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는 무역 전쟁에 관해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이라는 관점에 맞춰 말씀을 드렸는데요. 이번에는 우리 세계가 현재 직면한 좀 더 거시적인 경제 상황과 이번 분쟁을 연결시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분쟁은 미국의 무역적자라는 명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가합니다. 요즘 이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변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크게 바꿔놓을 만큼 거대합니다. 현재 중국과 미국의 분쟁은 단순히 무역적자를 해소하는 분쟁이 아니라 양국 간의 글로벌 경제-지정학적 패권을 가르는 거대한 경쟁으로써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번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고 미래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거대한 싸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론만 아는 것보다는 세계 경제-정치의 거대한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공포를 심어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먼저 미국과 세계가 처한 경제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중국의 제조업 굴기로 미국과의 GDP 격차를 2배 이하로 줄였지만 중국의 GDP 성장이 점차 침체 되고 있는 상황이고 미국의 경제 성장도 꾸준하여 쉽사리 역전될 것 같진 않습니다. 군사력의 차이도 아직 큰 상황입니다. 또한 전 세계 금융거래가 60%가 미국에서 일어나며, 축적된 국부와 금융 소득. 또 달러 발권력이라는 무기를 기반으로 한 미국의 소비는 중국의 10배가 넘습니다. 또한 미국의 미디어와 글로벌 공룡 기업은 전 세계를 정신적-물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는 양국의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아직 격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부정 하시는 분은 없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미국 내 경제 양상을 이해하면 세계화 영향으로 모두 연결 된 전 세계의 경제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봅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에 참으로 거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1년 닷컴 버블 붕괴도 큰 문제를 야기했지만 미국과 세계 경제의 근본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2008년 당시 금융 산업 비중이 적은 한국은 비교적 잘 방어했다고 볼 수 있지만, 이후 제조업 침체로 인해 한국의 주요 산업이 쇠퇴하는 영향을 가져오게 됩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이해해야 현 경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단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에 2008년-2001년 각 위기 간 극복 방식의 비교를 위해 2001년 닷컴 버블 붕괴 양상 후를 보여 드리려 합니다.
2001년 닷컴 버블 붕괴(기술주 붕괴) 후 미국 증시는 폭락하였고 당시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이었던 그리스펀은 기준 금리를 인하해 더 많은 대출을 유도해 시중에 돈을 푸는 전통적인 경기 부양 정책을 실시 하였습니다 . 당시 당선된 지 얼마 안 된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경기 부양책을 역대 공화당 정부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시클리컬(Cyclical-경기민감업종, 정유, 화학, 철강, 조선업 등이 대표적이다)-제조업을 부흥시키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이는 기술주-첨단산업-성장주에 대한 투자와 부양보다는 전통적인 제조업(가치주)에 좀 더 집중했다는 의미입니다. 미국 내 IB(투자은행) 규제를 풀어 건설산업에 대한 금융의 규제를 완화하고(이는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비슷하지만 훨씬 강력했습니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격화 시켜 원유 가격을 부양하였으며(이라크, 이란, 아프가니스탄, 사우디, 이스라엘), 감세 정책을 통해 기업의 투자 활성화 정책을 실시 하였습니다.
부시 정부 아래 치러진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 제조, 운송 수요를 촉진하며 미국의 재정적자를 키우고 관련 산업을 부양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이 전쟁에 투입된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 때문에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가 지속되어 국채 발행이 늘어나자, (미국 국채=달러이기 때문에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달러, 통화량도 늘어난 것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연스레 달러는 주요통화 및 신흥국 대비 약세를 보였습니다.
원유와 주요 원자재는 모두 달러로 결제되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진다면 유가는 상대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원유 수요가 늘고,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공급(이라크 원유 수출 불가. 사우디 감산, 이란 원유 수출금지)이 줄어드는, 이른바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자 국제유가는 크게 상승했습니다. 그리고 국제유가 상승에 영향을 받는 실물 경제(정유화학, 조선, 제조) 또한 시너지 효과를 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제조-건설 산업은 크게 성장하게 되고 산업재, 소비재 공급을 담당하는 신흥국(중국-한국)도 덩달아 성장하게 됩니다. 부시 재임 당시에는 트럼프와 다르게 원자재-중간재-소비재를 싸게 매입하기 위해 신흥국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부시도 임기 초에는 철강 관세로 세계를 협박했으나 아직 대중국 무역수지적자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고 당시 중국은 현재만큼 미국의 큰 위협은 아니었습니다.
선진국 소비-제조가 늘었고 신흥국에 물자를 의존했다는 것은 세계 무역이 크게 늘었음을 의미합니다. 무역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이를 실어 나를 운송주가 혜택을 보게 됩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조선주 위주의 거대한 성장이 이루어졌고 당시 조선 해운 주는 가격이 세 배 이상을 오르며 당시 국내 증시를 주도했습니다.
당시 중국은 1년에 15%씩 성장하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전쟁특수와 건설특수로 운송 뿐 아니라 건설,철강,산업재 등이 전세계적으로 호황을 이루던 시기였습니다.
미국의 산업-건설 분야는 전 세계적인 주도주 였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경기 과열은 거품을 가져오고 거품은 붕괴를 가져오고 맙니다. 게다가 두 번의 전쟁은 세계경기를 너무 빠른 속도로 과열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죠. 결국 미국의 건설 섹터가 방아쇠가 됩니다.
경기 부양 결과, 가계 소득이 증가하고 건설 산업이 호황을 보여 주택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자 미국과 전세계의 주요 투자은행은 경쟁적으로 MBS(Mortgage Backed Securities-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해준 채권을 다시 증권화시킨 일종의 자산담보부 증권)를 발행합니다. 이 MBS를 은행, 자산운용사, 캐피탈사들은 공격적으로 매입하게 됩니다. 건설 산업에 대한 추세적 호황은 MBS에 대한 확신을 갖게 만들었고 저신용자들에 대한 주택 구매 장려라는 정부 정책과 맞아 떨어져, 저신용자들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한 서브프라임 MBS에도 투자자들이 몰리게 됩니다. (2006년 미국 전체대출에 20% 차지).
경기 과열을 우려한 미연방준비위원회(이하 연준)는 2005년을 기점으로 빠른 속도로 금리를 인상합니다. 그러나 연준의 예상과는 달리 장기 금리는 정체되고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는 빠르게 축소됩니다 (보통 장기 금리는 여신 기간의 장기화에 따른 리스크 때문에 단기 금리보다 더 높은 가산 금리가 반영된다.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가 축소되었다는 의미는 단기 금리와 장기 금리의 차이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로 앞서의 경우에서는 장기 금리의 변동 없이 단기 금리가 상승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가 축소되면 보통 경기 침체를 맞게 된다 -편집자 주). 그 결과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경기침체가 시작되자 주택수요는 2006년 말을 기점으로 서서히 사그라들게 되고, 주택 가격이 정체를 보이게 됩니다.
주택 가격이 정체되고 금리가 오르자 저소득자(서브프라임)를 대상으로 비정상적으로 행해진 주택담보대출의 상환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담보권 실행을 위한 경매 매물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는 곧 모기지 구조의 붕괴를 가져옵니다. 파생상품인 MBS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신규 대출도 힘들어져 주택에 대한 수요가 줄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MBS를 기반으로 형성된 미국 금융시장은 채권시장을 시작으로 붕괴하고 맙니다. MBS나 파생채권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였던 회사 중 리스크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수많은 대형 은행, 운용사, 캐피탈사는 줄줄이 파산하거나 파산 위기를 겪게 됩니다. 이는 긴밀하게 연결된 금융산업의 특징과 당시 파다했던 채권 투기의 실상을 보여줍니다. CDO(MBS를 다시 증권화시킨 파생상품)의 손실액만 420억 달러 수준이었으니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설립된 지 100년이 넘은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대표적이었으며, AIG도 파산 위기를 겪는 등 당시 금융위기가 미국에 가한 충격은 한국의 IMF와 버금가는 수준이었습니다. 비교적 가까웠던 80년 석유파동, 1991 블랙먼데이,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2001년 닷컴 버블 등과 비교해봐도 이렇게까지 미국의 근본을 흔들었던 위기는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처음입니다. 지수 하락과 경기 침체는 사이클상 항상 겪는 문제였으나 당시 위기로 미국의 3대 무기(금융,무력,문화) 중 한 축인 금융 섹터가 붕괴될 가능성을 겪은 것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금융 기업에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모기지 대출의 충격을 겪은 금융 기업들이 대출을 급격히 제한하고 나섰다는 점입니다. 앞서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 가계대출은 2008년까지 급격하게 증가했고 무분별한 대출로 인해 파산하는 가계도 크게 늘었습니다. 이런 연쇄적 상황에서 은행과 정부는 가계, 기업에 대한 대출을 줄이기 시작했고 위험군에 대한 대출 이자율은 높아졌습니다. 치솟은 실업률과 마이너스 경제성장률, 턱없이 낮아진 가계소득. 이런 상황에서의 맞게 된 신용 경색은 최악이었습니다. 이자 비용은 늘어나고 당장 급한 채무를 막기 위한 여유는 없고 추가 대출도 불가합니다. 재무 구조가 우량한 일부 가계와 기업을 제외하고 파산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채권 시장 시장뿐만 아니라 주식, 부동산 등 모든 자산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가계 순 자산은 대폭 감소하였습니다. 이 여파는 미국에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의 자산시장과 금융시장이 모두 큰 손실을 입혔습니다. 전 세계의 실물 경제가 크게 손실을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FAANG의 등장
이러한 상황에서 오바마가 부임합니다. 경제위기 직후인 2009년 초에 임기를 시작한 오바마 대통령은 직면한 금융위기를 금융 지원 정책으로 돌파하고 금융-IT-미디어 등의 성장주를 부양하는 정책을 펴게 됩니다. 그는 경제 위기를 해결하고 금융 기업들의 연쇄 대량 파산을 막기 위해 정부 재정을 직접 투입하게 됩니다. 미국은 자국의 GDP 대비 17.3%, 선진국 평균의 70%에 달하는 정부 예산을 금융기관 자본확충, 자본 매입, 채무보증에 직접 투입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의 구제 금융은 7,000억 달러(800조원) 수준이었으며 유동성 공급에도 9,000억 달러의 금액을 쏟아부었습니다. 재정 지출을 통한 유동성 공급은 정부 재정수지를 악화시켰고 결국 GDP 대비 -7.5%의 재정 적자를 기록합니다. 쉽게 말하면 망해가는 금융 기업들에게 돈을 쏟아부어 유동성을 공급해 당장의 파산 위기를 면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