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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문재인판 블랙리스트'라고 했다. 한미연구소 전직 직원의 말은 다르다.

한미연구소 '외압 논란'의 실체?

  • 허완
  • 입력 2018.04.09 18:13
  • 수정 2018.04.10 14:32
사진은 구재회 한미연구소 소장.
사진은 구재회 한미연구소 소장. ⓒ한겨레

지난 2006년 미국 워싱턴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사이스) 산하에 설립된 한미연구소(USKI)가 예산전용과 이른바 ‘외압 문제’로 논란에 휩싸였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한미연구소에 대한 예산지원을 중단키로 한 걸 두고, 한미연구소와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한국 정부가 보수 진영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구재회 한미연구소 소장 등을 교체하기 위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 특정인사 개입설도 제기하고 있다. 2014년 의원으로서 한미연구소의 운영 문제를 지적했던 김기식 금감원장 등의 ‘외유’ 논란과도 연결시키고 있다.

최근까지 한미연구소에 근무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직원은 익명을 조건으로 8일(현지시각)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구재회 소장 등의 ‘문재인 정부와 코드 불일치에 따른 교체’ 주장에 대해 “셀프 블랙리스트”라며 “언제 터지더라도 터질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조선일보 4월9일자 3면.
조선일보 4월9일자 3면.

 

- 문재인 정부 들어 갑자기 연구소 문제가 불거진 것처럼 보도가 되는데.

= 설립 취지를 잘봐야 한다. 연구소 개소가 2006년인데, 브루킹스연구소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같은 싱크탱크와 다른 것은 국제관계 분야에선 늘 1,2위를 다투는 대학에 만든 점이다. 즉, 연구소의 가장 큰 존재 이유가 교육이었다. 사이스를 졸업하면 미국 정책전문가들도 되고 기자도 되는 이 학교에 장기적으로 한반도 전문가를 양성해야겠다는 존재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임교수도 없고 박사 프로그램도 없이 10년 이상을 보낸 온 것이다.

- 연구 분야 지원은 거의 없었다는 뜻이냐.

= 예산 우선순위가 교육에 있지 않았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학 강의를 하면 매달 한차례 외부 강사를 초청해 특별강연를 하는데, 강의료를 주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찾으라는 식이었다고 한다. 또 한국학 담당 교수가 1년에 한번씩 대학원 학생들을 데리고 한국에 간다. 만나는 사람마다 답례로 학교 기념품이라도 줘야 예의인데, 학교 로고가 들어간 6달러짜리 머그컵 30개를 살 180달러도 없다고 잘랐다는 말을 들었다.

- 한국학 공부하는 학생들에 대한 지원은 없었나?

= 미국은 등록금이 아주 비싸지 않냐. 학생들은 장학금만 많이 줘도 오게 돼있다. 그런데 장학금이 아주 적었다. 대학원 내 다른 전공 교수들도 이상하다고 했다. 돈을 쓰는 게 학교라는 교육기관 입장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럼 한국학에 대한 지원 비중은 아주 적었겠다.

= 한국학 교수와 한국어 교수의 인건비, 매달 한번씩 하는 점심 세미나(브라운백 런치) 때 샌드위치 값, 장학금 약간, 학생들 한국 현장경험 등이었던 것 같다. 정확한 액수는 알 수가 없지만 년 20억원 예산 중에 3~4억원도 안될 것 같다. 

- 예산문제, 이른바 방만 운영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 예산은 한두명 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학교 입장에서 보면 너희들 돈이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소장 연봉이 14만달러라고 나왔더라. 한국학 교수와 한국어 교수의 연봉을 합쳐도 14만달러가 안된다. 능력이 돼서 그 정도 연봉을 받을만한 사람이라고 말하면 할 수 없지만 교육기관에서 그런 연봉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구재회 소장 등이 한국으로 출장갔을 때 조선호텔이나 매리어트호텔 같은 데서 묵어 안좋은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키에프) 쪽에서 시정을 하라고 한 걸로 알고 있다. 이렇게 10년 넘게 왔는데도 우리 정부가 제대로 대응을 안하면 직무유기 아니겠냐. 

조선일보는 4월9일 사설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며 '다음 정권 때 블랙리스트 수사는 국경을 넘나들며 이뤄져야 할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조선일보는 4월9일 사설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며 "다음 정권 때 블랙리스트 수사는 국경을 넘나들며 이뤄져야 할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 한국 정부의 시정 요구가 학문의 자유 침해라고 반박을 하고 있다.

= 키에프에서 연구소장한테 시정하라고 했을 때 구 소장의 정치적 발언을 문제삼았거나, 연구의 이념적 성격을 문제삼았다면 그렇게 주장할 수 있게 하지만, 방만 경영을 지적하는 것 아니냐. 요즘 하는 말로 ‘셀프 블랙리스트’로 몰고가는 것이다. 한국의 공적 자금이 들어갔으면, 최소한 돈을 줬던 목적에 맞게 사용되는지는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지금까지 보수정권에서도 지적을 했던 문제다. 언제 터지더라도 터질 문제였다.

- 학교 회계와 한국 쪽 회계는 기준이 다르다고 항변한다.

= 원래 학교에선 출장가면 국무부 기준에 다 맞추는 걸로 알고 있다. 학교 입장에선 돈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은 다 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자금 지원을 했기 때문에 학교가 직접 감사하기가 모호했을 것이다.

- 학교에서 구 소장을 해임할 권한이 없다고 한 이유는 뭘까.

= 교수나 모든 직원은 교무회의를 거쳐 학교에서 임명한다. 구 소장은 교수가 아니다. 그래서 엄밀히 보면, 학교 입장에선 상관없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교수진이 문제가 생기면 교무회의에서 결정을 한다. 그런데 구 소장은 그런 게 아니었다.

- 왜 이런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보나.

= 그건 잘 모르겠다. 디자인을 잘못한 것 아닐까 하는 추정만 할 수 있다.

- 김기식 금감원장이 국회의원 시절 문제를 삼았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와 연결짓는 것 같다.

= 이 문제들은 보수정권인 박근혜 정부 당시부터 해온 얘기들이다. 김기식 금감원장이 의원시절 문제를 제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20대 국회의원에 낙선되고도 국회에서 줄곧 문제가 이어졌다. 국회에서도 정당을 초월해 문제를 삼았었다. 학교에서도 다른 교수들은 20억원이란 액수에 놀라고, 그 돈이면 참 많은 일을 할 수 있을텐데 하곤 했다. 어떻게 보면 키에프가 더 일찍부터 신경을 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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