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아이들은 어린이날이 즐겁지 않을 뻔했다

그곳엔 역시 사랑이 있었다.

  • 박혜민
  • 입력 2018.05.04 15:56
  • 수정 2018.05.08 20:49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에게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었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엄마아빠와 함께 놀이동산에 가거나 선물을 받곤 했으니까. 그땐 정말 몰랐다. 어린이날이 슬픈 어린이들도 있다는 것을.  

하을이 아빠는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보냈던 어린이날을 떠올렸다. 그에게 어린이날은 그저 힘 꽤나 쓰는 의원들이 선물을 들고 와서는 보육원 아이들을 일렬로 세우고, 기념사진을 찍는 날일 뿐이었다. 아이들 중에는 매스컴에 그런 식으로 얼굴이 실리며 이용당하고, 동정 받는 것을 싫어했던 아이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입양이 되기를, 파양이 되고, 또 다시 버림받더라도 하루라도 부모님이 생기기를 바랐던 하을이 아빠. 그는 끝내 입양되지 않은 채 보육원을 졸업했다. 그 대신에 어른이 되어 자신과 같은 상처를 받을지도 모를 아이를 입양했다.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꿈꿔왔던 따뜻한 가정을 꾸리고, 세 아이의 아빠가 된 것이다.

서른이 넘어서야 가족의 의미를 배웠다는 그. 상상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엄마와 아빠의 역할과 그 속에서의 감정들이 그에게는 전부 다 처음이었다. 첫째 하람이가 가족에 대해 느끼는 것보다 자신이 더 모를 때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 지금 행복하다. 넘치는 사랑을 주고, 그보다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하을이네 가족. (왼쪽부터) 아빠, 첫째 하람이, 막둥이 하을이, 둘째 하린이, 그리고 엄마
하을이네 가족. (왼쪽부터) 아빠, 첫째 하람이, 막둥이 하을이, 둘째 하린이, 그리고 엄마

입양을 꿈꾸던 아이가 자라서 입양을 결심한 이유는.. 

어른이 된 그가 하을이를 입양한 이유는 자신처럼 상처받은 아이가 조금이라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보육원에서 자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이기에. 물론 입양은 혼자만의 선택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친자녀인 첫째 하람이, 둘째 하린이 두 아이가 마음을 열어준 덕에 하을이와 가족이 될 수 있었다.

신생아였던 하을이를 입양하기 전,  아빠는 첫째 하람이와 막내 동생을 만나러 병원에 간 적이 있다. 하람이는 하을이에게 부모님이 없어서 우리가 가족이 되어 줘야해” 라는 말을 듣고 아빠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아빠, 하을이는 부모님이 없는 게 아니라, 원래 있었는데 준비를 안했거나, 젖이 없거나. 그래서 그런거야.” 

”그렇구나. 아빠의 엄마, 아빠도 그때 준비가 안되어 있었나봐. 그래서 아빠를 보육원에 보냈나봐.”

제하씨와 첫째 하람이
제하씨와 첫째 하람이 ⓒEBS <입양, 행복한 동행>

아빠는 아이가 보여주는 큰 사랑을 통해, 또 다른 사랑을 배웠다. 어쩌면 사랑이 자라는 순간은 우리 곁에 언제나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입양 후 아이들이 가장 기뻐한 순간은 지나치게 평범한 일상이었다

입양을 하면 아이들에게 어떤 것이 좋을까? 흔히 ‘부모님과 가족이 생겨서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입양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들었던 말은 전혀 예상밖의 답이었다. 우리가 너무 평범해서, 무의식적으로 넘기는 것들이 입양된 아이들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고, 감사였다.

″저는 아직도 다리를 구부리고 잡니다”

하을이 아빠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보육원을 나온 후, 가정이 생겼을 때 가장 좋았던 점이 무엇이냐고. 그는 잘 때, 발밑에 누가 없다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보육원에서는 한 이불 밑에 네 명이 잠을 청해서, 늘 다리 밑에 누군가의 머리가 있었다고, 그런 기억이 있다고 했다. 

ⓒKatarzynaBialasiewicz via Getty Images

여전히 그는 다리를 구부리고 잠을 청한다.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옆에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어 행복하다. 

 

“집냄새라는 것, 처음 맡아봤어요. 집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좋아요.”

‘집냄새‘. 어느 집에 가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하는 특유의 ‘집냄새’라는 게 있다. 섬유유연제 냄새일 수도 있고, 구수하면서도 따뜻한 그런 냄새일 수도 있다. 해묵은 냄새일지라도 어딘가에 정이 느껴지는 그런 냄새 말이다.

보육원에서 자라 입양된 아이는 그 냄새가 너무 좋다고 했다. 아이에겐 세상 가장 좋은 따뜻한 냄새였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부모는 괜히 미안해진다. 누군가에겐 너무 익숙해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아이들에겐 가장 큰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Fuse via Getty Images

“누군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게 좋아요”

아이를 입양한 부모는 놀랐다. ‘보육원에서 이야기를 잘 안 들어주나?’ 순간적으로 의아했다. 하지만 아이는 보육원의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익숙했다. 다른 동생들, 친구들, 언니 오빠들이 있어서 이야기를 하다가도 무슨 일이 생기면 선생님들이 갈수밖에 없다고, 긴 이야기를 하기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고 이해했다.

그래서 부모가 생긴 것이 좋았던 거다. 자신이 어떤 소소한 이야기를 재잘거려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는 것. 그 이야기를 오랫동안 주고받을 수 있는 것. 잠들 때까지 이야기를 하고, 내일 또 이어서 그 이야기를 해도 전부 다 기억해주는 것이.

 

어린이날이 즐거워진 아이들이 부모에게 전하는 선물

입양 후 가족이 생긴 아이들이 부모에게 선물을 건넸다. 이 아이들은 어쩌면 평생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오랫동안 그냥 지나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아이들의 가족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말이다.

″입양은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한 사랑♥ 입니다” 한 아이가 쓴 따뜻한 글귀처럼 입양은 사랑이다. 그 사랑은 결코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입양 된 아이들은 받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입양해준 부모에게 전해주기 때문이다.

 

입양은 누군가에게 커다란 세상을 만들어주는 일. 그 어마어마한 선택이 있기까지

입양은 누군가에게 거대한 세상을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 누나, 동생만 생기는 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외삼촌, 큰아빠, 사촌언니 등 부모와 연결된 모든 관계들이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들이 아이를 얼마나 풍성하게 만들어주는지, 아이에게 어떤 느낌을 선물하는지, 그 크기는 아이가 평생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이기도 할 것이다.

하을이 아빠는 부모 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난 적도 겪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신생아 때 입양이 돼 가족이 생긴 하을이는 지금 외할머니를 누구보다 잘 따른다. 할머니가 고향으로 가실 때면, 며칠을 울고 불고 슬퍼할 정도로 좋아한단다. 아빠는 그런 녀석을 보고, 다시금 생각한다. ‘가족이 된다는 건 ‘피’가 섞이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하구나’ 라고.

 

사랑은 스스로 자라나지 않는다. 사랑이 모여 사랑으로 자라난다.

하을이 아빠는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보육원에서 자란 자신과 같은 사람만이 입양을 한다고 비춰지지 않았으면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미 입양을 하고 있고, 입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고, 입양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양은 한 아이의 인생 시나리오가 달라지는 거예요. 누군가의 인생이 바뀌는 건데,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났으면 해요.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자라난 아이는, 흔들리지 않고 더 단단해지거든요. 그게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키는 일이기도 하고요.”

여전히 어린이날이 즐겁지 않은 아이들이 있다. 가정에서 자라고 싶어서, 선택받기 위해 지금도 애쓰는 아이들이 있다. 어린이날인 내일도, 입양의 날인 그 다음주에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사랑은 스스로는 자라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랑이라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서로의 사랑이 모여 더 큰 사랑으로 자라난다는 것을.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랑 #브랜드 #가족 #부모 #어린이 #입양 #어린이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