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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썸타지 마세요

당신이 누군가를 좋아할 때, 해도 되는일과 하면 안되는 일

ⓒhuffpost

열 번 찍어 아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여러 번 시도하면 기어이 이루어낼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이 속담은, ‘줄기차게 꼬시면 안 넘어가는 여자가 없다’는 의미로 자주 쓰이곤 합니다. 사실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우리 주위에는 이 문장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LeonidKos via Getty Images

 

이 속담에는 열 번을 찍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상대방이 열 번 찍을 기회를 나에게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찍었다는 건 (상대가) 최소한 찍을 기회는 주었다는 의미이고, 찍을 기회를 줬다는 건 찍혀 넘어갈 가능성이 있었다는 의미이니,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의 끊임없는 시도는 언제나 가치가 있습니다.

문제는, 가망도 없는 상태 즉 상대는 찍을 기회조차 줄 생각이 없는 상태인데 줄기차게 찍으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대면조차 원치 않는 상대를 찾아가 열 번씩 찍어대면, 그건 열정도 진심도 아닌 그냥 민폐이자 진상입니다. 일종의 죄악이에요.

여자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험담의 대상이 되는 남자는 ‘눈치 없이 들이대는 남자’입니다. 성질 더러운 남자, 나쁜 남자, 못돼먹은 남자 등등보다 ‘단언컨대’ 훨씬 더 자주 험담의 대상이 됩니다. 이 얘기를 하면 남자들의 반응은 주로 “너무 하다”는 것이에요. 다 좋아서 하는 행동인데, 그걸로 비난을 하는 건 너무 하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요컨대 사랑이 죄냐는 것인데, 사랑이 죄냐고 묻는다면 사랑은 죄가 아닙니다.

문제는 애정표현입니다. 그 무엇을 향하든 사랑은 나의 자유이지만, 그 사랑을 상대에게 실컷 표현하는 것은 결코 자유의 영역이 아닙니다. 애정표현이란 건 기본적으로 서로 호감이 있는 관계에서 오가는 거잖아요. 남녀간의 애정표현은 연애라는 장치가 우리에게 부여해주는 자격과도 같은 것입니다.

다가가도 될까 다가가면 안 될까. 사람은 고스톱을 잘 쳐야 아니 잘 해야 합니다. GO와 STOP을 제 때 못하면 패가망신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고스톱을 해야 하는 시점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연애가 시작되기 전 애매한 그러나 달달한 상태로 서로 밀고 당기는 걸 ‘썸을 탄다’고 하죠. 그런데 이게 ‘썸’인지 아닌지 헷갈린다면 그건 썸이 아닙니다. 열에 아홉은 그렇습니다. “내꺼인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라는 노래 가사 때문인지 맞는 듯 아닌 듯 어딘가 알쏭달쏭한 게 썸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썸타는 관계는 아직 연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니가 나의 것인지 아닌지 헷갈린다’는 의미이지, 둘 사이에 썸띵 스페셜한 것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헷갈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건 모를 수가 없어요. 모르겠으면 없는 거예요. 그래도 헷갈리니까 분명한 기준을 알려달라고 한다면…

 

ⓒBaloncici via Getty Images

 

서로 연락이 끊긴 상태에서 만 하루, 이틀이 넘어가면 보통은 썸이 아니라고 보면 됩니다. 밤 10시 넘어서 메시지할 때 상대가 집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를 내가 모르고 있으면 보통은 썸이 아닙니다.

썸이든 뭐든 관계가 시작되기 전, 관심 있는 여자가 생기면 당신은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낼 테죠. 깨톡같은 거요. 이때 답장이 안 오면, 그냥 거기에서 스톱하는 게 좋겠습니다. 답장을 못 받은 절망적인 마음을 ‘이 여자가 혹시 튕기는 게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추측으로 연결 짓지 말아주세요. 마음이 있는데도 튕기는 경우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아예 답장을 안 한다는 건 대화 자체를 원치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답장이 너무너무 오랜 시간 동안 오지 않는다면 그것도 대개는 발전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라고 보면 됩니다. 너무너무 오랜 시간이 얼마 동안이냐고 묻는다면… 여덟 시간 정도라고 해두고 싶네요.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기면 그 사람의 사생활에는 뭔가 대단히 숭고한 게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곤 해요. 그렇지만 사실 상대방도 당신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눈뜨고 일하고 쉬고 놀고 화장실가고 멍 때리고 핸드폰 보다가 눈감고 잡니다. 법적으로 일일 노동 시간은 8시간입니다. 평균 (권장) 수면시간도 8시간입니다. 여덟 시간 이상 핸드폰을 못 볼 것 같은 상황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잘 없죠?

물론 무얼 하느라 혹은 사정 때문에 정말로 메시지를 늦게 봤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어떤 사과의 말이나 설명의 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언반구 없이 매번 답이 함흥차사라면, 글렀다고 보면 됩니다. 튕기는 거 아니냐고 제발 묻지 말아주세요. 튕기는 거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자, 몇 번의 메시지가 오가고 나면 이제 데이트 신청 비슷한 걸 하겠죠? 제안을 하는 입장에서는 데이트 신청을 하는 수준의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어차피 겉으로야 그냥 가벼운 식사 요청이에요.

아 잠깐만요, 설마… 상대방의 마음도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 데이트합시다!”와 같은 멘트를 날리려는 건 아니겠죠? 그냥 심플하게 밥 먹자고 하세요. 이건 무엇보다 당신을 위해서인데, 그래야 거절당할 가능성이 낮아집니다. 굳이 데이트라고 못 박아두면 만남에 부담을 갖고 제안을 거절할 수가 있어요. ‘데이트하자는 제안에 응했으니 내 쪽에서도 이성적인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 정도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거든요. 그냥 밥 한 번 먹는 건 상대에게도 큰 부담이 아닐 테니, 그냥 밥 먹자거나 커피 한 잔 하자는 정도의 제안이 좋습니다.

 

ⓒErstudiostok via Getty Images

 

아무튼 당신이 만나자는 요청을 했는데 상대가 거기에 응할 생각이 없다면, 그쪽에서는 무엇이든 핑계를 댈 것입니다. 사귀자는 것도 아니고 같이 살자는 것도 아닌데, 싫으니까 꺼지라는 식으로 직구를 날릴 여자는 잘 없습니다. 그냥 만나기 싫은 거여도 선약이 있다든지 몸살 기운이 있다든지 어떤 구실을 댈 것입니다. 아무튼 처음의 제안을 거절당했다면, 일단 절반 이상의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보면 됩니다.

그럼 아마 한 번 정도는 더 만나자고 해볼 수 있겠지요? 이번에도 상대가 어떤 이유를 대서 거절한다면 그건 아닌 거예요. 당신을 만날 생각이 없는 거예요. 순진하게 ‘두 번 다 피치 못 할 사정이 있었겠지’라는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상대도 당신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관심 있는 사람, 꽤 괜찮은 사람과의 만남을 두 번씩이나 거절하지 않아요. 정말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요? 정말 사정이 있어 두 번이나 약속을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쪽에서 먼저 대안을 제안하든가 할 거예요. 예를 들어 “이번 주말엔 선약이 있는데 다음 주는 어떠세요?”라든지 “제가 주말에는 힘든데 평일은 어떨까요” 하는 식으로요. 그런 거 없이 그냥 무슨 구실을 대서 두 번 이상 거절하면 아닌 거고, 혹시 그 이후에 한 번 정도는 더 시도해볼 수도 있겠지만 세 차례 거절을 당했으면 그냥 근처에도 가지 말고 앞으로 연락도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자도 괜찮은 남자가 있으면 만나고 싶습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같이 밥 먹고 술 마시고 싶습니다. 밤새 노닥거리고 싶고 구석구석 만지고 싶습니다. 전 혼자 훌쩍 떠나고 싶어 주말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두었다가 관심 있는 남자가 주말에 밥 먹자기에 바로 티켓을 취소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 열정도 다 지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당신이 누군가를 좋아할 때, 해도 되는 일. 그리고 하면 안되는 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그만큼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요. 관심 있는 사람이 생겨 하루 온종일 그 사람을 생각하는 일, 그 사람 생각에 전전반측 잠 못 이루고 밤을 지새우는 일, 13초당 한 번씩 그 사람의 SNS에 접속하는 일, 그 사람이 올린 사진을 살포시 내 휴대폰에 저장하는 일, 교회 가서 그 사람도 날 좋아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떼써보는 일, 그래서 주일 헌금을 평소보다 1.7배쯤 많이 하는 일, 우리 둘이 꼭 사귀게 해달라고 부처님 앞에 삼천배를 올려보는 일, 친구들 만나서 줄기차게 그 사람 얘기만 하는 일, 이번엔 정말 다른 것 같다고 믿어보는 일, 그 사람과 손잡고 걷는 날을 그려보는 일, 그러다 뽀뽀하는 상상까지 해버리는 일.

모두 당신이 해도 되는 일입니다. 그 누구의 자유도 구속하지 않는 일들이니까요.

그리워서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는 일, 답장이 안 오면 깨톡을 보내고 또 보내는 일, 왜 답장을 안 하냐고 앙탈을 부리는 일, 목소리 듣고 싶어서 야심한 시각에 전화 거는 일, SNS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왜 다른 남자랑 밥 먹었냐고 따지는 일, 어쩐지 치명적으로 나온듯한 내 셀카 사진을 수줍게 한 장 보내보는 일, 보고 싶으니까 네 사진도 한 장 보내달라고 청해 보는 일, 나에게 철벽을 치지 말라고 선언하는 일, 튕기지 말라고 엄숙히 경고해보는 일, 야식을 사들고 회사 앞으로 찾아가는 일. 예고 없이 집 앞에서 기다리는 일.

모두 당신이 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상대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는 일들이니까요.

 

ⓒKCHANDE via Getty Images

 

호의도 안 되냐고 묻지 마세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무언가를 보낼 때에는 상대방의 허락이 필요한 법이거든요. 좋아한다는 말이나 밥이나 선물이나 그런 것들은 다 좋은 거니까 허락 없이 마구 퍼주어도 되는 게 아니냐구요? 네, 아니에요. 그건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을 때에만 좋은 거예요. 예고 없는 방문, 설레는 말 한마디, 다정한 이벤트. 이건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을 때에만 기분 좋은 것들이에요.

당신이 누군가에게 반할 자유, 누군가를 좋아할 자유, 사랑할 자유, 애정을 표현할 자유는 전부 소중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그 자유는 ‘원치 않는 불쾌함을 겪지 않을 상대의 자유’ 앞에서 멈춘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말아주세요. 당신이 그녀에게 반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녀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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