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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수술 이틀 만에 노역장 배치돼 숨진 이의 유족이 남긴 호소

검찰과 구치소 등은 “법과 원칙에 따른 일”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벌금 150만원을 못내 노역장에 유치된 뒤 이틀 만에 숨진 김아무개씨의 방. 집주인은 김씨가 숨진 뒤 유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김씨의 담요와 옷가지 등을 치웠다.
벌금 150만원을 못내 노역장에 유치된 뒤 이틀 만에 숨진 김아무개씨의 방. 집주인은 김씨가 숨진 뒤 유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김씨의 담요와 옷가지 등을 치웠다. ⓒ한겨레

“잘못했으면 벌을 받는 게 맞지만, 아픈 사람을 며칠 기다려줄 순 없었을까요.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지만 형이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아팠을지….”

22일 <한겨레>와 만난 김경호(47)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노역장에 유치된 지 이틀 만에 지병으로 숨을 거둔 김아무개(55)씨의 동생이다.

형 김씨는 지난해 12월 마트 의자에 놓인 가방을 훔친 혐의로 벌금 150만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는 벌금을 내지 못했고 서울구치소에 입감된 지 이틀 만인 15일 숨을 거뒀다. 지병인 심부전증으로 수술을 받고 퇴원한 지 엿새째 되는 날이었다.

김씨가 살았던 서울 종로구의 쪽방촌에서 만난 경호씨는 “10년 만에 들은 형 소식이 ‘사망했다’는 것”이라며 허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숨진 김씨와 경호씨는 8남매의 일곱째, 여덟째다. 여덟살 터울인 형제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일찍 헤어졌다고 한다. 유년 시절 고향인 대구에서 함께 살던 이들은, 김씨가 돈을 벌러 대구를 떠나면서 교류가 뜸해졌다.

경호씨가 기억하는 형의 마지막 모습은 10년 전 영등포역에서 가방을 메고 걸어가던 뒷모습이다. 김씨가 서울에서 일용직으로 근근이 산다는 걸 안 경호씨와 누나가 서울로 올라와 김씨를 만났다. 대구에 내려와 함께 살자는 이들에게 김씨는 그동안 모은 300만원을 건넸다. 김씨는 “그동안 밥 한 끼, 옷 한 벌 제대로 못 사줘 미안하다. 만약 내가 죽으면 장례비로 써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김씨의 방에서 발견된 메모. ‘일용할 양식’, ‘이날이나 저날이나 매일 같은 날이구나’라는 글귀가 보인다.
김씨의 방에서 발견된 메모. ‘일용할 양식’, ‘이날이나 저날이나 매일 같은 날이구나’라는 글귀가 보인다. ⓒ한겨레

경호씨는 형의 사망 소식을 듣고 종로구 쪽방촌 좁은 골목을 비집고 형이 살았던 방을 찾았다. 형이 누웠던 자리가 그대로 있었다. 한 평짜리 방은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둡고 퀴퀴했다. 방문을 열면 곧바로 공용 화장실 소변기가 놓여 있었다. 옷걸이에는 낡은 오리털 점퍼가 한 벌 걸려 있었고, 언제 먹었는지 모르는 컵라면 용기와 빈 소주병이 한켠에 놓여 있었다. 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며 아픈 몸을 뉘었을 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씨가 쓴 것으로 보이는 메모에는 ‘일용할 양식’, ‘이날이나 저날이나 매일 같은 날이구나’라고 적혀 있었다. 경호씨는 그때 처음으로 형과 부모를 원망했다고 했다.

“연락 없어도 잘 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려고 연락을 끊은 건가 눈물이 났어요. 그때 처음으로 낳아준 부모님을 원망했어요. 가난도 죄라는 말이 실감 났거든요.”

김씨는 요금을 내지 못해 정지된 구형 폴더폰과 전 재산 1만4100원을 유품으로 남겼다.

김씨가 남긴 유품들.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던 통장, 요금을 내지 못해 오래전에 끊긴 구형 휴대전화, 김씨가 노역장에 유치될 때 가지고 갔던 김씨의 전 재산 1만4100원이 전부다.
김씨가 남긴 유품들.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던 통장, 요금을 내지 못해 오래전에 끊긴 구형 휴대전화, 김씨가 노역장에 유치될 때 가지고 갔던 김씨의 전 재산 1만4100원이 전부다. ⓒ한겨레

쪽방촌에서 만난 이웃들은 그를 ‘예의 바른 사람’으로 기억했다. 이따금 김씨와 술을 마시기도 했다는 노인 ㄱ씨는 “이웃들을 보면 예의 바르게 인사도 잘했다. 몸이 아파도 내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아무개(60)씨는 “돈은 없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신세 지지 않고 박스를 주우며 성실하게 살았다”고 했다.

김씨는 구치소에 들어갈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김씨가 작성한 ‘체포·구속 피의자 신체확인서’를 보면, ‘3월 심혈관질환으로 쓰러진 뒤 입원치료를 받았다. 지병으로 가슴과 머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하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김씨를 노역장으로 보낸 검찰과 구치소 등은 “법과 원칙에 따른 일”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김씨가 살았던 서울 종로구 쪽방촌 일대
김씨가 살았던 서울 종로구 쪽방촌 일대 ⓒ한겨레

경호씨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형의 주검을 확인하러 병원에 갔어요. 그곳에서 며칠 전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지병이 악화돼 숨졌다는 부검 결과를 받았습니다. 퇴원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건강도 회복하지 못했을 텐데….”

경호씨는 하던 일을 잠시 멈췄다. 본인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이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원하는 것은 형을 대신해 사과를 받는 것,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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