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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에 600억 쏟아부은 `우당 6형제’ 생가가 복원된다

서울시가 용역 입찰을 공고했다

지난 2017년 11월 17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우당(友堂) 이회영(1867∼1932) 선생 순국 85주기 추모식'에서 홍일식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이 헌화를 하고 있다.
지난 2017년 11월 17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우당(友堂) 이회영(1867∼1932) 선생 순국 85주기 추모식'에서 홍일식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이 헌화를 하고 있다. ⓒ뉴스1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점된 직후인 1910년 12월, 어느 일가 50여명이 압록강을 건넌다. 말 100여필, 마차 수십대가 따르는 대규모 이주였다. 이들은 급하게 집안의 전답과 가옥을 팔아치워 마련한 40만원의 독립자금을 들고 만주로 향했다. 요즘 가치로는 600억원에 이르는 거액이었다. 이들은 독립군의 산실인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경학사 신흥강습소 등 수십개의 민족교육기관을 만주에 설립하고, 상하이와 만주를 오가며 임시정부 등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다. 일가의 맏형인 우당 이회영 선생은 1932년 일본 관동군 사령관 암살과 한중 아나키스트 공동유격대 결성을 위해 만주로 향하던 중 다롄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돼 고문 끝에 숨진다. 향년 66세였다. 

일제강점기 서울 갑족으로는 유일하게 일제에 맞서 온 가문이 독립운동에 헌신한 `우당 6형제’ 생가 복원이 추진된다.

임원빈 서울시 문화본부 박물관과장은 4월 30일 허프포스트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우당 6형제 생가 복원 및 기념관 조성 기본구상 용역’을 최근 입찰 공고해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임 과장은 “최근 용역이 한번 유찰돼 다시 공고를 한 상태로, 이후 용역 계약이 이뤄지면 생가 복원 장소나 규모 등에 대한 사전 연구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용역에 이어 실행 과정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는 2차 용역이 이뤄진 뒤 실제 생가 복원에 들어가게 된다고 임 과장은 덧붙였다.

이회영(1867∼1932) 선생을 필두로 한 우당 6형제는 일가 전부가 독립운동에 참여한 보기 드문 사례다. 경주 이씨 상서공파인 이들은 조선 선조 때 명재상인 이항복의 10대손이다. 이항복 이래 10명의 정승을 배출한 조선의 대표적 명문 갑족 출신이다. 을사늑약 체결 뒤 항일 비밀결사인 신민회 조직에 참여하는 등 항일운동을 벌이던 이들은 1910년 한일강제합병 이후 전 재산을 팔아 서간도로 망명해 본격적인 국외 독립운동에 나섰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부터 10년간 졸업생 3500여명을 배출해 항일 무장독립운동의 근거지 역할을 했다. 이회영과 동생 이시영(1869~1953)은 3·1 운동 이후 임시정부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들의 아버지는 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으로, 지금의 명동인 서울 명례방에서 6형제를 키운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명동성당 앞 YWCA 자리가 생가 터인데, 일제강점기 때 토지조사사업으로 강제 수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이번 용역을 통해 먼저 우당 6형제 생가 관련 문헌이나 사진 자료 등 기초 자료를 확보하고 정확한 생가 위치와 구조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다만 이후 생가를 복원하더라도 이미 다른 건물들이 들어선 명동에 그대로 짓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복원 장소로 서울 시내 다른 장소도 고려해 정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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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독립운동 #우당 이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