST

'칼퇴근'은 사실 있어선 안 되는 단어다

huffpost

회사에서 개인주의 문화를 찾아보기 힘든 것만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계약문화이다. 계약문화가 잘 지켜졌다면, 어쩌면 우린 ‘칼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 칼퇴란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이상하다. 퇴근시간이 돼서 퇴근하는 건 점심시간이 되면 밥을 먹는 것처럼, 출근시간이 되면 출근하는 것처럼 너무 당연한 거다. 칼밥, 칼출근이라는 단어가 없듯 칼퇴라는 단어도 사실 있어서는 안 되는 단어다. 칼퇴라는 단어가 버젓이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건 그만큼 계약문화가 자리 잡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계약서에 적혀있는 출근시간 출근하고, 퇴근시간 맞춰 퇴근한다면, 계약서에 적혀있는 업무만 한다면 출근길이 조금 더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Miyuki Satake via Getty Images

최근 직장 내 갑질 문화 사회이슈로 떠오르면서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분노했다. 한류 못지않게 해외로 쭉쭉 뻗어나가고 있는 갑질이라는 단어는 얼마 전 영국 인디펜던트지에 소개되기까지 했었다. 일부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을 밤늦게까지 잡아두며 춤 연습을 시키는가 한 편, 공연 당일 날엔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춤추게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또 기업 회장들의 연이은 운전사 폭행 및 아래 직원을 향한 욕설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소소한 갑질이 회사에서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면 유치원 하원 시간에 맞춰 상사의 자녀를 집에 데려다주러 간다거나, 상사 아들의 점심 도시락을 싸야 한다던가, 주차 심부름을 한다거나, 커피를 내려온다던가 하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입사할 때 작성한 근로계약서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사수의 자녀가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유치원 앞에 가 있어야 한다’, ‘상사 아들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커피를 내려야 한다’는 내용의 업무는 적혀있지 않을 것이다. 이는 명백한 계약 위반이다. 이와 같은 일 때문에 “회사 다니기가 싫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라고 얘기하면 어른들은 또 이렇게 얘기한다.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서... 한심하긴.” 앞에서도 말했지만 끈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한심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갑이 먼저 계약을 어겼고 그에 따라 우린 계약을 해지한 것뿐이다. 이게 어떻게 한심한 일인가. 진짜 한심한 건 부당한 일을 겪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참아내라”, “인내해라”라며 다시 부당한 현실로 출근시키는 사람이 아닐까?

우리가 모든 계약서를 이처럼 소홀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계약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회사를 다녀보지 않더라도, 알바라도 한 번 해 본 사람은 다 안다. 회사를 다녀본 사람은 더 잘 알 것이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그 중요성은 더 잘 알 것이다. 회사 대 회사 간의 계약을 위반하면 어떻게 되는지, 계약서를 잘못 썼다가 회사에 큰 손해라고 입히게 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는 말단사원도 다 안다. 그런 계약서들의 중요성을 그렇게 잘 알면서 왜 회사 대 직원의 계약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가. 왜 자꾸 업무가 아닌 일을 업무로 둔갑시켜 주는가.

고용노동부에서 제공하는 표준 근로계약서를 보면 아주 자세하게 흔히 우리가 얘기하는 갑과 을의 구분이 명확하게 되어있으며 갑은 을의 근로계약기간, 근무 장소, 업무의 내용, 소정근로시간, 근무일/휴일, 임금, 연차 유급휴가를 포함한 9개 부분에 있어 을과 계약을 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많은 회사들이, 상사들이 계약관계로 이루어진 것을 자주 깜빡한다. 때로는 아예 잊어버렸는지 아랫사람을 종 굴리듯이 굴린다.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카페 막내로 들어가서 매일 아침 커피 타는 거야 일이지만, 직책이 마케팅부 사원인데 매일 아침, 손님이 올 때마다, 회의가 있을 때마다 커피를 타오라고 하면 그게 일인가? 그것이 사원을 대하는 자세인가? 아니면 종을 대하는 자세인가? 정도가 지나친 회사에선 00 씨 대신 ‘야!’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르바이트생을 대하는 건 더 심하다. 내가 잠깐 일했던 식당에서는 주방실장이 아르바이트생들을 이 새끼 저 새끼로 불렀다. 다들 귀한 집 새끼들이다. 이름도 없이 불려 다니고, 커피나 타라고 키운 자식들이 아니다. 이런 지나친 갑질에 직장인들은 스스로를 ‘사노비’라고 부르며 점점 “사축이 되어간다”라고 말한다. 잊지들 마시라. 우린 계약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주인과 종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걸.

*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