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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정상회담은 노무현의 정상회담과 어떤 점이 같고 다를까

평화의 길이다

  • 강병진
  • 입력 2018.04.26 18:24
  • 수정 2018.04.26 18:48
ⓒfacebook/TheBlueHouseKR

이제 몇시간 남지 않았다.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내놓을 정상선언은 `판문점 선언’이 될 것이라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6일 밝혔다. 이쯤에서 10·4 남북정상선언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다.

이번에 나올 4·27 판문점 선언은 10·4 선언의 심화 확장판이자, 그 완성으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양면을 다 가질 가능성이 크다.

먼저 문 대통령은 그동안 꾸준히 10·4 선언의 계승 의지를 밝혀온 바 있다. 지난해 10월 10·4 선언 1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10·4 정상선언 합의 중 많은 것은 지금도 이행 가능한 것들”이라며 “남과 북이 함께 10·4 정상선언이 여전히 유효함을 선언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스스로도 2007년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아 10·4 선언 합의와 이행 과정에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점에 비춰, 이번 판문점 선언은 10·4 선언의 정신을 잇는 내용으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POOL New / Reuters

다만, 시대와 상황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진 두 보수정부 집권 기간 10·4 선언은 사실상 사문화했다. 오히려 남북관계는 더 후퇴했고, 북한 핵위기는 더 거대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판문점 선언이 10·4 선언의 모든 내용을 그대로 이어받기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북핵 해결을 위한 북-미 정상 간 대담판으로 가는 징검다리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그 이후라야 10·4 선언에 담았던 남북관계의 획기적 발전을 위한 구상은 현실로 구현될 수 있다.

결국 판문점 선언은 10·4 선언의 의미를 새롭게 되살리고 확장하되, 일단 어떤 한계 안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다시 10·4 선언의 완성을 위한 도약으로 나아가기 위한 의도적 움추림이다. 말하자면 노 전 대통령이 가다가 다 못가고 끊겼던 길을 새로 잇는 일이다. 동시에 판문점은 문 대통령이 기어이 그 길을 완주하기 위한 시작점으로 기록될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노 대통령의 정상회담과 문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의제와 형식 등에서 비교 정리해본다.

 

#평화

평화는 두 정상회담과 선언을 잇는 핵심 단어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모두 대통령으로서 실현해야 할 가치의 최고봉으로 평화를 꼽았다. 두 대통령 모두 취임사에서 여러 차례 평화를 언급했을 뿐, 통일은 단 한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통일을 주요한 목표로 제시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평화를 쌓아나가는 과정으로서 통일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반면, 이명박, 박근혜 두 전 대통령은 북한붕괴론과 흡수통일론의 관점을 고수했다. 통일이 되면 핵문제도, 남쪽의 경제성장도 한방에 해결된다는 `통일 대박’ 발언이 이를 웅변한다.

10·4 선언은 8개 항 중 3·4항에 평화 의제를 담았다. 3항은 남과 북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위한 협력을, 4항은 정전체제 종식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의 종전선언 추진 의지를 담았다.

ⓒPOOL New / Reuters

이런 평화를 위한 의지는 이번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한층 구체적 합의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의 모토를 `평화, 새로운 시작’으로 정한 바 있다. 지난 24일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서 “종전 선언은 최소한 남한과 북한, 미국의 3자 합의가 이뤄져야 가능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종전선언 추진에 합의하고, 그에 기반해 미국, 나아가 중국 등과의 합의로 나아가겠다는 의지 표현이라는 풀이가 나왔다.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10·4 선언 4항을 사실상 계승한 셈이다. 이를 두고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지난 17일 “남북간의 종전 논의를 진심으로 축복한다”고 밝히는 등 이후 실제 현실로 구현될 가능성도 높게 전망되고 있다.

이와 함께 DMZ의 비무장화, 남북 상설 연락사무소 개설 등의 평화 의제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진전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비핵화

비핵화는 10·4 선언 때보다 더욱 깊은 논의가 예상되는 의제다. 동시에 이번 정상회담의 성패를 결정지을 가장 핵심 의제로 평가된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26일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명문화 할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이것이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의미함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면 이번 회담이 매우 성공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임 실장은 “이번 정상회담은 무엇보다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이란 핵심의제에 집중된 회담”이라며 ”북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고도로 발전한 이 시점에 비핵화를 합의한다는 것은 1990년대 초, 2000년대 초에 이뤄진 비핵화 합의와는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이 이번 회담을 어렵게 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POOL New / Reuters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상회담은 비핵화를 전면적으로 논의한다는 점에서 10·4 선언 때보다 진전된 회담으로 평가받을만 하다. 10·4 선언에는 비핵화와 관련해 4항에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을 담았다. 당시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정상 차원의 직접적 비핵화 의지를 담는 대신 6자회담 합의 이행을 위한 노력이라는 우회적 문구로 갈음했다. 이번엔 적어도 두 정상의 관점에서 비핵화 의지에 대한 분명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판단으로 보인다. 비핵화 문제에서 뚜렷한 진전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평화 의제나 남북관계 발전을 추진할 동력 또한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남북관계 발전

ⓒfacebook/TheBlueHouseKR

10·4 선언은 남북 경제협력과 관계 발전을 위한 다양한 구상을 담았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개성공단 추가개발 △신규경협 △경협환경 개선 추진기구 등 공동 번영을 위한 중장기적 경협 사업 추진에 합의했다. 특히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군사 대치선이 아닌 평화협력선으로 전환시키고 해주를 제조, 물류, 수출 복합특구로 개발하는 내용을 담았다. 해주와 개성, 인천을 잇는 삼각경제지대를 형성해 공영의 경제권을 형성한다는 구상이었다. 이에 더해 백두산 관광 실시와 서울-백두산 직항로 개설 등의 세밀한 합의까지 10·4 선언에 담겼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선 이런 구체적 경협 논의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두가지 이유에서다. 먼저, 노무현 정부 이후 두개의 보수 정부가 연속 집권하면서 이들 사업은 대부분 휴짓조각 신세가 됐다. 더불어 이후 북한의 핵개발이 진전되면서, 대북제재망 또한 한츰 촘촘해졌다. 남북경협 사업들도 대부분 제재대상에 올라있는 터다. 이번 남북정상회담과 이어질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며 비핵화 문제에 돌파구가 만들어져야 비로소 남북경협 협의도 본격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문 대통령이 이미 비핵화 진전을 조건으로 10·4 선언의 주요 내용을 계승적으로 발전시킬 남북관계 구상을 준비해두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그것이다. △금강산, 원산·단천, 청진·나선을 남북이 공동개발해 동해안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동해권 에너지·자원벨트 구축′ △수도권, 개성공단, 평양·남포·신의주를 연결하는 서해안경협벨트 건설 및 경의선 개보수 △설악산·금강산·원산·백두산 관광벨트 구축 및 DMZ 생태·평화안보 관광지구 개발 등을 담고 있다. 문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이던 2015년 8월15일 70돌 광복절을 맞아 이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이후 문 대통령 취임 뒤 이를 남북관계 관련 국정운영 구상의 하나로 공개하기도 했다.

 

#케미

ⓒJUNG YEON-JE via Getty Images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과 미소 속에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노 전 대통령은 10월4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가진 대국민보고회에서 “처음 오전(회담)에는 좀 힘이 들었다”고 돌이킨 바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예상보다 소극적 태도로 회담에 임했고, `개혁’ `개방’ 등의 발언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이렇게 하면 점심먹고 짐싸고 가야할지도 모르겠다”고 농반진반으로 김 위원장을 압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노 대통령은 분위기 반전을 위한 모색에도 나섰다. 이날 오전 회의 뒤 남쪽 방문단을 옥류관으로 초청해 오찬을 한 자리에서 북한 체제를 존중하는 `역지사지’의 자세를 강조함으로써, 이를 전달받은 김 위원장의 태도 변화를 끌어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케미스트리를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바둑 고수에 비유하자면 문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은 이창호 구단의 기풍과 비슷하다. 바로 중원으로 뛰어들지 않고 진정성을 갖고 주변부터 착실하게 설득하면서 하나씩 수를 쌓아나간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말했다. 난관이 예상되더라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는 판단이 서면 상대방에게 진심을 내보이고 묵직하게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라는 얘기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상대의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과 ‘깜짝 승부수’를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그가 선보여온 외교적 승부수에 비춰볼 때 그렇다. 지난달 4∼5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특사단은 김 위원장의 외교 스타일에 대해 ”솔직하고 대담하다”고 평했다. 두 정상이 어떤 수를 던지며 한반도의 운명을 건 세기의 회담을 이어갈 것인지, 이제 곧 결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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