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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후드티와 반바지로 바꾸자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학생들이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은 바로 학교다. 편한 교복이 필요한 이유다.

ⓒ한겨레/한가람고등학교

새로운 교복 문화가 온다

“일단, 숨이 안 쉬어지는 느낌? 7세 아동복보다 훨씬 작은데요? 현대판 코르셋 같아요.”

최근 유튜브에 올라온 ‘교복입원 프로젝트-6년 동안 매일 12시간씩 갇혀 지낸다면? 아동복보다 작은 교복?’(이하 프로젝트) 영상 속 학생 출연자들의 말이다. 이들이 영상에서 여학생 교복과 7~8세용 아동복을 비교해봤을 때 교복이 훨씬 작았다.

불편한 교복, ‘국민청원’에도 올라가

초등성평등연구회 등이 기획한 이 프로젝트 영상은 조회 수만 19만회, 댓글은 1500개 넘게 달렸다. 교복의 비침 정도와 통기성, 신축성 등을 두고 비교 실험도 했다. 여학생 교복 셔츠 뒤로 글씨를 갖다 대자, 한눈에 읽힐 정도로 원단이 얇았다. 땀 흡수도 잘 안 됐다. 반면 남학생 교복은 도톰한 소재를 사용해 글씨가 비치지 않았고 통기성이 좋았다.

프로젝트 영상 아래 달린 중·고교생들의 댓글 내용은 이렇다. ‘교복 재킷은 너무 불편하다. 양쪽 팔을 올릴 수도 없이 꽉 조이고 누군가 어깨를 누르는 기분이다. 보온성도 떨어진다’, ‘중·고교 시절 여자 교복 입어본 사람들은 알 거다. 그냥 중세시대 철창에 가둬놓는 것처럼 고문이다. 통풍도 안 된다. 그리고 여자 교복은 왜 꼭 치마여야만 하느냐’.

지난 3월 중·고교 입학식을 치른 뒤 교복이 너무 불편하다며 호소하던 학생들은 직접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교복 관련 국민청원만 100여개다. 청원의 공통적인 내용은 ‘한창 자라날 시기의 청소년들은 성별 구분 없이 활동성이 보장되는 옷을 입을 권리가 있다’는 것.

‘후드 교복’으로 달라진 학교 문화

이런 가운데 학생들에게 이미 ‘교복 결정권’을 준 학교가 있다. 2012년 서울 목동 한가람고등학교는 교복으로 후드 티셔츠를 채택했다. 이 학교는 이미 2006년에 반바지와 티셔츠를 교복으로 도입한 바 있다.

후드 티셔츠를 입으면 수업 분위기가 나빠지거나 생활지도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우려는 ‘100% 오해’였다. 후드 티셔츠를 입으니 교사도 옷차림을 지적하는 빈도가 줄었고, 사제 간 불필요한 갈등도 사라졌다. ‘훈계와 타박,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에 서로 믿으며 즐겁게 지내자’라는 학교 공동체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몸의 활동성을 보장받으니 여학생들은 자율 동아리 및 체육 교과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백성호 교장은 “최근 교복업체들이 정장 스타일의 ‘핏’을 강조하는 바람에 성장기 아이들이 하루 종일 입고 있어야 하는 교복은 불편한 옷이 됐다”며 “후드 교복 채택 뒤 후드와 긴바지, 후드와 반바지 조합이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복장이 됐다”고 했다.

3학년 황수현양은 “학교 각층 학생 휴게 공간인 ‘마루’에 편하게 양반다리로 앉아 실험 등 연구 활동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건 흔한 모습이 됐다. 특히 1, 2학년 후배 여학생들의 3분의 2가 매주 토요일 스포츠클럽에서 축구, 농구 등 각종 경기를 한다. 다른 학교 친구들도 무척 부러워한다”고 했다.

후드 티셔츠 교복은 가격도 저렴하다. 땀 흡수도 잘 안 되는 기존 교복 상의가 4만~5만원이라면 후드 교복은 1만6천원(일반 후드), 1만8천원(기모 후드)이다. 백 교장은 “입찰 공고를 통해 후드 교복을 도입했다. 회색과 짙은 청색 두 가지 색상, 집업 후드와 티셔츠 형태, 기모 안감 여부까지 최대 8가지 조합에서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학생들이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 바로 학교다. 시설 못지않게 교복도 학생에게 편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백 교장은 “교실에서 몸의 제약 없이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게끔 배려하는 것이 교육 현장에서의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아이들과 교직원 모두 만족도가 높고, 생활지도 면에서 서로 ‘믿음’이 강해졌습니다. 학습 효율도 덩달아 올라갔고요.”

여름철, 세탁 편한 ‘생활복’ 입기도

부모세대에게 교복이란 일사불란, 상명하복, 단정한 모범생 등의 이미지였지만, 최근 많은 학교들이 ‘교복과 학생다움’을 다시 정의하고 있다. 공교육 현장에서 ‘자라나는 학생들의 건강에 좋고, 날씨 변화를 고려했을 때 실용적인 옷이 바로 교복이다’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충주여자고등학교는 2012년 여름 교복으로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생활복을 채택했다. 학생은 물론 학부모와 교사들 모두 ‘대만족’이었다. 치마가 짧다며 길이를 ‘단속’하는 등 전근대적인 규제도 없앴다. 이 학교 권민서 학생안전부장은 “아침마다 교문 앞에 서서 아이들에게 벌점 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생활복 도입 뒤 요즘엔 교문 앞에서 웃기 바쁘다. 몸에 잘 맞는 생활복을 입고 가방을 멘 채 뛰어들어오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활기를 느낀다”고 했다. “특히 여름에는 블라우스 등을 매일 세탁해야 하잖아요. 기성 교복은 잘 마르지 않는다는 학부모 의견이 많았습니다. 생활복 도입 뒤 여름에 더위 타는 학생들도 줄었고 교실 분위기 자체가 쾌적해졌어요.”

일본·영국 등 젠더리스 교복 시도

외국에서도 ‘교복의 틀’을 깨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 일본과 영국 등에서는 최근 ‘젠더리스’(genderless) 교복이 대세다. 여학생이 바지 교복을 입을 자유, 남학생이 치마를 입을 자유 등 성별과 관계없이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자유’로까지 교복의 개념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 지바현에 개교한 한 시립 중학교는 여자와 남자 구분 없이 학생이 원하는 대로 치마와 바지를 골라 입을 수 있게 했다. 넥타이와 리본도 선택할 수 있다. 상의 교복 또한 여학생과 남학생 모두 똑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었고, 불필요하게 가슴이나 허리 라인이 부각되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2016년부터 120여개 초등학교 및 중학교를 중심으로 ‘젠더 뉴트럴’(성 중립) 교복을 채택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성별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것이 결국 성평등 교육으로 이어진다는 학교 공동체와 학부모들의 지지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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