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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150만원 때문에…심부전 환자 ‘노역장’ 이틀만에 숨져

검찰, 경찰, 구치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한겨레

심부전증(심장 기능 이상)을 앓고 있던 50대 기초생활수급자가 벌금 150만원을 납부하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된 지 이틀 만에 숨졌다. 이 환자는 주민센터의 긴급지원으로 수술을 받았으며 숨지기 엿새 전 퇴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아무개(55)씨는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마트 의자에 놓여 있던 핸드백을 훔친 혐의(절도)로 벌금 150만원의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그가 훔친 핸드백 안에는 드라이어 등 물품이 들어 있었다. 그가 훔친 핸드백과 물품의 총액은 80만원 남짓이었다. 김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한달 70만원 남짓의 기초급여가 수입의 전부였다. 그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 서울 종로구 쪽방촌에 있는 한평 남짓의 좁은 방에서 홀로 생활했다.

김씨는 20여년 전 대구에서 올라와 일용직을 전전했고, 때로는 노숙생활을 하기도 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었던 그는 서울에서 쭉 혼자 살았다고 한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방 안에서 그는 바닥에 놓인 가스버너로 밥을 해 먹고 얇은 담요를 덮고 잠을 잤다. 그가 쓰던 구형 폴더 휴대전화는 요금을 내지 못해 끊긴 지 오래였다. 쪽방촌 그의 지인들은 벌금 150만원을 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김씨가 홀로 쪽방촌에 살았던 것은 좋지 않은 건강 때문이었다. 김씨는 지난달 29일에도 스스로 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다. 6개월 가까이 숨이 차오르는 증상이 계속됐고, 가만히 있어도 숨이 가빠왔기 때문이다. 병원에선 ‘폐부종을 동반한 심부전’이라고 진단했고 수술을 권했다. 병원비를 낼 수 없었던 김씨는 퇴원을 요구했다. 이런 김씨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긴 담당 의사는 병원 쪽에 ‘김씨의 수술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고, 다행히 병원은 그가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에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김씨는 주민센터의 도움을 받아 ‘서울형 긴급지원’으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긴급지원금 100만원으로 수술비와 입원비를 모두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수술이 끝난 뒤 그는 100만원으로 중간정산을 하고 지난 9일 퇴원했다. 의사는 며칠 더 입원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김씨를 강제로 붙잡아둘 수는 없었다.

퇴원한 지 나흘 만인 지난 13일 오전 10시 그는 서울구치소에 입감됐다. 벌금 미납에 따른 노역장 유치였다. 그리고 이틀 뒤인 15일 오전 8시45분, 그는 경기 안양시 ㅎ병원으로 이송된 지 한시간여 만에 숨졌다. 부검 결과 그의 사망 원인은 ‘심부전 악화’였다. 큰 수술을 받고 퇴원한 지 나흘 만에 벌금 150만원 때문에 노역장에 유치됐고, 유치된 지 이틀 만에 사망한 것이다.

김씨의 건강 상태는 구치소 입감 당시에도 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든 피의자는 구치소에 들어갈 때 신체검사를 받는다. 당시 김씨가 작성한 ‘체포·구속 피의자 신체확인서’를 보면, “지난달 급성 심부전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 치료 중 최근 퇴원해 약물치료 중에 있으며, 이 병으로 인해 가슴과 머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하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김씨를 위해 국가기관이 어떤 조처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씨가 이틀간 짧은 수용 생활을 했던 구치소 쪽과 교정본부를 관할하는 법무부, 그를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지휘한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른 일”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입감 당시 의료진이 진료를 했고 환자라고 판단해 병동에 수용하라고 해서 병동에 있었다”며 “전염병이 아니고선 모든 피의자를 입감시키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사가 노역장 유치 집행을 지휘하면 구치소는 이에 따를 뿐”이라며 “구치소 입장에서는 피의자를 마음대로 빼거나 넣을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문홍성 법무부 대변인은 “법무부 교정본부는 수용자만 관리할 뿐 피의자가 어떤 혐의인지도 알기 어렵다”며 “검찰에 문의해 달라”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박찬호 2차장은 “원칙에 따라 벌금을 안 내면 노역장 유치를 지휘한다. 노역장에 유치할 당시엔 사망자의 심부전증은 확인이 안 된 사항이었다. 입감 당시 건강 상태는 교정당국에서 확인한다”고 했다.

김씨의 동생은 “퇴원한 지 나흘밖에 안 된 사람을 벌금 150만원 때문에 꼭 가뒀어야 했는지 의문”이라며 “힘겹게 살아온 형이 너무 허무하게 떠난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김씨의 장례를 아직 치르지 않았다. 김씨의 주검은 20일 현재 병원 영안실에 있다. 김씨의 동생은 건강이 안 좋은 김씨를 무리하게 노역장에 가둬 사망에 이르게 한 이들의 사과를 받은 뒤 장례를 치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구치소와 법무부, 검찰 어느 곳도 사과하지 않았고, 그도 어디에 책임을 물어야 할지 모른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검찰은 서류만 보고 노역장 유치를 결정했고, 경찰은 김씨의 상태 등을 보지 않고 기계적으로 집행했다. 구치소도 형식적인 검진만 거쳤던 것으로 보인다. 국가권력이 힘없고 돈 없는 사람의 목숨을 어떻게 다루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형 집행 편의와 국민의 생명권 가운데 어느 쪽이 우선시돼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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