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

북유럽 사람들은 가장 우울증이 심각한 사람들이다.

10개 나라가 3년 연속으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혔다. 북유럽 국가들이 행복 지수 최상위권을 계속 지키고 있고, 2018년에는 핀란드가 1위를 기록했다.

U.N.의 세계 행복지수 리포트는 갤럽 월드 폴이 150개 이상의 국가 주민들에게 삶의 질을 0부터 10까지의 척도로 매기게 하는 조사에 기반한다.

그러나 북유럽 국가들은 행복 지수만 높은 것이 아니다. 우울증 발병률 또한 높다. 경제 협력 개발 기구의 최근 추정에 의하면 핀란드, 아이슬란드, 스웨덴은 가입국 중 우울증이 가장 흔한 나라 7개국에 속한다.

이러한 불협화음의 이유는 무엇인가?

북유럽의 행복 지수를 반박하는 글들에선 흔히 추운 겨울, 일조량 부족, 사회주의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스웨덴인인 나는 겨울이 음울하다, 납세일 역시 꽤 나쁘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걸 해결하기 위해선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나는 일상의 폭력, 굶주림, 실직 후 노숙자 신세가 되는 일 등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 아주 드문 나라에서 자랐다.

그렇지만 스웨덴은 서점에 셀프 헬프 매뉴얼이 가득하고, 미친듯 주방을 리노베이션하지만 요리는 잘 하지 않는 나라이기도 하다. 냉장고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미소를 지어!’, ‘오후 6시 이후로는 탄수화물 먹지 마’ 등의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있는 곳이다.

스웨덴 문화의 이런 면은 북유럽 국가들과 미국 등 ‘가장 행복한’ 국가들의 행복에 대한 임시변통 접근 방식의 완벽한 예다. 우리의 행복에 대한 극심한 위협이 없으니(행복 지수를 보다 정확히 정의하면 사실 이것을 측정하기 위한 지수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더 행복해졌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대치를 계속해서 높여왔고,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엄청나게 행복할 수 있다(또 그래야 한다!)는 착각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어린이들은 마치 불만족이 떨쳐낼 수 없는 질병이라도 되는 양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보호받는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감정 전부에 대처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깨지기 쉬운 물건처럼 다룬다. 불편한 감정을 뚫고 나갈 수 없는 것처럼 취급한다.

원래 ‘어린 시절’은 아이들이 근성을 기르고 자족을 배워가는 시기였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 동안 ‘어린 시절’은 이부프로펜, 항균 크림, 푹신한 벽 속에서 예외론과 행복의 권리를 주입받는 시기로 바뀌었다.

그 결과 우리는 불편함을 참을 수 없게 될 수밖에 없었고, 모든 고통을 불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심지어 정신적 결함의 명백한 증거로까지 보게 되었다.

첫 연애가 깨졌을 때 나는 당연히 언짢았다. 그때 처음으로 셀프 헬프 책을 샀다. 서점의 셀프 헬프 섹션(‘논-픽션:라이프’라는 완곡한 이름이 붙어있었다) 책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표지에는 티 하나 없는 미소를 지은 30대가 나와 있었다. 적당하게 선탠하고 장난스러운듯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어 동네 이웃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 책의 교훈? 아침에 일어나면 미소를 지어!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라. 복식 호흡을 하여 맥박을 느리게 하라.

다음 날 발작하듯 미소를 짓고, 지친 마차끄는 말처럼 복식 호흡을 하고, 눈을 크게 뜨고 사람들을 쳐다보며 스톡홀름 거리를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라. 둘째 손가락은 계속 경동맥에 얹은 채였다.

물론 그뒤 내 기분은 아주 더러웠다. 기분이 더러울 수밖에 없던 때였기 때문이다. 내게 중요했던 사람을 잃은 뒤였다. 슬퍼하는 게 자연스럽다.

헬리콥터 육아와 셀프 헬프 매니아가 미국에서도 스웨덴처럼 퍼지고 있는 것 같은데, 스웨덴인들은 기분좋고 쾌활한 문화에 잘 적응하고 싶어하는 바람이 크기 때문에 부정적인 효과가 더욱 커진다. 우리는 남들을 기쁘게 해주어 이를 얻으려 한다.

텍사스주 댈러스 출신의 내 대학시절 룸메이트는 내가 스웨덴 친구들과 교류하는 방식을 놀리곤 했다. 우리가 동의하며 열심히 머리를 끄덕이고, 다들 “야 야 야”(예스)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것을 정확히 따라했다. 우리 대화의 유일한 목적은 만장일치였기 때문에, 다른 의견이 나오면 조금 틀어서 그 역시도 수용할 수 있는 모호하고 흐릿한 발언들이 보통이었다. 혹은 신랄한 침묵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대화의 끊김을 막기 위해 온갖 경솔한 말들을 했다.

받아들여지기 위한 이런 노력은 우리가 실제로 서로에게서 필요로 하는 것과는 끔찍할 정도로 다르다. 이런 습관 때문에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의미있는 대화, 친밀한 관계, 목적 의식이나 참여와 상관없이 자랄 수 있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의 행복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규정된다는 믿음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멀쩡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이미 리노베이션했던 주방을 한 번 더 리노베이션하고, 그래도 기분이 엉망이면 일어나자마자 미소를 짓고 오후 6시 이후로는 탄수화물을 먹지 않는다.

그게 우리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무조건적인 행복을 약속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을 찾으러 간다. 서점의 셀프 헬프 코너나 IKEA의 주방 코너로 간다.

우리는 파트너에게서 행복을 찾는다. 우리 삶에서 부족한 모든 것이 파트너에게 들어있길 바란다. 내가 할머니에게 왜 할아버지와 결혼했는지 묻자 “음, 할아버지는 돈이 있었고 일을 아주 잘했거든.”이라고 대답하고 십자말풀이를 계속했을 때 실망했던 게 기억난다.

디즈니 러브 스토리 같지는 아니지만, 세계 2차 대전 중에 자란 할머니가 인생에 대해 가진 기대는 나와는 달랐다. 할머니에겐 안정과 안전이 행복이었다. 결혼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요즘 스웨덴의 이혼율이 50%에 달하는 것과 달리 할머니는 이혼하지 않았다. 지금 스웨덴인들의 20%가 향정신성 약물을 먹지만, 할머니는 그런 약을 먹지 않았다.

약이 필요할 때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셀프 헬프 책은 분명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애초에 행복을 뒤쫓아 달려갈 필요가 없었다. 부산물로써 행복을 만들어내는 일들을 다 버리고 우리는 행복 그 자체를 추구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미이다. 인생의 지루하고 슬픈, 가혹한 일들에서도 의미는 찾을 수 있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