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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드릭 라마가 퓰리처상을 받은 이유는 ‘DAMN.’은 저널리즘이기 때문이다

라마의 음악들은 저널리즘이 지향해야 할 지점이다.

ⓒSamir Hussein via Getty Images

켄드릭 라마가 퓰리처상을 받은 최초의 래퍼가 되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4월 16일, 퓰리처상 위원회는 라마를 수상자로 선정하며, 그의 앨범 ‘DAMN.’이 ‘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의 복잡성을 강렬한 글로 보여주는 언어적 진정성, 리드믹한 활력으로 묶은 명곡 모음’이라 했다.

‘DAMN.’ 등의 작품에서 흑인들의 삶을 진실하게 보여주는 라마의 능력은 여러 가지 면에서 퓰리처상을 받을 만하다. 앨범 전체에서 그가 분석하는 개념들의 충돌(오만 대 겸손, 사랑 대 욕정, 주로 신에 대한 공포 대 믿음, 개성 대 순응, 앨범 결말에서 라마가 탐구하는 ‘나 대 나’)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아프리카 혈통에 대한 라마의 활기찬 자신감, 신앙의 위기, 빈곤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인종간 불평등에 대한 분노에 흑인이 공감하지 않기란 힘들 것이다.

또한 흑인들의 삶의 정수를 자세히 담아내는 그의 능력 역시 ‘DAMN.’을 훌륭한 저널리즘 작품으로 만들어 준다. 이 앨범은 흑인들의 투쟁을 실시간으로 담아냈다. 그래서 라마의 앨범을 듣는 것은 아이다 B. 웰스나 제임스 볼드윈의 작품을 읽는 것 만큼이나 만족스럽다. 그의 음악은 최고의 저널리즘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중요성에 기반을 두고 현실에 뿌리 내리고 있다. ‘King Kunta’에서 그는 미국에서 부유한 흑인 남성으로 사는 자신의 모순적 삶을 말한다. ‘DAMN.’은 현재 흑인들이 겪는 투쟁에 대한 종합적 설명이다. 역사책에 들어가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뉴욕 타임스와 뉴요커가 낸 성폭력 보도가 퓰리처상을 받았듯, 라마 역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DAMN.’은 구전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디어 발표될 고 조라 닐 허스턴의 ‘바라쿤(Barracoon)’에 못지 않다.

하지만 매체에 글을 쓰거나, 저널리즘의 객관성에 대한 퇴행적 생각에 묶여있지 않기 때문에, 라마의 작품은 대부분의 기자들이 이루지 못하는 것을 이룬다. 억압을 겪는 흑인 커뮤니티의 입장에서 직접적으로 말하고, 그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제도를 직접적으로 공격한다. 음악 업계는 아직도 백인의 시선이 지배하고 있지만, 라마는 양쪽의 목소리를 다 내줄 필요가 없다. 라마의 음악은 흑인 커뮤니티의 무게만을 덜어준다. 그가 ‘FEEL’에서 다룬 것이 이것이다.

온세계가 내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길 원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대체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해주지?

즉흥적 작사와 흑인 커뮤니티 내의 경찰 폭력, 빈곤, 범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은 여러 매체들이 간과하는 이야기들을 드러낸다. 라마는 이러한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비슷한 일에 헌신한 언론인들도 있다. 하지만 저널리즘은 보통 흑인의 삶의 거칠고 폭력적인 면에 집중하는 반면, 라마는 기쁨도 자유롭게 보여준다. 그의 음악은 미국 정치 역사의 지금 이 순간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복잡함을 잡아낸다. 우리의 공포를 보여줌으로써 이를 극복할 희망도 제시한다. 그는 흑인의 자존감을 증폭시킨다.

40년 뒤 라마의 아무 앨범이나 틀어 듣는다 해도, 흑인의 투쟁, 지금 이순간의 흑인의 삶의 맥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생생함. 평범함. 희망. 기쁨.

‘DAMN.’을 비롯한 라마의 음악들은 저널리즘이 지향해야 할 지점이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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