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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세계화 판타지는 실패했다

민주주의는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 김도훈
  • 입력 2018.04.11 15:23
  • 수정 2018.04.11 17:57
ⓒDamir Sagolj / Reuters

유럽에서 네오 파시스트 국수주의가 계속해서 우위를 점해가고 있다는 소식과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전쟁 가열화가 최근 뉴스를 뒤덮었다. 이 두 가지는 관계가 없어보이지만, 사실 같은 기원에서 비롯되었다.

이 두 재앙은(정말이지 재앙이다) 자유시장 글로벌 자본주의가 진보적 민주주의의 매력을 높일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의 부산물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공산주의가 몰락했던 1989년에는 자유로운 시장과 강력한 민주적 제도가 합쳐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중국이 2001년에 WTO에 가입했을 때도 이런 희망이 일었다. 중국 정부의 전체주의 성향이 약해지고, 경제의 국가 통제가 줄어들 거라 믿었다. 무려 톰 프리드먼이 “중국에는 자유 언론이 생길 것이다. 세계화가 이를 이끌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런 판타지들은 실현되지 않았다. 서유럽과 유럽에서는 정치 및 금융 엘리트들이 초 글로벌 자본주의를 받아들일수록 대중의 지지를 잃어갔다. 중국은 세계 시장에 더욱 노출되었지만 일당 독재와 국가 주도 중상주의를 강화했다.

슈퍼 글로벌 시대에 서구 노동자들 대부분의 생활 수준은 제자리 걸음을 했고 수익은 거의 상위층으로 돌아갔다. 기존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기술이 부족한 탓이라는 말 외에는 별 답을 내놓지 못했다. 사람들은 직업 뿐 아니라 자존감도 잃었다. 뒤처진 이들은 패배자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그 패배자들이 투표를 했다. 이 빈 자리에 도널드 트럼프가 밀고 들어왔고, 그와 비슷한 초국가주의 인물들이 유럽 전역에 등장했다.

난민들이 흘러들어 피해가 더 심각해졌지만, 주된 원인은 경제에 있다. 경기가 좋았던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국수주의 극우파는 거의 매력이 없었다.

민주주의를 대놓고 경멸하는 네오 파시스트들이 폴란드, 터키, 헝가리 등 민주주의 기반이 약한 국가들에서 넓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제 서유럽 국가들 대부분에서도 극우 정당이 2위, 3위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네오 파시스트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가 원내 최대 야당이 되었다.

이러한 운동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한때 자본주의를 규제하고 폭넓은 기회와 번영을 공유하게 해주었던 사회적 계약이 파괴된데 대한 반응이다.

이를 파괴한 것은 극단적 세계화(ultra-globalization)였다. 글로벌 기업과 이들의 편에 선 정치인들이 ‘무역’ 협상이라는 명목의 규제 철폐 협약을 만들어냈다. 각국 정부들이 자본주의를 길들이기 힘들게 만들자는 발상이었다. 그러자 세계화 뿐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서도 반발이 일었다. 이러한 협상들은 정치 계급 전체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이 이번 주에 나온 나의 새 책 ‘민주주의는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Can Democracy Survive Global Capitalism?)의 주제다.

강한 민주주의가 대중을 위해 자본주의를 누그러뜨리던 때가 있었다. 이제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압도하고 있다. 대중들이 극우로 돌아서며 민주주의는 또 한 번 타격을 입는다.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하자면, 민주주의가 노골적인 자본주의를 다시 한 번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간다면 정실 자본주의는 독재 정치와의 유대를 강화할 것이고, 보통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신뢰를 계속 잃어갈 것이며, 국수주의적 우파 포퓰리즘의 인기가 커질 것이다.

중국이 성장했다. 한참이나 미뤄졌던 미국과의 충돌은 관세를 둘러싼 치킨 게임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 역시 세계화에 대한 순진한 믿음의 결과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중국이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가 굉장히 명백했다.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는 수입을 막았고, 중국에게 편리한 방식으로만 서방 기업들에게 허가를 내렸다. 동시에 보조금을 지급받은 기업들의 제품을 전세계에 엄청나게 수출했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지만, 오바마 정권 때까지도 미국 정부는 이 현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한심했던, 이제는 없어진 TPP는 중국의 경제 시스템이 자유 시장에 대한 공격이라고 도전하기보다, 다른 국가들과 협상을 하려던 노력이었다.

트럼프는 뒤늦게 전략을 바꿨지만 서툴렀다. 미국이 유럽과 긴밀히 협력해 만족스러운 통상 외교를 했다면 중국이 시장을 더 개방하도록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보복을 기반으로 한 일방적 관세 전쟁을 중국과 벌여서는 승리할 수 없다.

순진한 글로벌리스트 판타지는 몰락했다. 주류 정치계에서 이 사실을 빨리 받아들일수록 트럼프와 유럽 네오 파시스트들의 매력을 빼앗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

글로벌리즘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국수주의도 마찬가지다. 1944년 브레튼 우즈 체제에서 만들어진 케인즈식 글로벌리즘은 30년 동안 폭넓은 번영을 가져왔다. 글로벌 민간 자본의 영향을 제한하고 각 국가가 폭넓은 공익을 위해 시장을 이용하는 사회계약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체제였다.

그래서 국가적 차원에서는 국가의 민주체제와 폭넓게 공유되는 번영에 자부심을 갖는 건강한 형태의 애국주의가 존재했다. 당시의 지도자들은 1929년의 경기 폭락과 대공황의 경험 때문에 구속받지 않는 투기적 자본주의가 경제 붕괴,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상실, 독재, 전쟁을 부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 역사를 결코 반복하지 않겠다 결심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다시 그러고 있다.

미국에서는 민주당이 다시 일어나 트럼프와 공화당을 밀어낼 것이라 기대할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다는 사실 만큼이나, 어떤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는지가 중요하다. 불안정이 심해지는 것을 무시하고 평범한 노동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월 스트리트 민주당 정치인들이 더 생긴다면, 우리에겐 더 많은 트럼프가 생길 뿐이다.

민주체제의 만성적 허약함의 일부를 트럼프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실수다. 자유 시장 방식과 기업 엘리트들이 사회를 장악하게 하여 보통 사람들을 해치게 만든 것이 원인이다.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민주주의의 부활이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노골적인 자본주의가 득세했던 것 만큼이나 강력한 부활이 필요하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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