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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17일 14시 3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4월 17일 15시 57분 KST

내 연애의 모험은 대부분 봄에 시작되어 여름에 절정을 맞곤 했다

연애란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걸 내어주는 거라는 것을

huffpost

 

‘여름에는 마른 년이 이기고, 겨울에는 돈 많은 년이 이긴다.’

적어도 나에겐 맞는 말이다. 대학생 때 내 생활비는 15만 원 남짓, 짧은 치마에 부츠, 가볍지만 따뜻한 울코트. 이런 건 꿈도 못 꿨다. 취업하기 전까지 나는 오리털 파카 한 벌로 대부분의 겨울을 났다. 여름에야 2,3만 원에도 원피스를 살 수 있으니, 마른 몸을 가진 나에게는 당연히 더운 날이 유리했다. 그리하여 내 연애의 모험은 대부분 봄에 시작되어, 여름에 절정을 맞곤 했다.

 그 남자를 만난 것도 벚꽃 필 무렵이었다. 개강 파티를 빙자해 몇 주일째 선배들에게 술을 얻어먹고 다니던 어느 날, 건너편 테이블에 있던 그를 보았다. 길고 흐린 인상이었다. 그 선배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나한테 연락을 해왔다. 나는 밥이면 밥, 커피면 커피, 술이면 술, 사준다는 대로 족족 따라다녔다. 평일에야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고, 나는 늘 먹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가 안내하는 학교 주변의 숨겨진 맛집들을 순례하며 먹는 행복함을 알아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윤곽이 점점 또렷해졌다. 햇볕 냄새가 날 것 같은 뽀송한 셔츠, 잘 다림질된 베이지색 면바지, 가느다란 목선 위에 얹힌 여린 선의 얼굴, 그리고 오똑한 콧날. 곧 나는 멀리서도 그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곧 사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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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애 중에도 줄곧 얻어먹는 쪽이었다. 1차도, 2차도 그가 샀다. 어딘가 멀리 놀러갔을 때 유부초밥 싸간 것 정도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거나 그는 선배였고, 나는 후배였다. 그리고 나는 등록금도, 생활비도, 집안의 빚도 갚아야 하는, 타의 추정을 불허하는 가난뱅이였다. 그가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으면 나는 나갈 수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얻어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가 졸업하고 회사를 좀 다니다가 그만두고 백수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그때 조교를 하고 있었지만 집에 생활비 갖다주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 여전히 밥을 사지 못했다. 남자친구의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맛집은 사치였다.

건조한 만남이 계속되던 어느 날, 그가 문득 조교실로 찾아왔다. 한 손에는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거기서 말 그대로 ‘밥상’이 나왔다. 집에서 먹는 사기밥그릇에 넣은 밥 한 공기, 통째로 넣은 밑반찬이 튀어나왔다. 메추리알이며 깻잎장아찌, 딱 맞게 익은 삼삼한 김치에, 후식으로 오렌지도 싸왔던 것 같다. 모두 자취하는 그를 위해 지방에 사는 엄마가 바리바리 싸서 택배로 보내준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받자마자 그는 밥을 지어서 그대로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그러면서 말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연애 하나는 잘해.” 응.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더 말을 붙이려다 삼켰다. 이쁘고, 고마운 밥상이었다. 그 전에 사준 것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연애란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걸 내어주는 거라는 것을.

 

sunyoungyim / Imazins via Getty Images

 

몇 번의 계절이 더 흘렀다. 우리 관계는 늘어진 고무줄빤스마냥 긴장감이 사라졌다. 취업 준비에 쫓기던 나는 시간도 내주기 아까웠다. 그를 만나는 주말에 차라리 스터디 하나를 더 하고 싶었다. 아마도 그래서 헤어졌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켰으므로.

 

″난 나를 지켰지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동안의 진심 어디엔가 버려둔 채.

사랑했었나요 살아 있나요 잊어버릴까 얼마만에. ”

- <아름다운 것>, 언니네 이발관

 

 

시간이 흘러 그가 나를 처음 만났던 나이가 되었을 무렵, 드디어 나도 취직을 했다. 그가 대학생 때 쓰던 용돈만큼을 나도 쓴다. 돌이켜보니 그는 이 돈으로 자취하면서 삼시세끼를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싶다. 아꼈겠지. 그래서 친구들과 그 좋아하던 술자리도 포기했으리라.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먹고살기 팍팍하다는 핑계로, 그것들을 너무 쉽게 받아버린 게 아닐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네가 날 더 사랑했잖아.

이제 그는, 나는 각자 다른 사람과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가끔) 마음을 다해 밥을 짓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석원이 말했듯, 사랑은 이어달리기인 걸.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