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8년 04월 24일 10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4월 29일 17시 38분 KST

18년 전, 남북정상회담 후 남한 사람들은 김정일에게 호감을 느꼈다

지금의 기분과 비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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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13일. 남한과 북한의 정상이 역사상 처음으로 만났다. 역사적인 만남은 평양 순안 공항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항에 깜짝 방문했고,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손을 맞잡았다. 남북분단 55년 만에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회담 전과 후로 북한에 대한 남한의 인식을 크게 바꿔놓았던 사건이었다. 한 포털사이트에 ‘김정일 팬클럽’이 만들어지기도 했을 정도. 당시 이 클럽을 만든 사람은 “북한에 대해 뭔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생각에 김정일 위원장의 캐릭터가 연예인처럼 멋져 팬클럽을 조직하게 됐다”고 했었다. 물론 이런 변화를 두고 “가치관의 혼란이 장기화하거나 세대.계층.정파간의 대립 양상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일부에 퍼져 있다”(중앙일보)라며 우려한 시선도 있었지만 TV를 통해 남북한 정상이 만나 대화하고 같이 식사를 하며 웃는 모습은 그 정도로 충격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그때 남북정상회담은 남한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그때의 김정일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까? 오는 4월 27일 3번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되돌아봤다. 이번에도 그때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기대로 가득했던 이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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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청와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물한 진돗개 2마리 

정상회담 전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서울로 초대할 의사를 내비쳤다. 이미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에 대해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80%가 지지하는 것으로 나온 상황”이었다. 그만큼 이 만남에 대한 기대는 컸고, 그러한 기대감을 이용해 이벤트를 기획한 곳도 많았다. 어느 결혼정보회사는 두 정상의 닮은꼴 얼굴을 찾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이 미팅에서 만난 커플이 결혼할 경우 ‘금강산 여행권’을 선물로 주는 행사였다. 또 어느 한의원은 정상회담 기간 동안 “양측 정상과 가장 닮은 사람이나 흉내를 똑같이 내는 사람을 뽑아 완치할 때까지 돈을 받지않고 치료를 해주는” 이벤트를 열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에는 북한특산물이 대거 판매되기 시작했으며 벤처업계에서는 이산가족상봉을 추진하거나, 북한 송금서비스, 남북정상회담 기념 사이버화폐 발행, 북한영화 스트리빙 서비스 등을 개설하기도 했다. 서점가에서는 ‘현대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의 생각읽기’,김정일의 통일전략’, ‘김정일 100문 100답’, ‘현대북한의 이해’ 등의 책이 정치사회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북한 김일성대학을 찾아가 ‘김일성주체사상 워크숍’을 개최하기 위해 방문신청서를 낸 대학원 교수도 있었으며 여러 대학에서 북한관련학과가 개설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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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7일 경복궁. 서울 한복판에서 학생들이 스티커로 김정일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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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열렸던 남북정상 닮은꼴 정상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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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코인이란 회사는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해 전자화폐를 만들어 출시했다.

뜻밖의 등장

2000년 6월 13일. 원래 12일이었던 회담일정이 하루 연기돼 13일에야 만남이 성사됐다. 김대중 대통령을 태운 전용기가 평양순안공항에 착륙했을 당시 내외신 기자들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 있었 다. 생중계 화면에서 북한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카메라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기자들은 김정을 위원장이 왔다는 걸 직감했다. 이어서 김정일의 모습이 보이자, 기자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후에도 김정일 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손을 맞잡는 순간, 두 정상이 함께 자동차를 타는 순간에도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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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공항에 영접을 나간 사례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생생한 화면으로 김정일 위원장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글과 말에서 오가던 모습과 달리 그는 상당히 친근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길을 안내하며 세심하게 배려하는 차분함”을 보였고, 김대통령의 경호실장에게는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당시 보도된 대화록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평양으로 오기 전 “계란반숙을 절반만 먹었다”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구경오시는데 (왜?) 아침식사를 적게 하셨냐”고 물었고,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오면 식사를 잘 할 줄 알고 그랬습니다”라고 하자 “자랑을 앞세우지 않고 섭섭치 않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실향민, 탈북자, 한국 김치”등 북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남측용어’를 사용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가장 많이 회자된 한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구라파 사람들은 나보고 왜 은둔생활하느냐.처음 나타났다고 그러는데 나는 과거 중국,인도네시아도 비공개로 많이 갔다 왔는데 김 대통령이 오셔서 모습을 나타냈다고 그래요. 김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생활에서 해방됐다.그런 말 들어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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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쇼크

분명 18년 전, 한국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웃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호감을 가졌다. 당시 한국 언론들도 이러한 반응을 보도했다.

““귀엽다.” “멋있다.” 13일 오전 한 방송사 관계자는 함께 TV를 보던 여성방송작가들이 터뜨린 환호에 적잖이 당황했다. 첫날 환영행사와 14일 정상회담장에서 보여준 김위원장의 격의없는 제스처와 농담까지 던지는 여유에 그에 대한 부정 일변도의 인식이 돌변한 것. 회사원 유승환(劉承煥·31)씨는 “신경질적이고 건방진 편집증적 독재자라는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했다”고 털어놓았고 심지어 김윤진(金潤珍·26)씨는 “믿을 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이 많다”고까지 말했다.” (한국일보 2000년 6월15일)

“‘카리스마가 있는 실권자’ ‘화통하고 여유있는 통치자’ ‘예의바른 대장부‘….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는 남녘 사람들의 술자리에서나 대화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단연 최대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그에 대한 치열한 토론까지 벌어지고 있어 ‘김정일 신드롬‘까지 엿보이고 있다. ”아직 미덥지 못하다”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없지는 않지만 부정일변도의 기존시각을 벗고 ‘호감을 갖고’ 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 2000년 6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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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가 판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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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는 손목시계가 제작됐다.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호감은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한국방송진흥원이 13세이상 전국 성인남녀 6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남북정상회담 방송보도 관련 전화 수용자 조사결과에서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긍정평가는 크게 증가했다. “지도력에서 긍정평가가 20.2%이던 것이 정상회담 후 53.7%로 급상승”했으며 “신뢰도 평가에서도 긍정평가가 15.1%에 불과 했지만 회담 후에는 51.2%로 크게 올라갔다.” 김대중 대통령 또한 “지도력에 있어서 정상회담 전에는 긍정적인 평가가 60.7%이던 것이 정상회담 후에는 83.3%로 증가했다. 신뢰도 평가에서도 긍정평가가 57.4%에서 82.3%로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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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서 선물한 풍산개 2마리. 각각의 이름은 '단결'과 '자주'였지만, 남쪽에 와서 수컷은 ‘우리’, 암컷은 ‘두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와 두리는 서울대공원에서 살았고, 지난 2013년 '노환'으로 사망했다. 두 개가 낳은 새끼는 21마리. 현재 4대까지 자손이 번창해 있다. 

또 한국일보가 의뢰해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는 “95.7%(’대단히’50.4%, ’대체로’45.3%)가 남북정상회담 성과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정적 이미지가 많이 개선됐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42.3%”로 집계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는 남북정상이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추천서명을 하자는 운동이 일기도 했다. 이때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DJI’라는 영문이니셜로 통칭되었다. 남북정상이 처음 만났단 18년 전 6월, 남쪽의 사람들은 북쪽의 지도자를 과거보다는 조금 더 친근하게 대했던 게 사실이다. 그로부터 18년 후인 2018년 4월 27일, 김정은 위원장은 남한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게 될까? 그도 아버지처럼 남한사람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