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2018년 04월 26일 13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4월 26일 14시 48분 KST

태극기집회에 나온 시민들에게 '통일'과 '정상회담'에 대해 물었다 (영상)

통일과 정상회담은 곤혹스러운 주제였다.

서울역 앞은 집회에 적절하지 않은 장소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도통 광장에 머무르지 않았다. 도착했거나 곧 떠날 열차들이 데려온 사람들은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의 시선이 태극기집회에 닿기는 아무래도 힘들었다. 어림잡아 1000명은 족히 넘어보이는 인파는 고립되어 있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치켜든 이들의 외침은 도시의 소음 속으로 흩어졌다. 봄 치고는 제법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던 토요일(21일) 오후였다.  

태극기집회는 이제 좀처럼 보도되지 않는다. 이날의 시위를 전한 기사는 두 건 뿐이었다. 그마저도 단신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무효”이며, 따라서 그는 ”즉각 석방”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 직무에 ”즉각 복귀”해야 한다는 말이 여전히 낯설게 들리기는 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광장 안에서 맴돌았다. ”문재인 퇴진! 탄핵 무효! 즉각 석방! 즉각 복귀!” 허망한 구호가 쩌렁쩌렁 울렸다. 지나치는 사람들은 대개 무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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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는 분노와 공포, 불신이 있었다. ”빨갱이들”을 언급한 한 노인의 입가는 파르르 떨렸다. “6.25 사변 때”의 기억은 마치 어제 일처럼 들렸다. ”적화통일”, ”공산화” 같은 단어는 서늘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절대 못 믿을” 상대였고, 문재인 대통령은 ”저의가 의심스러운” 사람이었다. 호칭은 아무렇게나 생략됐다. ”문재인이라는 분”은 점잖은 축에 속했다. 한 노인은 두 번이나 ”박근혜가”를 ”박근혜 대통령께서”로 고쳐 말했다. 

몇 마디 구호로는 표현되지 않는 감정이 그곳에 있었다. ”우리는 (그 시절을) 살아봤으니까 알잖아”라는 말에서는 뜻밖에도 섭섭한 감정이 묻어났다. 그 고단한 삶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한 노인은 ”먹을 게 없어서 나무 껍질을 발라먹고 그랬던” 시절을 회상하다가 한참동안 ”요즘 젊은 사람들”을 성토했다. 그는 ”부모를 빼먹는 자식들”을 언급하며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했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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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과 정상회담은 곤혹스러운 주제였다. ”연방제가 된다거나 이렇게 되면 그건 빨갱이 나라가 되는 거예요.” 6.25 전쟁이 터졌을 때 서울에 있었다는 한 노인이 말했다. 다른 노인은 단호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 체제로 (통일)할 것 같으면 당장 안 해! 정상회담도 안 돼! (...) 옛날부터 우리는 한민족이니까 (통일을) 해야 되는 건 사실입니다만.” 유관순 교복을 입은 한 노인은 말했다. ”우리는 트럼프를 믿습니다. 대한민국을 버릴 사람도 아니고.” 

집회가 끝나자 광장 밖으로 인파가 쏟아져나왔다. 행진은 질서있게 시작됐다. 사람들은 경찰이 길을 열어주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멋지게 차려입은 노신사는 ”여기 돈 받고 나오는 사람 아무도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젊은 애들 못 믿으니까 우리가 나온거야, 이 더운데. 우리가 70 넘어서 광화문까지만 걸으려고 하면 다리 후들거려 진짜. 그래도 나오는 거야, 나라 걱정해서. 오직 하나, 나라를 위해서 나오는 거지 아무런 다른 이유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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