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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섹계’ 운영자에서 ‘아동·청소년 성매수 근절’ 활동가가 됐다”

그들은 폭력에 노출되어있다

ⓒalexskopje via Getty Images

아버지는 딸 김혜원(22·가명)씨를 자주 때렸다. 초등학교때 ‘우유를 먹지 않는다’며 우유팩을 얼굴에 집어 던졌고, 밥을 깨끗하게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머리채를 잡고 방을 질질 끌고다니기도 했다.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한 것도 수차례. 아버지의 학대를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이혼을 한 뒤 새로 가정을 꾸렸고, 김씨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 당한 폭력의 경험은 학교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씨는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 탓에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

2011년, 고등학생이었던 김씨가 찾은 ‘탈출구’는 성인 온라인 커뮤니티였다. 다른 여성이 찍은 나체 사진에 수많은 ‘호의적’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고 김씨도 비슷한 사진을 찍어 올렸더니, ‘몸매 예쁘다’, ‘여신이다’ 같은 댓글이 주루룩 달렸다. 평소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칭찬이었다. 김씨는 “그런 댓글들을 보면서 잘못된 정서적 안정을 찾았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수위는 조금씩 높아졌다. 대학생이 된 뒤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직접 남성들을 만나기도 했다.

“하루는 조건만남을 하기로 한 남성을 만났는데, 전자발찌를 차고 있더라고요.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가 ‘강간상해’로 유죄를 선고받았다고 했어요. 조건만남으로 만난 여성과 성관계를 하면서 기구를 이용해 상해를 입혔고, 그래서 여자가 수술까지 해야했대요. 더 어이가 없었던 건 그 남자가 성형외과 의사였다는 거에요. 그런 사람들이 의사랍시고 진료를 할 걸 생각하면… 실제로 계정을 운영하다보면 ‘겉으로만 멀쩡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요. 대기업 임원부터 시작해서 의사, 선생님…

트위터로 ‘섹계’를 운영한건 딱 한 달이었는데, 온갖 폭력을 많이 당했어요. 피가 날때까지 관계를 요구하거나,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일들이요. 디엠(메시지)을 통해 성희롱하거나 신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은 비일비재했고요.”

미성년자를 ‘로리’라고 찬양하며 조건만남을 하는 남성들, 강압적인 성관계를 요구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들을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김씨는 현재 ‘아동·청소년 성매수 근절을 위해 활동하는 모임 ‘시스템’(SYSTEM)에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4일 낮 서울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김씨는 인터뷰 내내 “미성년자 성매매를 줄이기 위해서는 플랫폼 사업자와 이를 감시하는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의 소라넷’된 트위터·텀블러

‘시스템’(SYSTEM)은 ‘Stop Youth Sex Trafficking on Every Media’의 약칭으로, ‘모든 매체에서의 미성년자 성착취 근절’을 뜻한다. 트위터·텀블러 등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이뤄지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를 뿌리뽑기 위해 지난 1월 7명의 활동가가 모여 만든 단체다. 주로 아동 성매매 모니터링·신고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시스템은 오는 27일 서울 강남구 트위터코리아 본사 앞에서 ‘아동 성매수 방조 공론화’를 위한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이들이 에스엔에스에 주목하는 이유는 트위터·텀블러 등 사회관계망서비스가 아동·청소년 성매매의 온상이 됐기 때문이다. 트위터·텀블러에는 자신의 나체 사진을 올리는 계정부터, 스타킹·속옷을 판매하는 계정, 성매매를 뜻하는 ‘조건만남’을 하는 계정까지 속칭 ‘섹계’(섹스계정)가 만연하다. 김씨는 지난 2016년 국내 최대 음란물 사이트였던 소라넷이 폐지된 뒤 상당수의 이용자들이 트위터·텀블러의 ‘섹계’로 옮겨왔다고 강조했다.

“일반인 몰래카메라부터 시작해서 미성년자 성매매까지, 소라넷에서 이뤄졌던 모든 성폭력이 트위터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면 돼요. 실제로 트위터 섹계 계정을 운영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내가 소라넷 초대남(소라넷에서 인사불성 상태의 여자를 성폭행하기 위해 회원들을 초대하는 범죄 행위) 출신이다’라며 자랑하는 남성도 있었고, ‘소라넷이 없어져서 여기(트위터)로 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트위터가 ‘제2의 소라넷’이 되고 있는 거죠.”

문제는 트위터 상에서 운영되는 ‘섹계’의 상당수가 미성년자라는 점이다. 트위터에 ‘#미성년자’, ‘#10대’ 등의 해시태그를 검색해보면 미성년자와의 ‘조건만남’을 요구하는 계정이 수두룩하게 나타난다. ‘섹계’ 중에서도 소위 ‘잘나간다는’ 미성년자 계정은 팔로워수가 10만명이 넘기도 한다.

김씨는 “시스템’으로 제보를 보내는 피해자의 경우 가정폭력 피해자이거나,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나,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등 정서적인 불안정을 느껴 섹계를 시작한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했다. 김씨는 이어 “섹계를 운영하는 이유로 단순히 ‘돈이 필요해서’라고 답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돈 문제도 결국 이혼 등 가정 문제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17살에 가출을 위해서 돈을 모으려고 ‘섹계’를 운영하며 조건만남을 시작했습니다.”

“섹계를 운영할 당시 저는 학업 스트레스로 생활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였고, 자살 욕구를 느낄 만큼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섹계는 일종의 탈출구였습니다. 외모와 성적으로 깎인 자존감을 비정상적으로 회복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조건만남을 했어요. 공연을 보고싶기도 하고, 무언갈 사고싶기도 하지만 집에 손을 벌리긴 싫고. 그냥 ‘한번 해보자’하는 호기심에 시작했습니다.”

-‘시스템’이 받은 제보 내용 발췌

 

ⓒCineberg via Getty Images

 

김씨는 “경계심 없이 시작한 섹계 운영으로 인해 미성년자들이 성폭행, 성희롱, 협박등의 2차 가해에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성년자 성매수를 시도하려는 남성들은 미성년자들을 ‘로리’라고 불러요. 어리면 어릴수록 더 좋다고 ‘찬양’하는거죠. 일부러 미성년자 계정만 찾는 사람들도 많아요. 기프티콘도 보내주고, 문화상품권도 보내주고 그러면서 속칭 ‘관리’를 해요. 근데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런 행동은 대부분 ‘성적인 보상’를 받는다는 전제 하에 이뤄지거든요. 자신의 마음에 드는 나체 사진을 올리지 않거나, 요구대로 만나주지 않는다거나 하면 바로 욕을 하고 신상을 유포시키겠다고 협박하는거죠.”

실제로 ‘시스템’이 지난 2개월간 받은 20여건의 제보 내용을 보면,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미성년자들이 부문별한 신상털기와 2차 가해에 노출돼 있었다.

“성관계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만났는데 준강간을 당했다.”

“만나자는 요구에 답하지 않으면 바로 ‘강간하고 싶다, 죽이고 싶다’ 등의 협박이 왔다.”

“미성년자라 조건만남은 하지 않는다고 공지를 올렸음에도 신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며 성관계를 요구했다.”

“만나자거나 속옷을 팔아달라는 요구를 했고, 그렇지 않겠다고 답하면 ‘너도 좋아서 이런거(섹계) 하는거 아니냐’는 메시지를 받았다.”

“콘돔을 빼고 성관계를 맺은건 예사였다. 심한 경우 약물을 먹이고 성폭행을 하기도 했다.”

-‘시스템’이 받은 제보 내용 발췌

 

‘시스템’이 받은 제보 내용들.
‘시스템’이 받은 제보 내용들.

이들은 왜 ‘피해자’인가

김씨는 “‘섹계’를 운영하면서 성폭력에 노출되는 미성년자들의 경우 ‘삼중고’를 겪는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여성인 탓에 성폭력이나 2차 가해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고, 미성년자라서 더더욱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기 어려운 탓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네가 헤프게 처신했으니, 그런 일을 당해도 싸다’고 보는 시선이다. 성폭력 피해자는 ‘완전무결한’ 피해자여야 한다는 프레임은 피해자들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어떠한 이유가 있더라도 강간과 같은 성폭력을 합리화할 수는 없어요. 자발적으로 나체 사진을 올렸다고 해서, 돈을 받는 조건으로 조건만남을 했다고 해서, 그게 그 사람에게 성폭력을 저질러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잖아요.

‘시스템’에서 받은 제보 내용을 보면, 피해자들은 자신이 당한 피해 사실을 말하면서도 ‘저도 정말 잘못했지만’, ‘절대로 제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등의 자책감을 함께 얘기해요. 피해자 스스로도 ‘이런 계정을 운영한 내 잘못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더더욱 피해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려워지는거죠.”

김씨 역시 ‘시스템’ 활동 초반 함께 모인 사람들에게 “섹계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했다’, ‘이런 활동을 할 자격이 없다’와 같은 자책감이 함께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니터링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실제로 ‘섹계’를 운영하고, 그로 인한 피해를 입고 나서야 내 상태에 대한 해석이 가능해졌어요. ‘내가 과거에 겪은 가정폭력에 대한 기억을 이런 식으로 해소하려고 했구나, 그리고 객관적으로는 이런 피해를 입었구나’라는 생각들이요.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미성년자 성매수가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계속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만이라도 확실히 내 경험을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당사자로서 직접 겪어본 일들이 활동하는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고요. 모임에 있는 사람들은 처음 제 얘기를 듣고 놀랐지만, 다들 ‘이해한다’는 말을 해줬어요.”

 

ⓒnantonov via Getty Images

 ‘인내심없는’ 사람들이 사회를 바꾼다

‘시스템’은 결성된 지 두달여밖에 안 된 신생 모임이다. 아직까진 활동가들의 자발성에 의지해 운영하고 있고, 회의도 주로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탓에 김씨는 “‘단체’라기보다는 비슷한 관심사로 모인 ‘소모임’ 정도로 봐줬으면 한다”고 웃어보였다. 하지만 활동 내용만큼은 알차다. 트위터에 제보 계정을 열어 성폭력 피해를 상시적으로 제보받고, 트위터·텀블러 등에서 이뤄지는 미성년자 성매매를 감시해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활동도 한다. 오는 27일에는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트위터코리아 본사 앞에서 시위를 열 계획이다. 김씨는 시위를 기획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독일은 올해부터 ‘헤이트스피치’(혐오표현)법을 시행하고 있어요. 에스엔에스에 혐오표현이 들어간 게시물을 올리는 사람도 처벌을 받지만, 이를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플랫폼 사업자들에게도 책임을 묻는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죠. 아동·청소년 성매수 문제도 같다고 생각해요.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이를 감시하고, 심각한 범죄의 경우 수사기관에 신고까지 하도록 하는 의무를 지워야 해요. 경찰을 비롯한 수사기관도 더 적극적으로 국제 공조를 할 수 있도록 나서야 하고요.”

김씨는 올초부터 이어진 ‘미투 운동’을 보며 ‘안도감’과 ‘걱정’이 함께 들었다고 했다. ‘순결하다고 보여지지 않을’ 섹계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혹시나 위축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컸던 탓이다. 김씨가 말했다. “물론 걱정도 많았지만, 피해자 스스로가 용기내 자신의 피해사실을 고백한 것 자체가 서로에게 큰 힘을 주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활동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데, 세상은 똑똑하거나 잘 아는 사람들이 바꾸는게 아니라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들이 바꾸는 것 같아요. ‘더 이상 이런 폭력은 견딜 수 없다’고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요. ‘시스템’의 활동도 그럴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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