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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을 둘러싼 논란을 이해하려면 이 세 가지만 알면 된다

트럼프가 진짜로 원하는 건 뭘까?

  • 허완
  • 입력 2018.05.04 16:04
ⓒSAUL LOEB via Getty Image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병력 감축 옵션을 검토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청와대는 곧바로 ‘해당 보도는 사실무근’이라는 백악관의 반박을 전했다.

그러나 보도의 진위 여부와는 무관하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주한미군을 둘러싼 여러 논란과 추측의 맥락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엇갈린 판단과 빗나간 확신이 엉키면서 불필요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날 나온 보도의 핵심 내용부터 살펴보자.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각) 이 내용을 잘 아는 복수의 익명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병력 감축 옵션을 검토할 것을 국방부에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신속하게 반응을 내놨다. 비공개로 미국을 방문중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핵심 관계자에게 확인해보니 NYT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는 것. 

여기서 논란의 핵심이 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 여부다. 그러나 NYT 보도에는 그것 말고도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다. 청와대가 전한 백악관의 해명과는 별개로, 한국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한미군 관련 논의에 참고할 만한 부분도 많다.  

ⓒChung Sung-Jun via Getty Images

 

1. 평화협정 체결되면 주한미군은 감축·철수?

NYT는 이 관계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전면철수를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병력 일부 감축을 바라는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거부했다며 ”그러나 전면철수는 가능성이 낮다”고 전했다. 

다만 이 관계자들은 남북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현재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2만3500명의 병력 규모를 그대로 유지할 필요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NYT는 덧붙였다. 

언뜻 이 부분은 최근 논란이 된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의 기고문과 부분적으로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 특보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미국 및 한국 정부가 마주할 제약을 설명하며 이렇게 적었다.

한국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국내적 제약조건에서 자유롭지 않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에 있는 미군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협정 체결 이후 주한미군이 한국에 계속 주둔하도록 하는 것을 정당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에 대해서는 보수진영의 강력한 반발이 있을 것이며, 이는 문 대통령에게 주요한 딜레마를 선사할 것이다. (포린어페어스 4월30일)

조선일보는 NYT 보도 직후 ”또다시 ‘개인 의견’이라던 문 특보의 발언이 실현됐다”는 자유한국당 관계자의 말을 옮겼다. ”미국 측에서 감축 문제가 나온 만큼 현 정부는 미북회담이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거론할 것”이라는 말이 야권에서 나온다는 것. 

보수진영은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경계해왔다. ”(...) 우리에게 주한미군은 아직까지 생명선이다. 주한미군 없이는 나라를 지킬 수 없어서가 아니다. 주한미군이 북의 오판을 막는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나온 조선일보의 이 사설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보수진영의 경계심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청와대는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할 계획이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주한미군은 한미 동맹의 문제”라며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이라고 직접 선을 그었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문 대통령이 ”평화협정 뒤에도 동북아의 균형자 구실을 하는 주한미군이 필요하다고 여긴다”고 설명한다.

문정인 특보 역시 ”평화협정 이후에도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과 우리의 국내적·정치적 안정을 위해 주한미군의 지속적 주둔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기고문을 언론이 곡해했다며 자신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적은 없다”고도 했다.

원칙적으로도 주한미군 주둔은 평화협정 체결과 관계가 없다는 지적이다. 앞서 중앙일보는 ”한미연합사나 주한미군사령부는 정전협정이 아닌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하고 있는 만큼 평화협정과는 관계가 없다”는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의 분석을 소개했다.

물론 주한미군 병력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이게 한국 정부가 요청하거나 요구할 만한 성질의 문제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미국이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을 북미 정상회담의 ‘협상카드’로 쓰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전망도 나온다. 조선일보는 ”특히 걱정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기 위해 주한미군을 김정은과의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나.”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2.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원하나?

반면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NYT에 북미 정상회담에 활용하기 위한 ‘협상카드’ 차원에서 주한미군 감축 검토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협상에서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을 ‘선물’로 주고, 북한으로부터 다른 양보를 받아내려는 구상에서 나온 조치는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도 조선일보자유한국당 등이 우려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을 협상카드로 쓸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정작 김정은 위원장은 주한미군 주둔에 거부감이 없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3일 매일경제가 인용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원하고 있다며 북한은 오히려 주한미군 주둔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은 이미 베트남식 개혁·개방과 관련한 연구를 상당히 축적한 상태”라고 말했다. 해외 자본을 획기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베트남식 개혁을 하겠다는 것은 비핵화를 조건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는 북한이 중국에 대한 경계감이 생각보다 강하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견제와 균형을 취하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북한은 주한미군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이번에 했다”며 ”북한은 주한미군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고 밝혔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편이 오히려 낫다는 것이다. (매일경제 5월3일)

같은날 중앙일보는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 때 평화협정 체결 등으로 북한 체제가 보장될 경우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문제삼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확약할 가능성이 있다”는 청와대의 한 핵심인사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이 북한의 체제를 보장할 경우 주한미군은 더는 북한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은 이 경우 주한미군 주둔을 통해 오히려 북한의 대중국 협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계산도 이미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현재까지 우리가 (각종 남북 접촉 과정에서) 접한 내용에 따르면 주한미군에 관한 한 남과 북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밝혔다. (중앙일보 5월3일)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주한미군 주둔을 원한다면, 보수진영의 우려는 근거를 잃게 된다. 북한이 원하지 않는 ‘선물’을 미국이 협상카드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NYT는 북한과의 외교적 대화가 급물살을 탄 최근 상황과는 무관하게 해외 주둔 미군 병력의 규모와 배치를 재조정할 필요성에 대한 검토가 오랫동안 미뤄져왔다고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신념(?)에 비춰보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대목이다.  

ⓒChip Somodevilla via Getty Images

 

3. 트럼프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 주둔 미군을 전략적 자산으로 보는 전통적 시각과는 달리 이를 ‘막대한 미국 세금이 낭비되는 골칫거리’쯤으로 여겨왔다. 이것은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운 기질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이 일관된 생각을 유지해 온 몇 안 되는 이슈 중 하나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 시절부터 해외 주둔 미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미국은 세계경찰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독일과 일본, 한국, 사우디아라비아를 세계의 경찰처럼 방어해주고 있지만,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도 그는 ‘우리가 막대한 돈을 쓰면서 북한으로부터 지켜주고 있는데 한국은 대체 언제 돈을 낼 거냐’고 했다.)

그는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늘리지 않으면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동맹국들이 미군 주둔 비용을 “100%”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취임 이후에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언급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시사하기도 했다. ”우리는 무역에서도 돈을 잃고 군사에서도 돈을 잃고 있다”는 것.

지난해 한국 국빈방문 당시에는 평택 주한미군 기지에 대해 ”한국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굉장히 많은 비용을 한국측에서 부담해서 이 시설을 지었다고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한미군을 동맹국 방어 및 미국의 이익을 실현하는 동아시아 군사 전략 거점 기지 중 하나로 보는 전통적 시각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감축 검토 지시가 한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나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현재 한국과 미국은 내년부터 새로 적용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현재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절반 가량인 1조원 가량을 매년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 부담 몫을 1.5배까지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 전략자산 전개비용도 한국이 추가로 부담하는 문제를 협상 의제로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감축 검토 지시가 북한이 아닌 한국 정부를 겨냥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게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라면, 걱정해야 할 것은 북한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역사적 과제를 앞에 두고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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