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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에는 '사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이 없다

일본도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

일본 자민당 후생노동부회는 29일, 이번 국회의 중요법안인 ‘노동개혁 관련 법안’을 승인했다. 법안의 핵심은 야근시간 상한 규제와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꾀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다.

야근 시간의 상한규제 등이 중소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일부 의원은 ”경영환경이 어려운 중소기업은 규제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의견 수렴이 난항에 부딪혔지만, 중소기업 실태를 배려한 조언・지도 부칙을 법안에 추가하는 수정을 통해, 승인됐다.

일본 정부는 4월 초 국회 제출을 목표로 한다. 법안의 근거인 노동 시간 데이터에 문제가 있어, 당초 계획한 ‘2월 중 제출’보다는 큰 폭으로 늦어졌다. 심의 일정이 빡빡한 상황에, 법안의 향방은 전망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아베 정권의 노동 정책 핵심은 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 다시 말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있다. 다만, 다른 반노동 정책(전문직의 야근 시간 규제를 완화하는 등)과 맞교환 성격이 강한 탓에, 이런저런 어려움에 빠져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베 정권의 정책 일면만을 보고 ‘친노동적이니 어쩌니’ 판단하는 건 무리수다. 물론, 한국 보수정당이나 민주정당-특히 참여정부 시기-보다는 친노동적이라 하겠으나, 이건 자민당 역사에서 봤을 때 원래 그런 측면이 있다. 즉, 아베가 특이한 게 아니란 얘기다)

아베는 틈날 때마다 직접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책 실현 의지를 다지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유권자에게 임금상승(특히 기본급 상승-베이스 업-)과 함께 중요 정책으로 어필해왔다. 아래는 지난 3월 1일 참의원에게 한 아베의 발언이다.

노동개혁법안 안에는 재량 노동제(유연 근무제) 논의에 대해, 후생노동성 데이터에 의문이 있다는 지적이 있었고, 철저히 조사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가 된 점을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재량 노동제에 대해선, 이번 개정에서 전면삭제해, 실태에 대해 후생노동성에서 확실히 파악해, 논의를 다시 하도록 했습니다.

한편으로, 이번 노동 개혁은 벌칙이 가해지는 시간외 노동 상한 규제 도입,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실현, 고도전문직제도 창설 등 70년 만의 대개혁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저희들은 이번 3개의 기둥에 대해 법안 제출하는 것과 동시에, 재량 노동제에 관한 부분에 대해선 삭제할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일본 정치사에서 경제 정책은 대체로 큰 논점이 되지 않왔다. 60년대 초반 안보 정책에서 시민들의 큰 저항에 부딪힌 자민당은 안보 중심 노선을 포기하고 경제 발전노선으로 완전히 전환한다. 이 시기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도입됐고, 70년대 이후 사회당, 공산당이 약진하던 시기에는 자민당도 이에 질세라 비슷한 정책을 내놓는다.

그 배경에는 일본의 경이적인 고도 경제성장이 있었다. 70년대에는 GDP 기준 독일을 뛰어넘어 세계 2위가 된다. 이는 2010년 중국에 앞질러지기까지 무려 40년 가까이 이어진다.

경제적 여유가 자리 잡으며 당시 유행하던 말이 ‘1억 총중류(1億総中流)‘다. 70년대 1억 인구 일본인 대부분이 자신을 ‘중류계급‘이라 여기던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국민들이 균등하게 넉넉해지는 상황에서 자민당의 경제정책은 신뢰받아왔고, 그 가운데는 소위 ‘친노동정책’이라 할 만한 것도 적지 않았다.

일본의 노선이 전환된 건 2001년 고이즈미(小泉)가 신자유주의 기치를 내걸고 등장하면서부터다. 그러나 한국처럼 해고를 쉽게 하는 법안이 등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비정규직 채용이 기업의 선택지로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다음 비정규직 비율 도표를 보자.

왼쪽은 ‘비정규고용 비율 추이’를 나타내고 있다. 1990년 20%에서 최근엔 40%에 육박하고 있다. 실제 2000년대 들어 갑작스레 비정규직 고용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은 같은 통계가 대략 50%에 육박하는 듯하다).

ⓒ일본 총무성 통계국

다만, 여기에는 극심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별 차이가 존재한다.

비정규직의 70~80%가 여성이고, 정규직의 70~80%가 남성이다. 남성은 고용이 보장된 기업에서 일하는 반면, 여성들은 남성들을 서포트(단기 일자리 등)하는 모습이 뿌리 깊게 남아있는 것이다. 한국보다 심하면 심하다고 할 수 있는 성차별적 문화가 노동시장에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의 비정규직 고용 상황은 한국과 차이도 적지 않다. 즉, 일반 기업이나 공장 근무에서 비정규직이 확산돼 차별이 발생했다고 하기보다는(현대차 공장의 하청, 재하청이 문제가 되듯), 과거 전업주부가 될만한 층이 비정규 노동 시장에 적극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고 보는 게 사실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아래 왼쪽 그래프는 남녀 정규 고용자 수를 나타내고 있다. 오른쪽은 비정규고용이다. 녹색이 여성, 파란색이 남성인데, 한눈에도 차이를 알 수 있다.

아래 자료의 위쪽 파란색 그래프는 맞벌이 가정 비율, 아래쪽은 남성만 일하는 비율이다. 확연하게 가정이 있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일본 노동 시장의 문제는 단순히 고용 형태에만 있다기보다는, 성별 문제가 개입돼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상황이지만, 성별 문제보다는 근원적으로 비정규직이라는 노동 형태 자체가 정착해버렸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본 후생노동성

일본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구호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이제는 필요하다는 데 인식이 모아지는 건, 일본 사회가 친노동적 흐름을 이어왔다는데 있다. 고이즈미 정권 당시의 퇴행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방향 전환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민당이고 야당이고, 일본 정부의 노동정책을 대놓고 ‘사회주의’라고 비난하는 풍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자민당 내에서도 안보 문제 외에 경제 문제를 둘러싸고 색깔을 칠하는 일은 과거에도 크게 눈에 띄는 일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실용주의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무조건적 성장만 외치지 않는 경제정책과 친노동정책이 자민당의 장기집권의 한 기반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모 보수 야당 인사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그야말로 한숨을 짓게 한다.

자유한국당 ‘사회주의 개헌저지 투쟁본부’ 위원장에 임명된 김무성 의원은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제출한 개헌안에 포함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적 노동가치론”이라고 밝혔다.

해당 정당이 얼마나 반노동적이고, 심지어는 경제정책에 있어서도 실패를 해왔는지는 지난 시간의 결과들이 말해주고 있다. 고민 없이 색깔론을 제기하는 것만으로 정책 비판인양 포장하는 건 그만둘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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