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8년 05월 10일 09시 48분 KST

5·18 당시 '계엄군의 집단 성폭행' 피해자였던 여성이 전한 증언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이 여성들을 집단으로 납치해 성폭행했다는 구술 자료가 확인됐다. 이런 증언을 한 사람은 당시 군인들에게 납치돼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승려가 된 ㅇ씨였다. 이는 광주항쟁 당시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이 군에 의해 집단적으로, 상습적으로 벌어졌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여성·인권 단체들은 이들 사건을 단순 성폭력이 아니라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로 규정하고 당시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에 대한 별도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광주항쟁 20년 뒤인 2000년 ‘5·18기념재단’이 5·18 생존자들을 직접 만나 기록한 구술 자료집을 보면, 당시 여고생이었던 집단 성폭행 피해자 ㅇ씨의 증언이 실려 있다. ㅇ씨는 1980년 5월19일 계엄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했을 때 혼자였냐는 질문에 “다른 사람들 서이(셋)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아줌마 같애”라고 말했다. 자신 외에 계엄군에게 끌려가 성폭행당한 여성이 3명 더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ㅇ씨의 성폭행 피해가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더 많은 피해 가운데 하나였음을 보여주는 증언이다.

ㅇ씨의 증언을 보면 계엄군이 여성들을 납치해 성폭행한 정황이 잘 드러나 있다. ㅇ씨는 당시 광주 주변 도시에서 광주의 한 여고를 다니던 중에 5·18을 맞았다. ㅇ씨는 다른 여성 2~3명 정도와 함께 계엄군들에 의해 강제로 차량에 태워진 것으로 보인다. ㅇ씨는 “(광주시) 유동에선가 어디서 잡혔는디, 집에 갈려다, 맞아 갖고 차에 끌려갔어요. 살려달라고 막 난리가 아니제”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당시 이들을 납치하고 성폭행했던 계엄군은 계획적으로 이런 행위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군인들이 여성들만 납치했기 때문이다. 질문자가 “남자들은 내리고 여자들만 데리고 간 거예요? 아니면 원래 처음부터 여자들만 태웠어요?”라고 묻자 ㅇ씨는 “여자들만 태웠재”라고 답변했다.

한겨레/이지현씨 제공
5·18민중항쟁 부상자동지회 초대 회장을 지낸 이지현(예명·이세상·65)씨가 1989년 2월 20일 전남 나주 남평 한 식당에서 여승이 된 ㅇ씨를 만나 5·18민주화운동 때 겪은 사연을 듣고 있다. 

ㅇ씨 등 여성 3~4명이 집단 성폭행을 당한 지점은 광주시 남구 백운동 인근 야산으로 추정된다. ㅇ씨는 “어, 그때 기억으로 차에서, 아니 차에서 산에 데리고 갔어”라고 했다. 이들이 성폭행을 당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5월19일은 11공수특전여단이 광주에 증파된 날이다.

ㅇ씨는 성폭행당한 직후부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해 학교에도 나가지 못했다. ㅇ씨는 “막바로 이상해 갖고, 집에서 가방 들고 갈라믄 못 가게 하고”라고 말했다. ㅇ씨 가족들은 3~4년이 지난 뒤에야 ㅇ씨가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것이 5·18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가족들에 의해 불임수술까지 받았던 ㅇ씨는 두 차례나 자살을 기도했다.

5·18 당시 계엄군 군인들이 여성들에게 저질렀던 학살과 폭력행위는 전쟁범죄와도 같았다. 5월22일 광주시내에서 시위대는 온몸이 두부처럼 짓이겨지고 가슴이 잘린 여성 시신을 발견했다. 사망자는 당시 19살이었던 ㅅ씨였다. 1980년 6월20일 광주지검 공안과에서 작성한 검시 조서는 “ㅅ씨가 가슴이 날카로운 것에 찔린 ‘좌유방부 자창’에 골반부와 대퇴부에 여러 발의 총탄이 관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계엄군은 대검으로 ㅅ씨의 젖가슴을 찔렀고, 실신했거나 죽은 상태의 ㅅ씨의 성기 쪽에 집중적인 총격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성 가슴과 성기를 난자하는 행위 등은 전쟁 때 진압군이 피지배 여성들의 전의를 꺾기 위한 전형적 ‘과시적 성폭력’으로 분석된다.

안진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18 때 여성에 대한 공격이 더 잔혹했던 이유는 시민들에게 공포를 조성하기 위해 더 효과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계엄군이 여성에게 가한 만행은 남성의 경우와 달리 성적 차별까지 동원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5·18 당시 계엄군 등 신군부가 시민들에게 공포를 조작하기 위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도 “만약 국내법상 공소시효 때문에 법적 처벌이 어렵다면, 5·18 때 저질러진 여성에 대한 국가폭력에 대해 진상 규명이라도 철저히 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적 심판이 이뤄져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영상 캡쳐
5·18 당시 전남도청을 장악한 계엄군의 모습 


5·18민주유공자유족회가 2005년 집계한 통계를 보면, 5·18 사망자는 모두 606명으로, 이 가운데 165명은 항쟁 당시 숨졌다. 항쟁 당시 숨진 165명 중 여성은 13명이다. 사망자 165명 중 129명은 총상, 9명은 자상, 17명은 타박상으로 희생됐다.

향후 5·18특별법 제정에 따라 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되면 여성들에 대한 국가폭력을 더 엄정하고 섬세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광주전남지부 김상훈 변호사는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나 친고죄 여부 등의 법적 조항만 보면 실정법상으로 처벌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5·18 당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단순 성폭력이 아니라, 국가 폭력 범죄로 다른 처벌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5·18 당시 여성에 대한 군인들의 성폭력을 ‘인도에 반하는 범죄’라는 시각에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경규 경북대 연구교수는 “군대가 총기를 이용해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민간인을 학살한 행위와 그 와중에 발생한 여성에 대한 성폭행은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해당된다”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런 범죄는 아예 공소시효 자체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기소해 처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여성에 대한 국가폭력 책임자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5·18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수사관들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가 입수한 당시 합동수사본부 직제표를 보면, 합수본부는 단장·국장·부국장 밑에 조정통제과, 수사1·2·3과, 특명반, 대공과 등의 6개 과에 66명이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