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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09일 11시 21분 KST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와 동생, SBS 앞 시위 나선 이유

‘시크릿 마더’ 스태프들이 하루 20시간 일하고 있다.

한겨레/임재우 기자
故이한빛 PD의 동생인 이한솔씨가 8일 서울 양천구 에스비에스(SBS) 앞에서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1인 시위에 나섰다.

“형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방송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중받는 현장을 꿈꿨습니다. 그 꿈을 잇기 위해 이 자리에 서게 됐어요.”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에 문제제기를 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한빛 피디(PD)의 동생 이한솔(29)씨가 8일 낮 서울 양천구 에스비에스(SBS)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이한솔씨는 이한빛 피디의 유지를 이어 방송 제작환경 개선을 위해 설립된 한빚미디어노동인권센터(한빛센터)의 이사를 맡고 있다.

이씨는 “방송계 종사자들이 소화하는 주 6일 하루 20시간의 노동시간은 장시간 노동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며 “형의 죽음 이후에도 방송계의 축적된 문제 탓에 제작환경 개선이 요원하다”고 말했다.

이씨가 에스비에스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게 된 이유는 최근 한빛센터로 들어온 제보 때문이다. 한빛센터가 받은 제보 내용에 따르면, 12일 첫 방송을 앞둔 에스비에스의 주말드라마 ‘시크릿 마더’의 스태프들은 하루 20시간이 넘은 살인적인 노동시간에 시달렸다.

한빛센터가 제보로 받은 ‘시크릿 마더’의 4월 9일부터 30일까지의 촬영시간 집계를 보면, 스태프들은 22일 오전 10시에 모여 다음날인 23일 새벽 5시40분께 촬영을 하는 등 20시간에 가까운 일정을 소화했다. 하지만 이런 강행군 이후에도 찜질방에서 1시간 정도 잔 뒤 오전 9시에 다시 모여 다음날인 24일 새벽 6시까지 촬영을 이어갔다. ‘초장시간 노동’이라는 이씨의 설명이 과장이 아닌 셈이다.

센터 쪽은 방송계 만연한 ‘초장시간 노동’의 원인 중 하나로 대부분이 ’비정규직·프리랜서’ 신분인 방송현장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을 꼽았다. 이씨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방송업이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올 7월부터 68시간의 근로시간을 준수해야 하지만, 프리랜서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방송제작현장 노동자들은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여기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며 “방송사들은 자사의 정규직 노동자 뿐 아니라 방송현장의 모든 노동자에게 단축된 근로시간을 포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는 드라마 제작 현장 노동실태에 대해 특별근로 감독을 실시해 5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한빛센터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상파 방송사와 ‘씨제이 이엔엠’(CJ E&M) 등을 돌며 릴레이 1인 시위를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릴레이 1인 시위에는 이한빛 피디의 아버지인 이용관씨, 한빛센터의 탁종열 소장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탁종열 소장은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결과 발표에서 방송제작현장 노동자의 근로자성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길 바란다”며 “방송사는 현장 종사자를 위장 자영인으로 둔갑시켜 사용자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를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