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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만들어 줄 일 있느냐고요”(!)

초등학생들이 장래 희망 직업에 건물주라고 썼다는 것은 웃을 일이 아니다

  • 조은
  • 입력 2018.04.13 14:40
  • 수정 2018.04.13 15:04
ⓒhuffpost

오랜만에 참으로 드물게 잔인한 4월 대신 찬란한 4월을 맞아보는가 했는데 마음이 심란해졌다. 우리에게 신성하거나 따뜻함의 표상인 모성과 가족이 생각지 않은 표상과 연결되면서다. 저출산 문제가 화제에 오른 어느 석상에서 이삼십대 청년 세대와 폭넓게 교류하는 후배 교수가 요즘 젊은 친구들이 뭐하러 애 낳느냐고 그래요. 무슨 노예 만들 일 있느냐고. 그때 나는 무심코 그래 애 낳으면 엄마는 노예 되는 거지라고 응수했다.

그랬더니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게 아니라 “노예 만들어 줄 일 있느냐고요”라고 또박또박 정정했다. 아이 낳아 봤자 그 애들이 노예밖에 더 되겠느냐는 요즘 젊은층 사고를 못 쫓아간 내 오청(誤聽)에 머쓱해져 입을 다물었다. 부의 편중이 심해져 10:90, 아니 1:99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곧 노예를 만들어 주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wattanachon via Getty Images

 

어머니 되기를 포기함으로써 모성을 실현하겠다는 젊은층의 ‘이성적 모성’에 꽂혔다. 사회학자 천선영은 계획해서 출산하는 모성을 생물학적 모성에 대비해 이성적 모성으로 명명하고 근대적 ‘새로운 어머니 되기’의 등장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그 근대적 모성은 각자도생의 경쟁체제에서 자기 새끼들의 미래까지도 간수해야 하는 어머니 되기의 다름 아니다.

우리의 근대적 모성의 발현은 여성 몸의 타자화에서 출발했다. 지난 50여년 동안 어머니 되기는 국가의 맞춤 출산 정책에 충실했다. 전반 30년은 국가의 압축성장에 발맞춰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의 저출산 유도 정책에 따랐고, 후반 20년은 인구 국부론에 맞춰 저출산 곧 국가 위기라는 담론의 압박 속에 있다. 1960년대 합계출산율은 6.0이었는데 30년 만에 1.59명으로 압축 감소했다. 그러다가 2005년에 1.07로 바닥을 쳤고 그 이후 1.1~1.3 사이를 오르내리다 작년에 1.0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비상벨이 울렸다. 그동안 저출산 대책에 정부가 쏟아부은 예산이 126조원에 이르는데도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간단한 질문을 불러온다. 어느 계층이 가장 출산을 기피 또는 유보할까? 아이 낳는 신성한 일을 계급계층과 연결짓는 것이 불온해서인지 체계적인 공식 통계가 별로 없다. 2015년 소득 분위별로 보면 상위 20%에서는 평균 출생아 수가 2.1명인데 하위 20%에서는 0.7명이라는 수치 정도가 계층과 출산율의 연관성을 밝히는 공식 자료다. 그러나 학자금 대출부터 쌓이기 시작한 빚의 덫에 걸려 결혼도 아이도 포기한 엔포세대의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불평등 지수를 나타내는 소득 지니 계수는 0.35로 평등함에서 세계 11위라니(!) 크게 불평등한 사회로 보기 어렵다는 항변이 가능하다.

 

ⓒwildpixel via Getty Images

 

그러나 토지자산 지니 계수는 0.86, 금융자산과 건물자산 지니 계수는 각각 0.70에 이른다.(지니 계수 1.0은 상상만 가능한 완전 불평등 사회다.) 토지자산으로 본다면 1:99 사회에 가깝고 건물과 금융자산 소유로 보면 10:90 사회라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초등학생들이 장래 희망 직업에 건물주라고 썼다는 것은 웃을 일이 아니다. 한때 한국 사회 계층 이동의 통로였던 교육이나 자기 사업이 그런 구실을 그만둔 지 오래다. 사실상 안정된 중산층은 없는 셈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계층에서조차 그들의 삶이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차 있다.

소득과 자산 양극화가 출산 양극화로 이어질 기미는 농후하다. 결혼해서 하나는 어떻게 낳지만 둘째는 자신 없다는 ‘이성적 모성’의 발현은 가족 가치에서 가장 보수적으로 알려진 중산층에 팽배해 있다. 무책임하거나 자산이 있거나 둘 중에 하나가 아니라면 (심지어) 누구 좋으라고 노예 만들어 줄 일 하겠냐는 것이다. 초저출산 위기는 사실상 이성적 모성의 위기이면서 중산층 재생산의 위기이다.

여성의 몸, 특히 출산하는 여성의 몸이 통치에 이용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노예 만들어 줄 일 있느냐는 직설이 아니었다면 내 머릿속에서 역사 속의 종모법까지 끄집어내지 않았을 것이다. 내친김에 노비들의 신분 상승 이야기와 종모법을 둘러싼 논쟁까지 찾아 읽었다. 종모법은 어미가 노비면 모든 자녀는 노비가 되는 조선시대 수취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노비 재생산 법이다. 세수와 노역을 맡을 양인 수를 늘릴 필요가 생겼을 때는 아비의 신분에 따라 노비 신분을 면해주는 종부법을 시행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내내 필요에 따라 종모법과 종부법을 오갔다. 한편 상층에서는 지배층의 경계를 강화하는 방편으로 재가한 여성의 아들은 벼슬길에 오를 수 없는 재가녀 금고법을 시행했다. 상층에서는 자산과 신분 상속을 위해, 하층에서는 노동력 수급을 위해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모성을 연계시켜 통제한 것이다.

고려 때도 노비의 신분은 어미를 따른다는 노비 세전법(천자수모법)이 있었다. 그리고 노비가 부족한 듯하면 아비만 노비여도 그 소생이 노비가 되는, 즉 한쪽만 노비여도 노비가 되는 일천즉천법을 시행하고, 때때로 노비주들은 이른바 양천혼(양인과 노비의 혼인)을 추동해서라도 노비 수를 불렸다. 이렇게 노비를 늘린 것이 고려가 망한 한 요인이라는 설에 밑줄을 그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또 하나 어디서도 노비가 자기 어머니를 그리는 사모곡은 찾지 못했다.

2000년대 초반 ‘아들 어머니’ 패러디가 유행한 적이 있다. “잘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장모의 아들/ 못난 아들(또는 백수)만 내 아들”, 여기서 더 나아가 “빚진 아들만 내 아들”이라는 우스개다. 이 패러디의 시작은 기세등등하던 아들 어머니가 딸 어머니에게 밀리는 상황에서 나온 ‘아들 어머니’ 유감 시리즈의 하나다. 이때쯤 선택적 남아 출산으로 인한 출산 성비 왜곡은 끝이 났다. 그런데 아들딸 구분 없이 못난 자식 또는 빚진 자식 세대는 자기들의 자식들이 노예 같은 삶을 살 것을 우려해 출산을 기피한다.

 

ⓒtostphoto via Getty Images

 

저임 노동에 비정규직과 알바를 전전하는 노예 만들어 줄 일 있느냐는 질문은 진보적 사회학자나 페미니스트들이 던진 물음이 아니라 평범하게 일상을 꾸리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은 젊은 세대에서 튀어나온 생활어다. 부모 잘 만나는 것이 최대 로또복권 당첨임을 간파한 흙수저 젊은 세대는 두려운 미래에 맞서 출산파업이라는 고육책을 꺼내든 셈이다.

‘봄이 온다’가 봄이 왔다가 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흔이 다 된 집안 조카의 청첩이 날아들었다. 결혼식은 생각보다 경쾌하고 곳곳에서 읽히는 적당한 저항과 파격도 신선했다. 신랑 신부는 주례 없이 서로가 혼인 서약을 하고, 싱어송라이터 친구가 랩으로 축가를 불렀으며, 신부의 가까운 후배들이 통 넓은 청바지에 운동화와 헐렁한 티셔츠 차림으로 축하 힙합 춤을 췄다.

예식장에 다녀오니 아흔도 훨씬 넘은 고령의 어머니가 신부 나이부터 물으셨다. 서른여섯이라고 답하니 어쩌다 그렇게 나이 든 노처녀를 구했느냐고 하셨다. 노처녀를 구한 게 아니고 스물넷에 만나 12년을 기다려 결혼식 올린 거라고 답했더니 “그럼 진즉 하지 아이는 어떡하려고…” 하면서 못마땅해하셨다. 굽은 허리를 겨우 펴며 올해도 간장 된장을 담그시고 열심히 장 뚜껑을 열어 봄볕을 쏘이는 어머니의 관심은 당신이 세상을 뜬 뒤에도 당신의 딸들이 평생 먹고도 남을 장류를 담가 놓고 가시는 것이다. 이런 어머니께 “요즘 젊은 애들 아이 낳는 것…” 하다가 덧붙여 끝낼 말을 찾지 못했다. 이제 모성은 실천과 해석 모두에서 세대와 젠더와 계급의 이해가 경합하는 장임을 어쩌랴.

글을 써놓고 ‘노예 만들기와 어머니 되기 사이에서’ 같은 감성적 제목을 달까 또는 ‘(비)이성적 모성의 위기’라는 논쟁이 붙을 제목을 달까 하다가 ‘노예 만들어 줄 일 있느냐고요’라는 도발적 질문을 그대로 제목으로 뽑았다. 이 질문에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것 같아서다.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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