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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번도 듣지 못했던 타이타닉호의 뒷 이야기

이 이야기는 미담이 아니라 끔찍하고 슬픈 차별의 이야기다

  • 백승호
  • 입력 2018.04.24 19:37
  • 수정 2018.04.25 17:18

타이타닉은 많은 문화적 유산을 남겼다. 그러나 돈이 많은 승객들의 이야기는 뉴스나 미디어에서 많이 다뤄진 반면 중국인 탑승객의 이야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12년 4월 15일,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중국인 승객 여덟명이 타고 있었다. 이중 여섯명이 살아남았다. 생존한 이들은 미국에 도착했지만 이들이 마주한 것은 인종차별과 반 중국 정서였다. 여섯 명의 중국인은 미국에서 쫓겨났다.

이 이야기는 올해 발표될 다큐멘터리 ‘더 식스’의 내용이다. 다큐멘터리 수석연구원인 스티븐 슈완커트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여섯 명의 중국인을 역사에서 지워버렸던 과거의 기록을 바로잡고 싶다”고 언급했다.

 

 

‘더 식스’를 따라 이야기를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여덟 명의 중국인들은 타이타닉에 승선했다. 당시 선박회사가 3등석 승객들에게 으레 그랬듯, 그들 8명의 이름은 단 한 장의 표에 몽땅 기록됐다.

 

 

배가 빙산과 충돌했다. 중국인 네 명이 마지막 구명보트에 올랐다. 다른 한 명도 구명보트를 탔다. 또 다른 중국인 팡랑은 타이타닉 잔해들과 같이 떠돌다가 구조되었다.

이들은 구조과정에서부터 인종차별을 당했다. 당시 구명보트 몰았던 해럴드 로우는 잔해와 표류하던 팡랑을 보고도 구조를 망설였다. 그는 ”잽(Jap-일본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왜 구해야 하지? 어차피 죽었을 게 뻔하고 죽지 않았어도 잽보다 쓸모 있는 사람을 구해야지”라고 이야기했다. 당시 보트에 탑승했던 콜리어의 이야기다.

팡랑이 구조보트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승객이 로우를 설득한 이후였다. 목숨을 부지한 팡랑은 다른 사람들이 구조될 때까지 노를 저으며 일했다. 콜리어는 그가 ”영웅처럼 일했다”고 묘사한다.

 

ⓒdrxy via Getty Images

 

살아남은 여섯명의 중국인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강도높은 조사를 받았다. 타이타닉 침몰 당시 구명보트에는 여성과 어린아이를 먼저 태웠지만 이 중국인 남성들은 대부분 살아남았기 때문에 이들이 몰래 구명보트에 오른 것은 아닌지 규명하려고 했다. 당시 언론도 이들은 막노동꾼 등으로 이야기하며 보트에 몰래 숨어들었던 것처럼 묘사했다.

또 다른 매체는 이들이 구명보트에 오르기 위해 ‘여성인 척‘했다고 묘사한다. 하지만 ‘더 식스’ 제작진은 이같은 언급이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미국과 중국의 전문과들과 함께 많은 기록을 살펴보고 증거를 찾아 연구했다”며 ”그들이 부끄러운 일을 했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고 언급했다.

이 여섯명은 조사가 끝난 뒤 미국에서 추방됐다. 다른 생존자와는 다른 처우였다. 100년 전 미국의 이민 정책은 중국인들에게 엄격했다. 1882년 미국은 중국인 노동자를 추방하는 법률을 공포했다. 이 법률은 1943년 세계2차대전 당시 중국이 미국의 동맹국이 되기 전까지 유효했다.

미국에서 추방된 이 여섯명의 중국인의 삶이 그 이후로 어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따금 그들이 미디어에 언급될 때는 그들이 ”부끄러운 짓을 벌였다”고 이야기될 때였다.

‘더 식스’의 제작진은 이들의 후손을 찾으러 광저우까지 갔다. 그리고 그들은 성과를 거뒀다고 전한다.

″우리는 보고서를 그대로 믿지 않았고, 기록된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제는 이 여섯명의 중국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

-슈완커트-

더 자세한 내용은‘더 식스’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허프포스트US의 ‘Here’s Why You’ve Never Heard Of The Titanic’s Chinese Survivors’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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