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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 61채 소유자 ‘갭투자 사건’으로 본 ‘부동산 폭탄 돌리기’

부동산 전문가들은 갭투자 피해를 막을 방법이 솔직히 없다고 말했다.

ⓒjtbc

ㄱ씨가 “갭투자이신가요?”라고 묻자 수화기를 타고 정적이 흘렀다. ㄱ씨의 집주인은 몇 초가 흐른 뒤에야 작은 목소리로 “예”라고 말했다. ㄱ씨는 “계약이 만료 되어도 전세금을 빼주실 수는 없겠네요?”라고 굳이 묻지도 않았다. 주인이 먼저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 돈을 줄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많은 단서가 있었다. ㄱ씨가 사는 서울 서대문구의 작은 빌라가 주택재건축 지구로 묶이자 얼마 안 있어 집주인이 바뀌었다. 전세 승계를 조건으로 전 주인이 집을 넘길 때, 새 주인은 아예 집도 보지 않고 샀다. 새로 바뀐 집 주인은 계약 기간이 끝나자 전세금을 올렸다. 해당 지역은 투자를 하기엔 적합한 곳이었지만, 주거 환경이 좋은 곳은 아니었다. 전세는 ‘실거주의 가치’로 측정된다. 주거환경이 나아지지 않았으니 전세금이 오를 요소는 그다지 없었다. ㄱ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전세금을 올려줬다.

2년이 지나 “이번 계약 만료일에는 나가겠다”고 알리자 집주인은 전세금을 2000만원 더 올려 부동산에 내놨다. 서울의 전세가격은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2000만원 오른 가격에 세입자가 찾아올 리가 만무하다.

 

갭투자 집주인을 만난 세입자 

갭투자는 만연한 투자 수법이다. 예를 들면, 해당 주택이 3억원에 거래되고 있는 상황에서 2억 8000만원의 전세 세입자를 끼고 2000만원의 종잣돈만 투자해 주택을 매입한다.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전세가를 올려 일종의 중간 배당을 챙겨가며, 최종적으로 매매가 상승으로 인한 시세 차익을 노린다. 보통 첫 해에 종잣돈을 회수하고, 2년의 계약 기간을 두 번 정도 갱신하면 거래 비용을 뽑는다. 쉬지 않고 오르던 전세 가격과 잠시 하락하던 매매가가 거의 만나 전세가와 매매가의 ‘갭’이 좁아졌던 2013년께에 처음으로 등장한 수법이다.

당시 ‘갭투자’라는 단어를 소개한 <한국경제>의 기사를 보면, 2009년~2011년 부산의 아파트값이 급등할 때 재미를 본 세력들이 처음으로 갭투자를 시작했고, 이후 울산과 대구 등의 투기 세력들이 들러붙어 수도권을 공략했다고 한다. 갭투자를 정확하게 통계로 짚어낼 방법은 없지만, 실거주 목적이 아닌 외지인의 유입 물량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외지인이 매입한 서울 아파트는 7287채였지만 2014년엔 1만4657채로 늘었다. <매일경제>의 분석을 보면, 이 수치는 2017년에 2만818채로 늘었다. 이는 당해 전체 아파트 거래건수(10만7897건)의 20%에 가까운 수치다.

갭투자와 여타의 주택 임대 행태를 정확하게 가를 수는 없다. 각자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갭투자자는 현금 유동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ㄱ씨는 집주인이 갭투자자라는 걸 확인한 순간 다음 세입자를 찾기 전에는 이 집에서 나갈 수 없을 거라고 마음을 먹었다. 반환 소송을 들먹이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전세금을 내어주는 일반적인 집 주인들과는 달리 소액으로 부동산 차익을 노린 갭투자자들은 현금 유동성이 떨어진다.

갭투자 카페에 가보면 대학생들 여럿이 아르바이트로 종잣돈을 모아 갭투자를 시작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투자 목적으로 매입한 주택은 매매가의 80~90% 정도 가격으로 전세권 근저당이 잡혀 있어 은행에서도 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ㄱ씨는 만료 기간 3개월 전에 계약 연장 의사가 없음을 알렸다. 그러나 이후 시장에 전세 물량이 쏟아지는 통에 세입자를 찾을 길이 막막한 상태다.

 

ⓒ뉴스1

동탄의 폭탄 돌리기 

ㄱ씨와 비슷한 사례가 폭탄처럼 터진 곳이 있다. 갭투자자들이 즐겨 찾던 사냥터인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 쪽은 난리가 났다. 동탄의 한 아파트 단지에 전세로 거주하는 ㄴ씨는 지난 해 8월 아파트 인터폰을 통해 낯선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집이 경매에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ㄴ씨는 <한겨레>에 “이 사실을 먼저 알게 된 피해자 한 분이 경매에 올라온 같은 단지의 아파트들을 직접 돌아다니며 인터폰으로 알려주고 다녔다”고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2017년 8월 17일, 8월 31일, 9월 7일 세 건의 경매 사건이 약 한 달을 사이에 두고 수원지방법원에 접수됐다. 이 세 건의 경매 사건으로 각각 18채, 14채, 29채씩 모두 61채의 아파트가 경매에 나왔다. 개중에 ㄴ씨가 거주하는 아파트도 있었다. 61채 모두 동탄 제1신도시에 있었고 모두 ㅇ씨 한 사람의 소유였다. ㄴ씨는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가가 떨어져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것 같으니 세입자에게 손해를 떠넘겨 버린 악랄한 수법”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의 개요를 이해하려면 동탄 제1신도시의 부동산 시장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2017년 3월 ㄴ씨가 전세 계약을 맺을 당시만 해도 2억 3000만원이던 해당 아파트(25평형)의 전세가는 현재 1억 9000천만원까지 떨어졌다. 매매가의 낙폭도 비슷했다. 2017년 초에 2억 7000만원을 호가하던 매매가가 2억 3000만원 선까지 내려갔다. 동탄 제2신도시의 새 아파트 매매와 전세 물량이 풀리면서 공급이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제는 제 값에 팔아도 전세금을 내주면 남는 게 없는 상황. ㄴ씨가 다른 세입자와 전세를 바통 터치하고 나가게 되면, 임대인이 4000여 만원을 보태 내어줘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임대인 ㅇ씨가 동탄에만 60여 채의 갭투자 물건을 가지고 있던 게 문제였다. 떨어진 전세 가격을 보전해 주려면 각 호당 3000만~4000만원을 내어줘야 했다. ㅇ씨는 전세금을 내어주기 보다는 아파트를 팔고 털어버리는 길을 택했다.

이 아파트의 또 다른 세입자 ㄷ씨도 같은 단지에 경매로 올라오는 아파트가 속출한다는 소문을 들은 집주인의 이름과 등기를 확인해봤다. 문제의 ㅇ씨였다. 얼마 후 ㄷ씨는 ㅇ씨로부터 시세보다 1000만~2000만원 정도 높은 금액으로 “아파트를 사라”는 말을 들었다. 다른 임차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ㅇ씨는 세입자들에게 “아파트를 사라. 아니면 그냥 경매에 내놓겠다”며 강매 아닌 강매를 했다. 또 다른 그의 세입자는 “급매 시세로 내놓는 것도 아니고 최고가 층 시세로 사라고 하더라”라며 “마지막까지 챙길 건 다 챙기겠다는 심산이라 울분이 터진다”고 밝혔다.

 

솔직히 방법이 없다 

특히 이 아파트들에는 세입자들의 전세권 외에 후순위로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다. 후순위 근저당 설정권자들이 ㅇ씨에게 빌려준 돈을 받고자 이 아파트를 경매에 내놓게 되는데, 이는 ㅇ씨가 “아파트를 사라. 아니면 그냥 경매에 내놓겠다”고 전세권 세입자들을 압박하는 수단이 된다. ㅇ씨와 같은 임대인이 직접 아파트를 경매에 넘길 권한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세권 세입자들은 이 후순위 근저당 설정권자들이 ㅇ씨의 가족이나 친척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아직 ㅇ씨가 경매에 내놓지 않은 물건은 동탄에만 10여 건이 더 있다고 한다. 해당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중인 사람들이 카톡 창을 열고 맞대응을 하기 위한 방법을 마련 중이지만, 녹록치 않다. “경매에 올랐던 물건들 대부분이 1회에 유찰됐어요. 1회에 유찰되면 2회에는 30% 저감된 금액으로 재매각을 시도하는데, 이렇게 되면 저희 아파트 경매가는 전세가에도 미치지 못해요.” ㄷ씨의 말이다. 해당 지역 관할인 수원지방법원 경매계에 따르면, 경매에 나온 물건이 유찰되어 채권자들의 채권액에 미치지 못할 경우 법원은 사건을 기각한다. ㅇ씨의 채권단이 경매 청구한 61채의 아파트 대부분은 사건이 기각됐다. 이렇게 되면 결국 버티기의 양상으로 흐르고, 당장 전세금을 반환받을 수 없는 세입자들은 애가 닳는다.

ㄴ씨는 “2019년 3월에 동탄 제2신도시에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할 예정인데 잔금을 치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피해자들 중 동탄 제2신도시에 입주 예정인 사람들이 많다. 집 비워두고 이사 가는 사람도 있고, 그쪽 집을 월세 주고 여기에 사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집주인이 제시하는 가격에 아파트를 사서 도로 파는 방법이 있지만, 문제가 불거진 지역들의 부동산 경기 전망이 그리 좋지 않다.

전세금 반환 소송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계약 만료 뒤 6개월 정도가 걸려야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그나마도 임대인에게 처분할 재산이 있을 때의 얘기다. 임대인에게 처분할 재산이 없으면, 전세금 반환 소송으로 또 다시 살고 있는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지만, 앞서도 말했다시피 이 지역 아파트 매매가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경매는 다시 유찰될 가능성이 크다. 세입자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셈이다.

전세로 살다 처음 집을 장만하는 경우, 전세금 대부분은 들어갈 집의 잔금이다. 이사 시기를 맞추기도 힘들고, 부동산 거래에 들어가는 수수료와 시간만 점차 아까워질 뿐이다. 보통 이렇게 시간을 끌면, 세입자는 결국 지쳐 나가떨어진다. 해당 단지 근처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만약 동탄 제2 신도시에 분양을 받은 경우라면, 그쪽 집을 세 놓고 그 돈으로 잔금을 치르는 수 밖에 없다”며 “이사를 하려던 세입자들에게는 갑갑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갭투자자 ㅇ씨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입장을 들어보려 했으나, ㅇ씨는 전화에 응답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갭투자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해왔으나, 이는 대부분 갭투자가 부동산 과열 양상의 ‘방아쇠’로 작용한다는 우려였다. 갭투자로 인한 임차인의 취약함이 문제로 대두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박원갑 KB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한겨레>에 “(갭투자는) 세입자의 불행을 담보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행위”라며 “대학생들까지 갭투자를 한다는데, 시장이 위축되면 투자자는 물론 세입자까지 곤경에 빠지는 굉장히 위험한 투자”라고 경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갭투자를 막는 방향으로 부동산 정책의 가닥을 잡았다. 8·2부동산 종합대책과 이번 양도소득세 중과 조처 등은 갭투자의 활성화를 막고 실수요자 중심의 가격 안정을 꾀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갭투자자들이 열심히 돌리던 폭탄의 피해가 선의의 세입자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막아줄 정책은 뚜렷하게 나온 게 없다.

김규정 NH 투자증권 부동산 전문위원은 “사실은 방도가 없다”며 “정책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방향은 기본적인 임대차 현황을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이를 기준으로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을 위한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소송까지 가지 않도록 문제가 생겼을 때 직접적인 행정조처를 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은 또 “한국은 그런 방향으로 가기 위한 기초조차 아직 구축이 안 되어 있는데, 임차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스템의 힘이 생겨야한다”며 “임대사업자 등록 등이 이런 시스템 구축을 위한 첫 단계”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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