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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05일 16시 06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05일 16시 06분 KST

소비에 실패할 여유는 내게 없었다

‘가성비’, ‘저렴이’에 대한 강박은 사회를 질식시켰다

huffpost

아이들을 동네 슈퍼에 데리고 간다. 풀어 놓고 ‘너 사고 싶은 거 다 사라’고 하면 정말 눈에 띄는 걸 다 집는다. 먹어 본 과자, 안 먹어 본 사탕, 포장만 예쁜 젤리, 내용물보다 장난감이 더 많이 들어 있는 초콜릿, 전부터 사 보고 싶었지만 차마 집지 못했던 비싼 쿠키……. 끝까지 먹는 것도 있겠고 한 입 먹어 보고 다시는 안 살 것들도 있겠으나, 어쨌든 궁금했던 것들은 다 사고 다 뜯어 보고 먹어 본다.

하지만 ‘너 사고 싶은 것 딱 하나만 사 준다’고 하면, 일단 고르는 시간이 세 배쯤 늘어난다. 들여다보고, 집었다 놓고, 흔들어 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그러다 대부분의 경우 가장 좋아하는 과자를 고른다. 많이 먹어 봤고, 맛을 잘 알고, 그래서 절대 실패하지 않을 ‘안전한’ 선택. 대신 지난번에 못 산 과자는 이번에도 못 산다.

 

Goldcastle7 via Getty Images

 

20대 내내, 늘 ‘딱 하나만’을 강요당하는 아이의 심정으로 살았다. 해보고 싶은 것도 써 보고 싶은 것도 가 보고 싶은 곳도 많았는데, 항상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거나 둘 다 없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교재비며 교통비에 쓰고 나면 딱 가장 저렴한 학식이나 편의점 김밥을 사 먹을 정도만 남았다.

졸업 후 구한 계약직 일자리 월급 130만원도 별다르지 않았다. 집에 생활비 조금 주고, 학자금 대출 갚고, 이런 저런 요금을 내고 눈꼽만 한 적금 넣고 나면 한 달에 친구들 한두 번 볼 정도의 돈만 남았다. 굶어 죽지는 않았지만 딱 굶어 죽지만 않을 만큼이었다.

자연스레 내 모든 소비의 최대 목표는 ‘실패하지 않기’가 됐다. 약속이 생기면 늘 저렴하고 양 많은, ‘2인분 같은 1인분’ 맛집을 검색했다. 편의점에서는 참치마요 삼각김밥과 전주비빔 삼각김밥을 들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옷을 살 때면 눈에 띄는 색이나 디자인의 상품을 찾기보다 지금 가진 옷과 최대한 비슷한, 돌려 입기 용이한 옷을 찾았다.

물론 만족스럽진 않았다. 저렴하고 양 많은 맛집은 대개 왜 저렴하고 왜 양이 많은지를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맛이었고, 편의점 음식은 때마다의 허기를 때우기 좋았을뿐 딱히 돌아선 뒤 생각나는 음식은 아니었으며, 싸고 평범한 옷은 편안하고 막 입기 좋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쓰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물건들을 사는 건 너무 위험 부담이 컸다. 돈 한푼 잃어버리면 사흘 밤낮 가슴이 두근대는 마당에, 실패는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내 소비 패턴은 늘 비슷했다. 화장품, 옷, 생필품, 외식……. 주기적으로, 늘 가던 곳에서, 똑같거나 비슷한 상품을 샀다. 그게 안전했으니까. 영화를 봐도 제일 평점이 높은 걸 골라 그것만 봤고, 뭔가 하나 사려면 인터넷 페이지를 수십 개씩 뒤지며 모든 쿠폰을 총동원했다. 알뜰한 걸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지르고 나서, 나중에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살 수 있었다는 걸 알면 그만큼의 돈을 잃어버린 것처럼 속상했기 때문이었다.

 

Favor_of_God via Getty Images

 

힘들었다. 진지하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내 인생의 남은 몫이 이렇게 동전 몇 푼을 세며 벌벌 떠는 무미건조함뿐이라면 굳이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게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TV는 월세 단칸방으로 시작해 중산층이 된 중년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내보냈고, ‘젊을 땐 그렇게 아끼는 것도 재미다’, ‘나중에는 다 추억이야’ 같은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으니까. 그래서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지만 발랄한 척했고, 적은 돈으로 남들 하는 것 다 흉내만 내는 걸 자랑으로 알았다. 그러면 어른들은 건전하고 성실하다며 날 칭찬했고, 나는 그걸 다시 동력으로 삼았다. 그 사이 취향은 질식당했고 시야는 납작해졌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직장을 몇 번 옮기고, 월급이 좀 올라 아주 조금 숨통이 트이면서부터였다. 적지만 처음으로 ‘여유 자금’이라는 게 생겼고, 취향에 맞는 물건들을 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뭔가를 사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기껏해야 오래 쓸 수 있는 것과 내 마음에 더 드는 것 사이에서 후자를 고를 수 있는 정도의, 한번 써 보자는 생각으로 처음 본 것들을 살 수 있는 정도의 여유를 얻었을 뿐인데.

소비의 선택지에 ‘실패’라는 항목이 추가되면서, 비로소 내 일상에는 하나 둘씩 색깔이 입혀졌다. 그러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덧 세상이 내 시야만큼 납작해져 있었다.

‘가성비’라는 말은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물건의 앞에 접두어처럼 따라붙었다. 두메산골 첩첩산중에 들어가서도 사람들은 ‘이미 아는 맛’이 나오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식당을 찾았고, 찾으면 또 어디에나 그게 있었다. 서점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만 팔려 나갔고 관광지도 명소도 사람이 몰리는 곳만 몰렸다. 유명한 것과 이미 검증된 것만 소비하는 건 지독한 냄새처럼 빈틈없이 퍼져 있었다. 실패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상품은 외면당했고, 그 외면은 다시 선택지를 좁히고 주머니를 얇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악순환이 끝없이 이어졌다. 사회의 취향이 질식당하는 걸 바라보는 건 내 일상이 메마르는 것보다 더 서글펐다. 그게 사람을 서서히 죽인다는 걸 아니까. 천천히, 고통스럽게, 무기력하게 만들다 어느 순간 사람을 잡아먹고 만다는 걸 아니까.

 

123ducu via Getty Images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건 허리띠를 더 졸라매자는 다짐이 아니라 소비에 실패할 수 있는 여유다. 하나만 고르라고 다그치는 사람 대신 천천히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걸더 골라 보라고 말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며 취향을 사치의 영역으로 넘겨 버리기보다, 가격과 성능과 취향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나 굶어 죽지 않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살 수는 없으니까.

한참 여유가 없을 때, 어쩌다 몇 천 원 정도의 가욋돈이 생기면 나는 늘 2천 원짜리 매니큐어를 샀다. 매니큐어는 활용도나 실용성을 따지지 않고 오롯이 내 취향만을 기준 삼아 고를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빨간색이든 노란색이든 펄이 잔뜩 박힌 흰색이든 상관없었다. 늘 이제껏 안사 본 색, 그날 유독 눈에 끌리는 색을 사곤 했는데, 그건 당시 무채색에 가까웠던 일상에서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어떤 색깔이었다. 내가 그때를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런 작은색깔들 때문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선택과 취향이란 그런 것이다.

‘가성비’, ‘저렴이’에 대한 강박이 사회를 완전히 질식시키기 전에, 조금 더 많은 여유를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런 이유다.

 

 *유정아의 에세이집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