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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시민들은 남북정상회담 다음날부터 일상이 달라졌다

남다른 기분

1일 오후 국군장병들이 '판문점 선언' 후속조치 첫 단계로 경기도 파주시 군사분계선(MDL) 교하소초에 설치된 대북 고정형 확성기 철거작업을 하고 있다.
1일 오후 국군장병들이 '판문점 선언' 후속조치 첫 단계로 경기도 파주시 군사분계선(MDL) 교하소초에 설치된 대북 고정형 확성기 철거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임진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철책과 웅웅거리며 울려퍼지는 대북·대남 방송을 늘상 보고 들어야 하는 경기 파주시민들에게 ‘분단’이란 일상의 풍경이다. 이들에게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판문점 선언’의 울림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4일차인 1일 대북방송용 확성기 철거를 시작으로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던 이들의 일상에 변화가 시작됐다. 견고한 분단 체제의 작은 균열에서 싹튼 ‘평화의 씨앗’이었다.

접경 지역에 사는 파주시민들에게 변화의 조짐은 즉각적이었다.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유일한 교육기관인 파주 군내면 대성동초등학교에서는 당장 대북·대남 선전방송이 멈췄다. 군사분계선을 넘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꽃다발을 건넨 두 학생이 다니는 대성동초등학교는 판문점과 1㎞, 군사분계선과 불과 400m 거리에 있다. 평소에는 하루종일 확성기가 뿜어내는 웅웅거리는 소리에 학생들이 영향을 받을까봐 야외수업도 하지 못했던 학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판문점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화동에게 받은 환영 꽃다발을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건네주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판문점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화동에게 받은 환영 꽃다발을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건네주고 있다. ⓒ판문점/남북공동사진기자단

이 학교 교사 이아무개(42)씨는 “일상의 가장 큰 변화는 정상회담 이틀 전에서부터 쉬지 않고 나오던 선전 방송 소리가 안들리기 시작한 것”이라며 “이제는 아이들과 마음 놓고 야외수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벽에도 쉬지 않고 웅웅거리던 소음이 사라지니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말하는 주민도 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북 방송을 중단했던 정부는 1일 ‘판문점 선언’의 첫 후속 조치로 대북 확성기 40여대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파주시 운정2동에 사는 허심(53)씨는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지난 27일 저녁 이웃 주민 30여명을 모아놓고 ‘안심 파티’를 열었다. “남북정상회담으로 안심하고 살게 됐으니 소고기 ‘안심’ 파티를 열자”는 허씨의 ‘아재 개그’에서 비롯되었다는 ‘안심 파티’는 판문점 선언의 기쁨을 나누기 위한 작은 축제였다. 허씨는 “분위기 낸다고 안심 4㎏이나 구워서 나눠 먹었다. 정상회담 탓인지 비싼 안심 탓인지 다들 유쾌하고 즐거웠다”며 웃었다. 허씨의 파주 집은 “전쟁나면 북쪽과 투석전을 할 법한 거리”란다. 출근길 자유로에서는 개성의 송악산이 서울에서 보는 북한산만큼 선명하다. 평화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 30일 자전거를 타고 경기 파주시 교하에서 임진각까지 달린 파주 시민들이 남북정상회담 사진을 통단으로 게재한 28일치 <한겨레> 신문을 펼쳐들고 15일로 맞이하는 <한겨레> 창간 30주년을 축하하는 뜻으로 숫자 ‘3’을 펼쳐보이고 있다. 주민 제공

파주시 문발동에 사는 고형권(54)씨는 지인 8명과 남북정상회담 전후로 두 차례 ‘임진각 라이딩’에 나섰다. 정상회담 이전에는 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회담이 끝난 29일에는 회담의 성공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임진각까지 35㎞를 자전거로 달렸다. 고씨는 판문점 회담을 계기로 ‘꿈’이 하나 생겼다고 했다. 철책 너머 개성까지 자전거로 답사하는 것이다. 고씨는 “임진각까지가 거리가 35㎞인데, 임진각에서 개성까지는 불과 15㎞”라며 “이번 선언이 철책을 열어젖히는 계기가 돼서 집에서 개성까지 자전거 라이딩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씨 일행은 임진각에서 자전거를 멈춰야 했지만, 남과 북의 지도자가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는 사진이 담긴 <한겨레> 신문을 들고 일행들과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전쟁의 긴장이 감돌던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수 없었던 역사적인 ‘1면’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경계선을 넘던 날 첫 아이를 낳은 파주시민 최수인(43)씨에게도 정상회담은 각별했다. 금방이라도 넘나들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경계선을 남과 북의 지도자가 다시 넘게 될 때까지, 갓 태어난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될 정도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최씨는 평소에도 아들인 김강민군과 통일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한다. 김군은 “내 생일날 남북의 지도자가 만났었다는 이야기를 엄마한테 들어왔다. 정상회담 장면을 보니 금방 통일이 올 것만 같았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Kim Hong-Ji / Reuters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역인 파주 교하읍 사람들 10여명이 의기투합한 ‘파노라마 합창단’은 지난 28일 통일을 그리는 노래 ‘그날이 오면’을 연습했다고 한다. 합창단의 일원인 이소향(42)씨는 “다들 하나같이 벅찬 마음이었다. 노래를 부르는데 가사가 감격스럽게 와닿았다”며 “북쪽 사람들도 어떻게 보면 이웃 주민들이다. 북쪽 이웃들도 우리 파노라마 합창단에 입단해서 같이 노래하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쪽의 이웃들이 ‘파노라마 합창단’의 일원이 될 날을 꿈꾸며 불렀다는 ‘그날이 오면’의 가사는 이렇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 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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