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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재판이 이재용 재판과 달랐던 두 가지

말, 수첩

박근혜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징역 24년이라는 중형을 피하지 못한 이유는 자신의 혐의 중 형이 가장 무거운 약 232억원의 뇌물 수수 혐의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18가지 혐의 중 16가지를 유죄로 판단하며 헌법재판소에 이어 형사재판에서도 대부분의 ‘국정농단’ 행위를 단죄했다. 다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며 삼성 관련 제3자 뇌물 혐의에 무죄를 선고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6일 삼성의 정유라씨 승마지원 72억9427만원을 박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2014년 9월15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이 부회장을 면담하면서 ‘올림픽에 대비하여 승마선수들에게 좋은 말도 사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이 부회장은 가볍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국내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그룹에서 피고인의 요구에 따라 특정인에게 이례적인 규모의 예산을 지원하였고, 그 지원에 따른 이익의 귀속주체가 국정운영에 관여한 최씨였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대통령으로서 직무집행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한겨레

특히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와 달리 정씨가 탔던 말 3마리 관련 비용인 36억5943만원도 뇌물로 봤다. 재판부는 “삼성이 위탁관리계약서 작성을 요구하자 최순실씨는 ‘이재용이 말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느냐’며 화를 냈고,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도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에게 ‘그까짓 말 몇 마리 사주면 된다’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겠다’고 말했다”고 지적하며 “살시도 및 향후 구입할 말을 최씨 소유로 볼 수 있다는 의사 합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앞서 이 부회장의 2심 재판부는 말 3마리 소유권이 삼성에 있다며 이와 관련된 36억5943만원을 뇌물로 인정하지 않아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 처벌되는 횡령액 50억원을 넘기지 않으려 말값을 뇌물에서 제외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또 이 부회장 2심과 달리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도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다만 박 전 대통령 재판부도 이 부회장 2심과 마찬가지로 승계작업 등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며 220억2800만원의 제3자 뇌물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케이(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 납부하도록 하고,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에게 비덱스포츠 등에 89억원을 지원하도록 요구한 혐의도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인정돼 유죄로 판단됐다. 재판부는 “2016년 3월14일 단독면담에서 피고인과 신 회장 사이에는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재취득에 대한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신 회장은 지난 2월 같은 재판부에서 뇌물 공여죄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에스케이에 대해서는 “최 회장은 2016년 2월16일 단독면담에서 동생 최재원 에스케이 부회장의 가석방, 헬로비전 합병 등에 대해 얘기했고 피고인은 가이드러너 사업 등의 협조를 구했다”며 “피고인은 에스케이 현안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 대가관계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재판부는 짚었다.

국정농단 의혹에 불을 지핀 미르·케이스포츠재단 774억 출연 강요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통한 공무상 비밀 누설도 모두 유죄로 결론 났다.

 

ⓒJUNG YEON-JE via Getty Images

이 중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출연 강요, 공무상 비밀 누설, 현대차와 케이티(KT) 광고계약 강요,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장애인펜싱팀 창단 강요 등 유죄가 선고된 7가지 혐의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와 겹친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서 “피고인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 전체의 자유와 행복, 복리 증진을 위해 행사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럼에도 최씨와 공모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여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밝혔다. 이런 재판부의 비판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하여 사익 추구를 도와주고 이러한 사실을 은폐한 것은 대통령으로서의 공익실현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다”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사유와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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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이재용 #국정농단 #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