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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제주 4.3' 추념사가 유족들을 눈물짓게 만든 5가지 장면

여러모로 기록될 만한 연설이었다.

  • 허완
  • 입력 2018.04.03 15:33
  • 수정 2018.04.03 16:14
제주 4·3 70주년 추념식이 열린 3일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서 유족의 손을 잡고 있다. 
제주 4·3 70주년 추념식이 열린 3일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서 유족의 손을 잡고 있다.  ⓒ뉴스1

″대통령이 제주에 오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말해주셨다. 무슨 죄 때문인지도 모르고 죽어간 부모 형제 생각에 눈물이 났다.”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김인근(80)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4.3사건 당시 아버지를 잃었고, 9남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날 추념사는 여러모로 기록될 만한 연설이었다. 취임 첫 해 광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했던 기념사처럼, 문 대통령은 이날 추념사에서 유족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남겨진 과제를 언급했다. 현대사의 비극과 고통을 화해와 치유로 연결지었다.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습니다.”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 참석해 분향을 하고 있다.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 참석해 분향을 하고 있다.  ⓒ뉴스1

 

70년 전 이곳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습니다.

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도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무고한 양민들”, ”죄 없는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영문도 모른 채 학살 당했다고 말했다. 민주화 이후 4.3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 유족들은 마땅히 하소연 할 곳도 없이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4.3사건 당시 진압에 나선 미군정과 군·경은 민간인과 ‘폭도’를 구별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수많은 민간인을 살해했다. 심문이나 재판은 없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서 그냥 총으로 쐈다.

1949년 2월4일, 중산간마을 중 하나인 용강리에서 외할머니와 동생 등을 잃은 송기전씨는 이렇게 증언한다.

그날 다급히 정보가 올라왔습니다. 그러자 빨리 뛰지 못하는 노약자들은 마을 안 ‘당카름’이나 ‘대련수’ 쪽으로 갔고, 젊은 사람들은 늘 하던대로 동쪽으로 뛰었습니다. 왜냐면 군인들이 서쪽(오등리 죽성마을)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날은 죽성마을 주둔군 뿐 아니라 아랫마을인 함덕리 주둔군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니 꼼짝없이 포위된 것이지요. 봉개리 칠오름만 벗어나면 살 수 있었을 텐데 잘 뛰지 못 하는 노약자들이 중간에서 붙잡혀 죽었습니다.

난 봉개리 동쪽까지 뛰어가 대나무 밭에 숨어 목숨을 구했지만, 그 날 외할머니와 숙부 그리고 어린 남동생이 죽었습니 다. 마을로 돌아와 보니 시신이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대련수의 작은 바위틈에 머리를 박고 숨진 노약자들이 많았고, 당카름에서는 나무 위에 올랐다가 총에 맞아 나뭇가지에 걸쳐진 시신들도 있었습니다. 난 한국전쟁 때 해병대 14기로 입대해 많은 전투를 벌였습니다. 내 총에 맞아 죽은 사람도 많았겠지요. 그러나 그때는 서로 총을 겨눠 교전하는 것이지, 4.3 때처럼 노약자들까지 무차별 학살하는 참혹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406-7쪽)

국방부는 당시 이날의 작전을 이렇게 기록했다. ”사살 360명, 포로 130명, 기타 식량·의류 등 다수 압수.” 그렇게 많은 사람을 사살하고 포로로 잡았는데 압수품 중 총기는 단 한 정도 없었다.  

‘효리네민박‘으로 잘 알려진, 당시 ‘애월면 소길리 원동마을’에서도 학살이 있었다. 이 마을은 1948년 11월13일 이후 지도상에서 아예 사라져버렸다. 

아버지와 두 동생을 잃은 고남보씨(당시 17세)는 이렇게 증언했다.

군인들이 후레쉬를 들고 다니며 주민들을 집합시켰으니까 아직 어두웠던 새벽 5시께였을 겁니다. 군인들은 주민들 손을 뒤로 돌려 결박시킨 후 마치 굴비 엮듯 사람과 사람 사이를 밧줄로 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을을 한바퀴 도니까 주민 모두가 묶이게 됐습니다. 이틀 전에도 경찰과 해변마을 대동청년단이 마을에 온 적이 있지만 아무 일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큰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은 “폭도가 있는 곳을 가리키라”고 했지만 누가 그걸 알 수가 있어야지요. 우리는 결박당한 채 폭도를 찾아 마을 주변을 이리저리 끌려 다녔습니다. 새벽부터 굶은 채 하루종일 그 짓을 하다 오후 5시경에야 다시 주막집 앞으로 돌아왔지요. 군인들도 처음엔 우릴 죽일 생각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선지 한때 결박을 풀어 주기도 했습니다. 또 “사람을 일렬로 세워놓고 쏘면 9명까지 죽는다”거나, “어른은 끽소리 없이 죽는데, 애들은 두세번 앙앙 울다 죽는다”는 등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더군요. 그러다 다시 결박당했는데 나는 손을 앞으로 하여 묶였습니다. 그때 군인 한 명이 어디론가 무전을 치더니 “너흰 10분내로 총살된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연대본부에서 지시가 내려온 모양입니다. 곧 애월리 쪽에서 군인 차가 올라왔지요. 난 급히 결박을 풀어 준비하고 있다가 그들이 서로 경례하는 사이에 숲으로 뛰었습니다. 잠시 후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군인들은 시신 위에 식량과 이불을 덮어놓고 불을 지른 후에야 가 버렸습니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389쪽)

미군 보고서는 이렇게 적었다. “11월 13일 경비대의 작전으로 폭도들이 행원리에서 115명, 좌표 937-1133 지역에서 37명, 오등리 부근에서 4명 사살되었다. 사살된 폭도들 중 1명은 경비대에서 탈출했던 자로 밝혀졌다.(방첩대 보고)”

4.3사건 당시 이런 학살은 마을 건너 마을마다 셀 수도 없이 자행됐다. 그 사례가 너무 많아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가족을 잃고도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제주 4·3 70주년 추념식이 열린 3일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서 생존자와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제주 4·3 70주년 추념식이 열린 3일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서 생존자와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뉴스1

 

한꺼번에 가족을 잃고도
‘폭도의 가족’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고통은 연좌제로 대물림되기도 했습니다. 
군인이 되고, 공무원이 되어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자식들의 열망을 
제주의 부모들은 스스로 꺾어야만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유족들의 고통을 언급했다. 정말 그랬다. 유족들은 7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빨갱이 자식’으로 몰려 끝없이 고통 받아야 했다. ”빨갱이라고 한없이 구박받으며 평생을 살았”다. 

유족들은 4.3사건 당시 군·경 토벌대에 의해 학살되거나 사법처리를 받았다는 이유로 법적 근거도 없이 연좌제 피해를 겪었다. 이 피해에는 뚜렷한 실체가 있다. 정부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1950년 8월에 “27,000명의 보도연맹원과 5만여명의 사건 관련자 가족들이 사찰당국에 의해 별도로 관리”됐다.

제주도 경찰·행정당국에는 당시 관련자 명부가 따로 비치되어 각종 신원조회에 근거자료로 활용되었다. 경찰이 관리하다가 파기되지 않고 외부로 유출되어 최근에 공개된 ‘형살자명부‘나 각 읍·면사무소에 남아 있는 ‘전과자명부’ 등이 그것이다. ‘형살자명부‘는 각 리별로 4.3 사건으로 총살 징역 압송된 사람들의 명단, ‘숙청’ 일시, 장소 등을 적고, 별도로 유가족 상황을 빠짐없이 기재한 명부이다. 이 명부는 그 작성 비치 목적이 4.3사건 관 련자의 유가족 관리를 위한, 즉 연좌제 적용 문서인 것이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497쪽)

유족 장갑순씨는 1960년 국회 조사단이 실시한 진상조사 당시 연좌제 피해를 최초로 밝혔다. “저는 학도병으로 갔다가 1951년 11월 24일에 명예제대로 나왔습니다. 교원자격증을 얻으려고 경찰서에 신원증명을 하러 갔더니 신원증명에 좌익사상의 자제라고 적혔습니다. 호적부에도 그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1981년이 되어서야 정부는 신원기록 폐지 지침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제주경찰청도 4.3사건 관련자 명부 같은 자료를 폐기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그 후로도 연좌제를 의심했다. ”김영삼 정부 때 아들이 ROTC를 하려는데 안 된다고 했다”거나 ”다른 사람은 비자가 나오는데 나 하나만 안 나왔다”는 증언들이 나왔다.    

뿐만 아니라 4.3사건 관련 재판을 받고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이들은 살아서 돌아오고도 ‘보안감찰’ 등의 명목으로 공안당국의 감시에 시달렸다. 여러 건의 증언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김춘배 사례

내가 2차 수감돼서 1963년 8월 20일에 석방이 됐다. 그때 석방이 돼서 경찰서에 가니까 당신은 어디를 가더라도 보고를 하고 다니라고 했다. 내가 언제까지 그래야 되나 했더니, 그때 ‘당신 같은 사람은 아마 시효가 없을 거다. 죽는 날까지’, 그랬던 기억이 난다. 그 중간에도 그렇고 그 후에는 약 사흘에 한 번 나흘에 한 번씩 형사가 2명씩 찾아와서 어떻게 지내느냐, 어디를 갔다 왔느냐, 물어도 보고 그랬다.

○ 양규석 사례

내가 징역을 사니까 가까운 친족이 뭘 하나 하려고 해도 나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징역을 살아서 나왔으면, 그걸로 그만 해야 하는데, 내가 노태우 시절까지도 서귀포경찰서에 한 달에 한 번씩은 간 사람이다. 집에 있으면, 서귀포경찰서에서 물어볼 말이 있다고 하면서 와 달라고 편지가 와. 그럼 뭐 과거에 했던 것 했느냐 말았느냐 하는 이런 수작하고 별로 물어볼 게 없는 거라. 그래서, 내가 화가 나서, 과거에 억울하게 가서 그렇게 고생하고 왔으면 됐지, 왜 자꾸 이렇게 불러서 과거 했던 거 했느냐 말았느냐 이런 수작하느냐고, 또 억울하게 죄를 씌우려는 거냐고 따지면, 자기네한테 반항한다고 지랄하고.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501-502쪽)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

 

제주 4·3 70주년 추념일인 3일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제주 4·3 70주년 추념일인 3일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와 함께,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며 이렇게 말했다. 7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4.3의 진실”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방부는 교육부에 4.3사건 교과서 내용을 바꾸라고 요청했다. ”제주도에서 4월 3일 발생한 대규모 좌익세력의 반란 진압 과정에서 주동세력의 선동에 속은 양민들도 다수 희생된 사건”이라는 것. 희생자 중 군·경 토벌대에 의한 희생자가 80%가 넘는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빨간색’을 덧칠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2016년 국회에서 “4.3희생자 중 한 두명이라도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법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한 인물이 있다면, 심의를 통해 희생자에서 제외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답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4.3사건 추가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보수단체들은 2000년대 이후 4.3특별법과 피해자 인정 등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과 행정소송을 냈다. 4.3진상조사위원회 폐지, 4.3진상조사보고서 수정, 희생자 재심사 등도 줄기차게 요구했다. 2014년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희생자 재심의 등의 내용을 담은 4.3특별법 개정안 발의 방침을 밝혔다가 철회하는 일도 있었다.

여야 합의로 2000년 제정된 4.3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정부 진상조사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는 진상조사보고서에서 4.3사건 당시 제주도에서 벌어진 일을 ‘집단학살’로 표현했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이다.

1949년 제네바 협정은 전시(戰時)에서도 민간인에 대해서 △고의적인 살인 △고문 등 비인간적 행위 △고의적인 괴롭힘이나 신체 상해 △군사적 목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대량 파괴와 약탈 등을 금하도록 규정했 다. 더 나아가 모든 재판상의 보장을 부여하는 재판에 의하지 않은 판결 및 형의 집행을 인정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1948년 제주섬에서는 이런 국제법이 요구하는, 문명사회의 기본원칙이 무시되었다. 특히 법을 지켜야 할 국가공권력이 법을 어기면서 민간인들을 살상하기도 했다. 토벌대가 재판절차 없이 비무장 민간인들을 살상한 점, 특히 어린이와 노인까지도 살해한 점은 중대한 인권유린이며 과오이다. 결론적으로 제주도는 냉전의 최대 희생지였다고 판단된다. 바로 이 점이 4 3사건의 진상규명을 50년 동안 억제해온 요인이 되기도 했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539쪽)

 

“4.3의 완전한 해결”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 참석 후 유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 참석 후 유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제주도청

 

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해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4.3의 완전한 해결”을 말했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유해발굴 사업, ”유족들과 생존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 ”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유족들이 그동안 요구해왔던 일들이다.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은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진상규명은 일부 이뤄졌을지 모른다”면서도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 인정을 받았지만 배·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제 70주년인데 80주년이 되면 지금의 유족 가운데 상당수가 추념식에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유족과 피해생존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4.3특별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 대표발의에 나선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국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박상기 법무부 장관 등에게 특별법 개정을 질의해 긍정적 답변을 얻어냈다

이 개정안에는 4.3진상조사위원회에 조사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 담겼다. 4.3사건 당시 자의적으로 이뤄진 군사재판을 무효화하도록 했고,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 규정을 마련했다. 트라우마센터 설치와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내용도 있다. 

″제주4.3사건의 진실을 부정·왜곡하여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에 대한 처벌 규정도 담겼다. 무고하게 희생된 제주도민을 ‘폭도‘나 ‘좌익 분자’로 매도하는 행위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부인하는 것와 같은 범죄로 다뤄야 한다는 취지다.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하고 있다.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들께 호소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엔 낡은 이념이 만들어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넘쳐납니다.

이제 우리는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도 4.3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4.3추념식장으로 향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4.3사건을 ”남로당 좌익 폭동에 희생된 제주 양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행사”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자유대한민국이 체제 위기에 와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 제주 4.3추념식에 참석합니다.

건국 과정에서 김달삼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 좌익 폭동에 희생된 제주 양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행사 입니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건국한 자유대한민국이 체제 위기에 와 있습니다. 

깨어 있는 국민이 하나가 되어 자유대한민국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반면 이날 문 대통령은 ”삶의 모든 곳에서 이념이 드리웠던 적대의 그늘을 걷어내고 인간의 존엄함을 꽃피울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역설했다.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어 문 대통령은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을, 또 ”항구적인 평화와 인권을 향한 4.3의 열망”을 말했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국민 여러분,

4.3의 진상규명은 지역을 넘어 
불행한 과거를 반성하고 인류의 보편가치를 되찾는 일입니다.

4.3의 명예회복은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으로 나가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제주는 깊은 상흔 속에서도
지난 70년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외쳐왔습니다.

이제 그 가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으로 이어지고,
인류 전체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입니다.

항구적인 평화와 인권을 향한 4.3의 열망은
결코 잠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통령인 제게 주어진
역사적인 책무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추념식이

4.3영령들과 희생자들에게 위안이 되고,
우리 국민들에겐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되길 기원합니다.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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