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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기싸움? 수싸움?

  • 허완
  • 입력 2018.05.08 09:56
ⓒKCNA KCNA / Reuters

날짜와 장소는 정해졌다. 그러나 의제는 아직 논의 중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북한이 회담 의제를 놓고 막판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회담 테이블에 오를 보따리에 서로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담기 위한 수싸움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범위와 대상을 늘리려 하고,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와 관계 정상화를 우선순위에 두고 싶어 한다. 회담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알리는 또 다른 신호이다.

■ 미국의 의제 부풀리기…“핵기술, 생화학무기까지 폐기” 

마이크 폼페이오 신임 미국 국무장관은 2일(현지시각) 북핵 문제 해결의 원칙으로 기존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시브이아이디) 대신 ‘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PVID·피브이아이디)를 내세웠다. ‘완전한 비핵화’를 ‘영구적인 비핵화’로 바꾼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표현의 교체’인지, 아니면 ‘정책의 변화’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시브이아이디건 피브이아이디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미국의 요구는 본질적으로 같다. 다만, 영구적이라는 용어를 새로 쓰는 것은 비핵화의 범위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미래 계획까지도 넣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은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만드는 과정에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고집하며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의 포기를 주장했다. 이에 비춰 보면, 미국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래의 핵계획’까지 차단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를 다시 개발하고 제조할 수 있는 기술과 인력까지 통제하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핵폐기 이후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미국은 여기에 생화학무기도 얹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4일(현지시각)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과 만난 자리에서 “모든 핵무기, 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와 이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포함한 북한 대량살상무기의 완전하고 영구적인 폐기를 달성하자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비핵화의 범위를 대량살상무기로까지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도 의제에 올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또 5일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북한이 지난달 20일 당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지에 인공위성 발사 중단도 포함된 것으로 규정한 것이다.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는 평화적 우주개발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제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한겨레

 

■ 북한의 경고…“원점으로 되돌리지 말라” 

북한은 미국의 의제 부풀리기에 불쾌함을 표시한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6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을 통해 “미국이 우리의 평화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반도 정세가 평화와 화해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때,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자극하는 행위는 모처럼 마련된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정세를 원점으로 되돌려세우려는 위험한 시도로밖에 달리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가시화된 이후 북한 당국이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는 처음이다.

북한의 경고는 북·미가 의제를 조율하면서 힘겨루기에 들어갔음을 내비친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이 이번 북-미 정상회담 의제에 비핵화와 중장거리 미사일뿐 아니라 생화학무기, 인권 문제까지 포함하려고 하는 데 대해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로 읽힌다. 북·미가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드러났고, 이를 조정할 필요성이 생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피브이아이디 문제를 두고 북-미 간에 이견이 있어 보인다”며 “그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는 아직 청와대로서도 잘 알지 못한다.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미 공방이 회담장에서 협상력을 높이려는 계산된 행동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한 동향에 밝은 한 전문가는 외무성 대변인의 주장이 과거와 달리 다음날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에 실리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미 정상회담 의제 조율이 어느 정도 끝났을 텐데, 대북 제재 해제 문제는 의제로 정해지지 않았을 수 있다. 제재 해제가 절실한 북한으로선 그럴 생각이 없는 미국을 향해 협상용 차원에서 경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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