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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가자에서 희망을 학살하려 한다

팔레스타인인 17명이 실탄을 맞고 사망했다.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2010년 5월말에 가자 지구 봉쇄를 뚫고 인도주의적 보급품을 고립된 이들에게 가져다 주려던 작은 민간 선박 여섯 척을 이스라엘 해군 특공대가 덮쳤다. 터키인 여덟 명과 미국인 한 명이 학살당했다. 전부 민간인이었다. 외교 위기와 이스라엘 PR 재앙이 일었다. 이스라엘은 민간인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닌, 왜 그랬는지를 더 잘 설명했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스라엘 정부의 수사 보고서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래서 예정되었던 대로 이번 주에 가자에서 시위자들이 모이기도 전에 나는 이스라엘이 다가올 학살에 대한 준비 작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행진이 하마스가 폭력적 도발을 위해 조직한 행사라고 묘사한 것이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며칠 전부터 이 행사가 폭력적이고 위험하며, 테러를 위장하기 위한 것이고 민간인들을 이용해 먹으려는 것이라고 미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와 이스라엘 사이의 울타리에 저격수 100명을 보냈다. 학살의 무대 세팅이 완료되었고, 이스라엘 측은 이번에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미리 정당화를 충분히 시켜두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3월 30일 금요일에 해가 질 때까지 가자에서는 팔레스타인인 17명이 실탄을 맞고 사망했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무장하지 않은 시위자들이 총알을 피하다 결국 총살 당하는 영상들이 나왔다.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가 소집될 예정이며 국제적 규탄이 이어질 것이다.

이스라엘은 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또 한 번 치명적인 폭력을 가했다.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번 사건에서 부상당한 이스라엘 군인은 없었다. 사실 이 군인들이 부상을 당할 경우란 상상하기도 힘들다. 이들은 중무장하고 모래 언덕 위, 장갑차 안, 울타리 뒤에 자리잡고 먼 곳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발포했다. 팔레스타인인이 돌을 던졌다 해도, 그런 조건에서는 그것이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가능성(국제법 상에서 살상 무기 사용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상황)은 극히 미미하다. 울타리를 기어올랐다 해도 이스라엘이 살상 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NurPhoto via Getty Images

이스라엘은 왜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인들과 이런 상황에 처하는 것인가?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PR 관련 재앙을 만들어내지 않고서 안보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주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스라엘이 수백만의 팔레스타인인들의 기본적 인권을 계속해서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가자에서 열린 이번 행진은 이스라엘의 회유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인권을 존중하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사회는 시위대에 살상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파르트헤이트 사회에서 생기는 일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국제 사회에서 진보주의와 민주주의의 상징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런 이미지가 사기라는 걸 대규모 비폭력 시위나 시민 불복종 만큼 명백히 드러내는 일도 드물 것이다.

3월 30일에 잔혹 행위가 벌어졌고 규탄이 뒤따랐지만, 가장 중요하고 감화를 주는 것은 시위 그 자체였다. 팔레스타인인 수만 명이 포위된 가자 지대 울타리 옆 여러 지역에서 질서정연하게 시위를 펼쳤다. 남녀노소가 참가했고, 노래를 부르고 요리를 했다. 배구도 했다. 이 모든 것이 통일된 팔레스타인의 이름으로 일어난 일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라는 딱지를 붙이려 했지만, 현장에 당파의 깃발은 없었다. 오직 팔레스타인 깃발만 있었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있어 이것은 큰 희망을 갖고 우리를 하나로 모이게 해주는 비젼이었다.

이런 행사는 이스라엘의 악몽이다. 폭력적이어서가 아니다. 바로 폭력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폭력에 잘 대처하지만, 비폭력적 반대를 대할 때마다 어쩔 줄 몰라한다. 기본적 인권을 부정하는 이스라엘의 정책들을 조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부는 이 시위가 열리기도 전에 폭력적 행사라는 프레임을 씌우려 했다. 잔혹하게 단속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런 행사를 다시 조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MOHAMMED ABED via Getty Images

이 시위는 1976년 갈릴리 토지 압수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이스라엘군에게 살해당한 팔레스타인 시민들을 기리는 땅의 날에 벌어졌다. 가자의 팔레스타인들에 대한 인권 주장을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방식으로 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스라엘이란 국가가 생겼을 때부터, 이스라엘은 가자와 서안 지구 정책 정당화를 위해 외부, 특히 서방의 지원에 의존했다. 이스라엘과 서방의 관계는 여러 가지에 영향을 받는다. 서방이 중요하게 여긴다고 주장하는 자유, 민주주의, 시민권, 평등 등의 가치도 영향을 준다. 두 개의 국가라는 원칙 하의 협상 가능성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러한 허상 같은 가치들과 현장의 현실 사이의 대치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개의 국가로 합의했다는 생각이 역사속으로 사라지며, 아파르트헤이트 현실을 무시하기가 불가능해지고, 이스라엘이 권리를 주장하는 팔레스타인 군중을 상대해야 하는 일들이 더욱 생기며, 이러한 모순은 계속 두드러질 것이다.

국제 사회는 팔레스타인의 비폭력적 반대와 시민 불복종을 지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폭력적 탄압을 규탄하고 법률 위반의 책임을 묻고 있다. 가자 시위자들의 학살은 58년 전 남아공에서 일어났던 샤프빌 학살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도 국제 사회는 규탄하며 무기 엠바고 등의 조치를 취했고 결국 그로 인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끝나게 되었다. 가자의 이번 사건과 앞으로 일어날 것이 분명한 일들에 대해 국제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들을 분리하고 불평등하게 대하는 행위를 얼마나 계속 할 수 있을지가 결정될 것이다.

*이 글은 허프포스트US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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