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5월 11일 16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11일 21시 26분 KST

새로운 삶을 선택한 ‘입양 부모’가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사실

'드라마와는 달랐다’

‘가족‘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의 주제다. 하지만 언제나 사람들의 편견과 마주하는 가족도 있다. ‘입양‘을 통해 하나의 가족이 된 사람들이 그렇다. 어떤 이는 입양 가정에게 ‘혈연‘을 논하고, 또 어떤 이는 입양 부모가 아이를 구했다고 말한다. 부정적인 인식, 혹은 긍정적인 시선 모두 그들을 진짜 가족이 아닌 ‘대리가족‘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입양가정의 부모들은 ”우리는 구원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구원자가 아니라, 부모일 뿐이라고. 불쌍한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라고 말이다.

5월 11일, 입양의 날을 맞아 ‘입양 가정’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낮 서대문의 한 카페에서 네 명의 입양 부모가 대화를 나눴다. 입양을 선택한 결정적인 순간의 감격부터 아이에게 사랑을 받았던 기억, 그리고 우리 사회의 편견을 없애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이들은 울고 웃으며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이들의 대화에 참여한다면 입양가정에 대한 당신의 생각도 달라질 것이다.

입양, 인생의 길목에서 ‘더 빨랐으면’ 좋았을 선택

 

토크 1. 입양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김현하: 결혼 당시엔 제가 지금과 다르게 몸이 가냘프고 허약했어요. 남편에게 “우리 혹시라도 아이 갖지 못하면 입양하자”라고 시작할 때부터 말했죠. 7년을 재미있게 살다가 ‘아이를 가져야겠다’ 생각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되더라고요. 인공수정을 세 번 하고 나니 몸에도 무리가 왔고, 꼭 직접 출산해야 가족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과 결혼할 때의 다짐이 겹쳐져서 오랜 고민 끝에 결정했어요. 2014년 50일 된 해원이를 만났죠.

박순희: 스스로 입양 계의 끝판왕이라 생각해요. 제가 서른여섯, 남편 마흔둘에 결혼했는데요. 그때까지도 임신을 못하리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어요. IMF 터진 뒤에 둘 다 퇴직하고, 남편하고 여행 다니다가 한국에 들어왔는데요. 제가 마흔여섯인가 됐을 때, 당시 집에서 가까운 성가정 입양원에서 1년 가까이 봉사를 하는데 “나이가 너무 많으세요. 지금 입양하시면, 아이가 어머니 아버지를 키워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 정신을 차렸어요. 입양기관도 찾고, 지방을 돌아다니다 2014년, 제 나이 쉰둘에 드디어 5개월 된 딸 민채를 입양했어요. 그때의 감격이 자꾸 떠올라요.

HPK PS

김인순: 어릴 때부터 입양기관 근처에 살았는데요. 중학교 때 교장 선생님이 미혼이신데, 입양했다는 이야길 건너 들었어요. 그래서 나도 이다음에 결혼하면 입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남편과 9년 연애 후 결혼해서 첫애를 낳고, 입양 기사를 보고 마음 먹었는데요. 언니가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조카를 봐주느라 한 달이 지났고, 그러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둘째를 임신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또 포기하고 지냈어요. 그러다 두 아들이 중3, 중2일 때 가족회의를 하는데, 큰아들이 “엄마 저 어릴 때 입양하신다더니 왜 안 하시냐?” 묻는 거예요. 바로 인터넷으로 입양 서류가 어떤 게 필요한지 찾아서, 서류를 들고 입양기관으로 찾아가 상담했어요. 큰딸 윤정이 입양은 그렇게 거짓말처럼 술술 진행이 됐죠. 결심과는 달리 걱정도 많았어요. 지금도 사회적 편견이 많지만, 그땐 더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주변에도 알리지 않고, 친정엄마에게만 알렸어요.

둘째 딸 입양 당시엔, 큰아들이 “학교에서 여자애들이 속닥거리는데 그 모습이 좋아 보이더라. 그러니 고생스럽더라도 넷째 입양하셔라”하는 거예요. 사실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아들 고3 뒷바라지도 해야 해서 망설였어요. 그런데 남편도 “어차피 버는 돈으로 나눠 쓰는 건데 당신 힘들까 봐 이야길 못했다.”는 거예요. 당시에 남편이 실직 중이었거든요. 첫째딸 때는 통장에 250만원 있어서 200만원 입양 비용 내고, 50만원은 아기 용품 샀거든요. 둘째 딸은 그래서 대출 200만원 받아서 입양했어요.

주진경: 미국 사람들이 정말 사랑으로 한국 아이들 키우는 기사가 났는데, ‘외국 사람들도 이렇게 키우는데…’ 나도 키워야겠다 마음먹었죠. 둘째 애가 병치레가 심해 정신없이 살다가 아이가 대여섯 살 때쯤인가, 입양기관 통해 입양한 부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당시 우리 남편은 “있는 애나 잘 키우자” 이런 식이었는데, 입양 결정하고 아이를 찾으러 가는 순간까지도 “차가 이렇게 막히는 건 아닐 수도 있어”라며, 아이를 안고서도 “이제 더이상 입양은 없어”하더라고요. 저는 아이를 안는 순간 ‘음, 이제 진짜 시작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넷째를 입양할 땐 오히려 남편이 밥 먹다가 “우리 입양하자!” 그러더라고요.

 

토크 2. 아이를 처음 본 순간,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김인순: 아이가 집에 오던 날, 두 아들이 학교에 가 있는 시간에 데리고 왔는데요. 엘리베이터 내려서 현관까지 몇 발짝을 쿵쾅쿵쾅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미리 지어놓았던 이름을 부르면서 “윤정이 왔어?” 하고, 아기를 감싸 안고는 자기 방으로 가는 거죠. 문은 발로 밀고. 마치 라이언 킹의 한 장면처럼 아이를 안고 무릎을 굽히고는 기도를 하는 거예요. “내가 이 아이의 아빠 같은 오빠가 되겠다”라고 다짐을 하면서. 그 모습이 잊히질 않아요.

HPK PS
김인순 어머니

박순희: 전 처음에는 “아이가 왜 이렇게 빨개?”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제가 당황했던 기억이 더 많이 떠오르는데요. 당시 선생님이 기저귀 갈고, 옷 갈아입히는 거 연습하랬는데. ‘내가 이거 못해서, 그냥 가라고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 엄마 자격 있어요’라고 보이려고 잘하는 척, 능수능란한 척 보이려 노력했어요.

김현하: 누구는 아이에게 빛이 나는 듯 감동이라는데, 전 처음 한두 번 봤을 때도 ‘이 아이가 내 아인가?’ 정이 하나도 안 붙었어요. “근래에 이렇게 예쁜 아이가 없다”는 데도, 오히려 바로 “데려가세요.” 할까 겁났던 기억이 나요. 세 번째 보는 날. 아이가 모세기관지염으로 입원해서 병원에 찾아갔던 그날도 아픈 아이를 한번을 안아보질 않았어요. (울음)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퇴원하는 날,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고, 부천 집에서 인하대 병원까지 한 달을 왔다 갔다 병원에 다니면서 “정말 내 아이구나, 지켜줘야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HPK PS
김현하 어머니

주진경: 남편 만났을 때도 안 떨리는 심장이 큰딸 만날 때, 쿵쾅쿵쾅. 한 생명이 제 가슴 속에 있는 걸 보면서 너무 사랑스러웠던 기억이 나요.

 

토크 3. 아이가 집으로 온 뒤, 언제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셨나요?

김인순: 아이가 3일 밤을 자지러지게 울었어요. 울 때마다 안방, 침실, 부엌 온 집안을 라운딩했어요. 3일째 되는 날,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데서 아이를 바라보면서 “내가 너의 엄마야. 내가 너를 보호할 테니 걱정 말아라.” 그러면서 내가 왜 입양을 했는지 쭉 설명했어요. 애가 저를 뚫어지라 눈싸움하듯 쳐다보는 거예요. 그랬더니 신기하게 ‘네, 엄마 맞아요’ 이런 말을 하듯, 아이 눈이 보드라워지면서, 스르르 잠이 들더라고요.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날 이후로는 아이가 밤에 깨서 울어본 적이 없어요.

박순희: 위탁 엄마 품에서 낮 두시쯤 데리고 왔는데, 자다 깬 아이가 새벽 네시까지 우는 거예요. 12시간 넘게 땀이 뒤범벅된 옷을 입고, 애를 안고 있었어요. 입양기관에 전화했더니 “아이 낳을 때 산통이 24시간도 가잖아요. 산통이라고 생각하세요.” 하더라고요. 마카라스도 흔들어 주고, 우유도 먹여 보고. 그러다 잠깐 눈 붙였나, 아침 7시에 침대에 엎드려 있던 아이를 내려다보는데, 마치 영롱한 이슬이 쨍하고 비치듯이 ‘쌩끗’ 웃는 거예요. ‘나 엄마 알아봤으니 걱정 마’ 이렇게 말해주듯이. 저도 그때 ‘너 내 딸 맞구나’ 생각했어요.

HPK PS
박순희 어머니

김현하: 저희 아이는 밤새 잘 잤어요. 제 옆에 재우면서 “엄마야, 내가 엄마야”라고 익숙하진 않지만 계속 되뇌었어요. 그때의 기분은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주진경: 저희 딸은 지방에 있는 시설에 11개월 있다 데려왔어요. 아이가 늦잠을 자더라고요, 아침까지도. 열시가 되어도 안 일어나길래 문을 열어보니, 그 어두컴컴한 방에서 손을 조물락 거리면서 혼자 놀고 있는 거예요. 울지도 않고, 별 표정 없는 그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어요. 그때 더 일찍 만날 걸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여느 가정처럼 울고 웃는 입양 가정의 육아 분투기

 

토크 4. 아이를 키우면서 언제 가장 힘드셨나요?

김인순: 제가 ‘친모 착각 사건’으로 이름 붙인 일이 하나 있는데요. 둘째 딸이 유치원 선생님이 생모인지 알고, 유치원만 가면 좋아하고, 집에 오면 우울하더라고요. 남편은 생부라고 생각해서(웃음), 저를 보는 눈이 심상치 않았어요. ‘저것만 없으면 유치원 선생님을 데리고 와서 같이 살 텐데…이런…’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밥을 먹여도 씹지도 않고. 그래서 물었어요. “너 유치원 선생님이 잘 해주니까 생모인지 아니?” 그랬더니, 그렇대요. 얘를 정말 그냥 이렇게 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너 낳아준 아빠도 따로 있어. 아빠도 생부 아니야”라고 솔직히 말해 줬고, 그 후 아이와 관계를 회복하려고 했는데 3년 넘게 걸렸어요. 얼굴을 잡고 눈을 마주치려 해도 눈동자가 돌아갔어요. 정말 야단 칠 일이 있어서 쳐도 입양 엄마라서 그러나 싶고. 그때 정말 입양이 정말 힘든 거구나 싶더라고요.

김현하: 아이가 만 네 돌 즈음인데, 아직 그런 걸 느낄 시간은 없었어요. 대신 저도 지난번에 친모착각사건 이야기 듣고, 아이에게 그게 무엇이든 솔직히 알려주고 풀어가자 싶어서 “너는 낳아주신 엄마 아빠가 따로 있어”라는 이야기를 따로 해 줬어요.

박순희: 우리 딸 아이가 말을 너무 잘해서요. “네가 이거 해”라고 하면, “너라고 하지 마세요. 민채라고 부르세요.”하고. 저를 조련시켜요. 그런데, 처음 입양 사실을 얘기해줬을 때, 오줌을 싸는 거예요. 기저귀를 채워줘도 풀고. 그때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HPK PS
주진경 어머니

주진경: 저희 딸이 똑똑한데 의외로 한글을 늦게 깨쳤어요. 반년 홈스쿨링하고, 1학년 2학기에 학교를 보냈는데, 선생님이 아이가 바른데 다만 읽기에 문제가 있다고. 난독증일까, 좀 힘든 시절이긴 했는데 좋아졌죠. 중 1, 2까지 집중적으로 치료했는데, 사실 입양 때문에 힘든 일이라기보다 어떤 집이라도 아이 키우면서 겪는 일이죠.

 

편견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토크 5. 배우자를 만나는 ‘결혼’도 사실 사회적인 제도인데, 왜 아이를 낳는 것만 피가 섞여야 한다는 편견이 아직도 존재하는 걸까요. 입양 후,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받았던 적이 있으신가요.

김현하: 상처라기보다 황당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집 할머니께서 “아이가 커서 자기 집 찾아가면 어쩌려고” 이런 말부터 정말 가까운 대학 시절 친구가 “너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입양했는데 그런(그렇게 좋은) 유치원에 보내네!”라는 말까지. (웃음) 그러려고 열심히 돈 버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때, ‘아,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상처 주는 말을 할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박순희:“누구 집 애를 하나 구했네” 이렇게 말하는 거요. 우리 입양 부모들은 온전히 가슴으로 낳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는 구원자가 아닌데, 불쌍한 아이 하나 구한다는 시선이 싫었어요.

김인순: 같이 먹고, 살고, 지지고 볶고. 그렇게 계속 함께 살아지는 것. 피가 안 섞인 가족이 있다고 해서 더 이상한 것도 아니고, 혈연관계로 이뤄진 가족도 얼마나 무너진 곳이 많은가요. 입양으로 맺어졌다고 해서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에 비교해 뭔가 다를 거라고, 더 특별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HPK PS

주진경: 저도 비슷한 느낌이 든 적 있었어요. 우리 딸 다니는 교회 선생님이 식사 자리에서 이런 말을 건넸어요. “우리 현서 잘 키워줘서 감사하다고, 자기는 못 하는 걸 해줘서 고맙다고요.”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지만, 내 자식 키우는 당연한 일인데,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또 입양 연구하시는 분과 상담할 때마저 “언제가 가장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드냐” 이렇게 물어보시기에, 입양 부모를 진짜 부모로 보기보단 대리 가족 정도로 보는구나. 우리 사회가 얼른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어요.

김인순: 가장 흔한 말, ‘머리 검은 짐승’, ‘남의 애 키운다’ 같은 말 정말 많이 들었죠. 그런데요. 나도 내가 입양을 하기 전에는 그런 얘기에 대해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고, 입양 관련 기사 볼 때면 ‘저분 참 훌륭하시다, 어떻게 저렇게 입양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거든요. 그 마음, 그걸 대단하게 생각해서 입양한 게 맞거든. 나도 입양을 해 보기 전까지는 어떤 말들이 상처가 되는지, 내 몸으로 낳지 않은 자식도 얼마나 소중한 내 아이가 될 수 있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이렇게 말해요. “훌륭하다고 생각하시면 밥이라도 한번 사시죠?” (웃음)

 

토크 6. 이런 사회적 편견을 없애고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박순희: 우선 법적인 용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친’자라는 이 한 글자가 어디에 붙어 있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 확 다르다고 보거든요? ‘친’자가 아직도 생부모에게 붙어있어요. 낳은 사람이 친권을 포기하는 서류에 사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 부모에겐 ‘친’자가 안 붙어있어요. 친생부모라고 하거든요. 입양 부모에게 친부모라고 붙여주고, 불러줘야 한다고 봐요.

김인순: 지난번 유소년 캠프에서 “너희들은 호적에 어떤 용어로 기재되어 있는지 알고 있니?”라는 질문에 5학년 여자아이가 대답한 건데요. “입양 부모는 친부모, 낳아주신 분은 생부모”라고요. 그래서 “올바르게 생각하고 있구나. 하지만, 너희가 중학교 올라가고 사회에 나갔을 때. ‘친’자가 너희 부모에 붙어 있지 않더라도 상처받지 말아라. 사회가 잘못된 거지, 너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친’자가 낳아주신 분에게 붙어있다 하더라도 우리 부모님이 잘못 가르쳐줬다고 생각하지 말아라.”라고요. 아이들도 부모들도 이런 것으로 쓸데없이 기죽어야 할 때가 있는 거죠.

주진경: 우리 딸이 중학교 3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낳아준 진짜 엄마 어디 사는지 알아?” 이런 질문을 아직도 받아요. 계속 물어보니까 우리 딸이 “같이 살고 있잖아. 네가 좀 더 성숙하면 이해할 날이 올 거야.”라고 말해줬다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낳아준 부모를 진짜 부모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드라마도 그렇고. 우리가 우리 애들을 단도리를 할 수밖에 없는 거지. ‘진짜 부모’, ‘가짜 부모’ 이런 말부터 없어져야 해요.

HPK PS
김인순 어머니의 육아노트

김인순: 그래요. 입양 교육 강사를 다니다 보면, “진짜 엄마 누구냐, 버린 거 아니냐, 부자들이 입양하는 거 아니냐? 다시 돌려보내는 거 아니냐?” 이런 질문은 거의 매시간 나와요. 그리고 ‘버렸다’는 표현이 입양 부모들에겐 굉장히 예민한 표현이에요. 그런데 “들었을 때 기분 나쁘다, 이런 표현을 쓰면 안 된다, 쓰레기에 쓰는 거지 사람한테 쓰는 거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보다, 입양 부모들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연인끼리 헤어질 때도 “그놈이 날 버렸어”라고 얘기하거든요. 대신 이 부분은 어린 생명에 대한 표현이기 때문에 고쳐야 한다고 봐요. 입양된 다른 한 친구가 우리 딸 아이에게 “진짜 우리 엄마가 날 버린 거지?”라고 물어왔을 때, 제가 가르쳐 준 대로 친구에게 답해 줬더라고요. “날 낳아주신 엄마는 날 기를 수 없어서 양육을 포기했어. 그러니 너도 생부모님이 널 기르는 걸 포기하고, 입양을 선택하신 거지.”라고요.

김현하: 저도 “해원아, 네가 너무 소중해서 엄마(생모)가 그 어려운 절차를 거치고, 입양을 선택하셨어.” 이렇게 이야기를 해 주거든요.

김인순: 가장 확실한 표현을 해서 아이에게도 가르쳐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고. 그래도 고마운 건, 아이들이 커가면서 신기하게 다 이해를 한다는 거예요.

 

아이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면서 부모의 인생도 달라졌다

 

토크 7. 공개입양을 하시면서 아이와 함께 생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셨나요?

김인순: 제가 대학원 논문 작성 과정에 참여했을 때, <자기 기록영화가 입양아동의 자아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자기 기록 영화를 찍어 연구하시는 분이었는데, 우리 윤정이가 태어난 그 시점부터 입양 후 자라나 낳아준 엄마를 찾아보는 과정을 영화화 했어요. 그 대본을 윤정이가 쓰고 감독이 됐죠. 자기 역할은 동생이 연기를 맡고요. 생부모를 만난 장면에서 엄마가 “잘 컸구나, 만났으니 우리 집에 가서 엄마랑 같이 살래?” 이렇게 물었는데, 그때 딸의 대사가 “생각해 볼게요”였어요. 제가 몇 달 지나서 “그렇게 쓴 이유가 뭐야?” 물어봤더니, 낳아주신 부모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싫어요. 전 여기 있을 거예요”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고, 유보하는 대사를 썼다는 거예요. 그분이 받을 상처를 헤아렸다는 거죠. 이렇게 아이들은 낳아주신 분들에 대한 공경이 밑바탕에 있어요.

주진경: 맞아요. 아이들은 생모가 자신의 생명을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 기본적인 존중이 있어요.

김현하: 저는 해원이가 두 돌 된 2016년, 아동학대 사건이 많이 이슈가 되어서인지 생모가 걱정되고 불안해서 연락이 왔어요. 우리 해원이 생일날, 사진을 보고 싶다고. 그래서 안심하고 본인의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다 싶어서, 고르고 골라 제일 웃는 사진을 보내줬어요. 그땐 오히려 연락이 또 올까 겁이 나기도 했는데, 그 이후엔 해가 바뀔 때마다 연락이 안 오니 서운하기도 하고. 그래서 나중에 아이가 커서 원한다면 적극적으로 생모 찾기를 도와줄까 생각하고 있어요.

HPK PS
김현하 어머니

김인순: 우리 큰딸은 대학원생과 함께 입양기관에도 찾아 갔었는데요. “키는 얼마? 외모는요?” 이런 질문에 입양기관 직원이 생모와 상담하며 작성했던 기록들을 읽어주신 거죠. 아이가 말하길, 그전에는 뭔가 답답한 것이 가슴 속에 있는 것 같았는데, 이젠 속이 후련해졌다는 거예요. 이렇게 간접적인 방식으로도 생모 찾기를 해 보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박순희: 우리 민채는 대학교 졸업하면 그때 정도 물어보고 싶대요.

HPK PS
김인순 어머니의 육아노트 등

김인순: 음, 입양 당시, 큰딸 윤정이는 생모가 스물한살, 작은딸 은정이 생모는 스물아홉이었어요. 입양할 때에 큰딸 생모는 다시는 아이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고, 작은딸 생모는 나중에 아이가 크면 언젠가는 한번 만나보고 싶어 했다고 알고 있어요. 큰딸이 행여라도 이 사실을 알고 힘들어할까봐 그 생각으로 하루를 엉엉 운 적이 있는데, 큰아들이 “엄마 스물한 살 먹은 사람이 결혼도 못 하고 애를 낳았을 땐, 도망가고 싶은 생각밖에 더 있겠어요. 이다음에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는 건데 기다려 보세요.”라며 위로하더라고요. 정말 그렇구나, 아들이 나보다 낫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윤정이의 경우, 생모가 태교를 정말 열심히 한 엄마 중에 한 분이었다는 이야기를 입양기관을 통해 전해 듣고는 생모가 자기를 위해서 그걸 해줬다고 생각해요.

 

토크 8. 아이를 키우면서, 내 인생이 달라졌다고 느낄 때도 있으시죠?

주진경: 아이 넷을 키우면서 “자녀는 부모를 신에게 인도하는 조련사와 같다”는 말을 실감했어요. 아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부모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고, 고민하게 되고. 저희 딸 둘을 입양하면서 가장 많이 성장한 건, 오히려 부모인 저 같아요.

박순희: 저는 임신을 못 하면서, 많은 친구와의 관계가 끊어졌어요. “너희, 남들 안 낳는 자식 났냐, 왜 내 앞에서 그래. 너희들은 순풍순풍 잘 낳는데 내 마음을 아느냐? 그러니 너희가 나한테 잘 해야 돼.” 이런 말도 안 되는 욕심, 분노… 그런데 우리 민채가 오면서 제가 이렇게 바뀔지 몰랐어요. 자존감도 높아지고, 사람들도 다시 만나고 싶고. 게다가 제 성격이 다혈질이고 직설적인데, 민채가 말을 하고 알아듣는 순간부터는 아이가 엄마를 조련하는 거예요. “엄마 그거를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지, 예쁘게 좀 말해주세요. 우리 방금 전까지 사이좋게 지냈어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사이좋게 지내지 말자는 얘기예요? 조민채가 예쁘니까 엄마도 예뻐져야지.” 이런 식이죠. 이렇게 예쁜 우리 딸, 가슴으로 만나면서 정말 ‘자존감 업!’ 됐어요.

김현하: 전 엄청 내성적인 성격인데, 우리 딸 덕분에 이런 모임도 나오고, 교육도 다니고 있어요. 에너지가 생긴 거죠. 원래는 회사-집-회사-집이었는데.

HPK PS

김인순: 그 전에 아들 둘은 그냥 대충 키우면서도 걱정이 안 됐어요. 체력도 좋았고, 얘기도 잘 통하고. 그런데 윤정이 입양하고 나서는 모든 걸 예사롭게 못 넘어가겠더라고요.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땐, 아이 읽는 책은 같이 다 읽어봤어요. 아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해리포터를 읽다가 “그렇게 깊은 사랑은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람이 죽는다 해도 우리를 영원히 보호해 준단다.” 이 부분을 보여주면서 아이가 “엄마, 날 낳아주신 엄마가 이런 마음일 거야. 난 잘 클 거야.”라고 하는 거예요. 아이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아이 마음을 헤아리려고 애쓰게 되고, 입양 교육 강사도 하게 됐어요. 딸이 선생님한테 엄마의 그런 도전 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했다니까, 제가 더 힘내야겠단 생각도 들고요.

주진경: 그래서 공개입양이라는 점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엄마뿐만 아니라 자녀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 딸은 ‘새옹지마’라는 단어를 초등학교 때 배워와서는 “나를 낳아주신 엄마가 나를 키워주시진 못했지만, 지금 엄마 아빠 만나서 행복하게 크고 있는 내 이야기 같아.”하는데, 아이를 보면서 제가 삶을 배우더라고요.

 

토크 9. 선배 입양 부모님과 초보 입양 부모님이 오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눠 보신 소감은요.

김인순: 오늘뿐만 아니라 입양하신 부모님들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지금까진 어쨌든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잘 키워온 것 같다는 거예요.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잘할 수 있든 없든, 아이의 마음이 되어보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건 모든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해당하고요. 아이가 별 이유 없이 걸핏하면 울었을 때, 하루는 너무 암담해서 울면서 “나는 죽었다 깨도 네가 말해주지 않으면 힘든 걸 몰라. 네가 말해줘야 같이 풀어갈 수 있어.”라고 하소연한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는 아이가 그래요. “엄마, 나는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얘길 못 해.” 그리고 며칠 있다가 이야기하더라고요. 이렇게 내가 애를 쓰면 보이는 부분이 있다는 것. 그래서 자녀의 마음을 알려고 애쓰는 가족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박순희: 저도 애를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해 왔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그 위로의 마음, 자격, 자부심 같은 기를 잔뜩 받은 것 같아서 너무 좋습니다.

HPK PS

김현하: 저도 열심히 교육 다니며서 배운다고 배우는데, 저도 입양인으로 자란 것은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거든요. 이런 자리가 있을 때마다 평소에 놓치는 부분을 돌아볼 수 있어서 참 좋은 시간인 것 같아요.

주진경: 맞아요, 이렇게 대화하는 모임이야말로 저희 입양 부모에게 꼭 필요해요.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뒤돌아보면서 서로 삶을 나누고, 격려하고. 사실 제가 입양할 당시에는 그런 게 없었어요. 맨땅의 헤딩이었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애쓰는 건 애들이 알아줬고요. 오늘 입양 부모 모임 한다니까 오는 길에 딸아이가 묻더라고요. “엄마, 엄마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랬죠. “알지. 그런데 민채도 엄마 마음을 다 알진 못하듯이, 엄마가 어떻게 민채 마음 속까지 다 알겠어.”라고요. 그런데 궁금해지네요. 오늘 가서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물어보긴 해야겠어요. (웃음)

보건복지부와 중앙입양원은 허프포스트코리아와 함께 입양에 대한 사회 인식을 개선하고자, ‘사랑은 자란다’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깊은 관심과 따뜻한 사랑이 모여 우리 아이들은 자라납니다. 입양을 선택하는 것도 입양을 응원하는 것도 모두 사랑이 자라나는 행복한 동행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예비부모와 초보 입양부모를 위한 구체적인 육아 가이드를 제시합니다. 궁금한 점이나 사례를 ps@nativelab.co.kr로 보내주시면, 콘텐츠에 반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