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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넷카페에 사는 사람들

그들은 난민이다

ⓒhuffpost

한국에도 이젠 많이 알려진 듯한 ‘넷카페 난민’. 일본 내 사회 격차와 신자유주의의 그늘을 상징하는 존재들이다.

간단히 말해 넷카페란 한국 PC방과 비슷한 공간이다. 다만, 공간이 개별적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최소한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 그런 만큼 가격대는 한국 PC방보다 비싸다(다만, 밤샘코스를 끊으면 평균적으로 2000엔대로 머물 수 있다). 만화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고, 요금에 따라선 음료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 여성 전용 넷카페도 있어서 안심하고 머무를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샤워가 딸려 있는 곳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컴퓨터나 만화를 위해 잠시 머무르는 사람만 있지는 않다는 얘기다. 회원 가입하려면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는 단순히 신원을 체크한다는 의미보다는 각종 사건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도 있다고 한다.

ⓒnetcafe-infojp

아래 유튜브 동영상은 넷카페 난민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과거 필자가 방문한 적 있는 넷카페 화장실에는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각종 관청, 시민단체 번호가 적혀 있었다. 넷카페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님을 보여준다. 일부 시민단체는 정기적으로 넷카페를 방문해 ‘구호 활동’을 한다고 하니, 난민이라 불려도 무색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도쿄도내 넷카페 난민이 하루 4000여명에 이른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통계만 봤을 때는 원해서 넷카페 난민이 됐다기보다, 구조적 요인으로 빈곤의 늪에 빠진 사람이 많은 듯하다.

재밌는 건(?) 이런 넷카페에도 서열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유명한 도심, 예를 들어 신주쿠, 이케부쿠로 등지의 넷카페는 단순히 ‘난민’들만 사용하지 않고, 막차 놓친 샐러리맨, 관광객 등도 이용하기 때문에 가격이 아주 싼 편은 아니다. 하지만 도쿄 카마타(鎌田) 지역에 가면 그야말로 밑바닥에 놓인 사람들을 구원해주는 가격대의 넷카페가 다수 있다.

카마타는 예전부터 공업지대인데다가, 공항이 가까워 그다지 선호되는 지역은 아니다. 그럼에도 상당히 번화한 곳이긴 한데 이곳에 저가형 넷카페가 포진해있다. ‘맘보(マンボー)’라는 곳은 30분 100엔이라는 가격을 내세우고 있다. 역 동쪽으로 가면 1시간 100엔짜리 넷 카페가 곳곳에 눈에 띈다고.

ⓒNurPhoto via Getty Images

과거 이 블로그에서도 소개한 적 있는 ‘도쿄 딥(tokyo deep)’에선 카마타의 풍경을 전하고 있다. 1시간 100엔짜리 넷카페에 드나드는 사람을 ‘손님‘이 아니라 ‘주민’으로 묘사하고 있다. 바로 앞 자판기 역시 음료수가 모두 100엔인 상황. 카마타는 하네다 공항에서 전차로 4~5분 거리니 관심있는 분은 방문해봐도 좋을 듯하다.

최근에 읽은 책 ‘도쿄 난민(東京難民, 2013년작)’은 누구라도 한순간에 넷 카페 난민이 될 수 있음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평범하게 대학을 다니던 주인공이 서서히 사회밑바닥으로 가라앉는 모습이 감탄이 나올 정도로 생생히 묘사돼있다. 한국어로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듯해서 스토리를 간단히 소개해본다.

토키에다 오사무(時枝修)는 도쿄 변두리 별볼일 없는 대학에 다니던, 자존심은 세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성격을 내세우지 못하는 유약한 인물이다. 가끔 알바도 하지만, 지방에 사는 자영업자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물론 학비도 부모님이 부담했다. 부자처럼 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한테 업신여김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부모님에게서 연락이 끊기고부터가 소설의 사실상 시작이다. 학비가 체납됐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잘리고, 집세를 못 낼 지경이 되자 빚을 지기 시작한다. 급전을 벌겠다는 속셈으로 알바를 찾아보는데 마땅한 건 눈에 띄지 않는다. 결국 부동산회사가 집에서 강제퇴거 조치를 취하고 오사무는 친구집에 얹혀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알바들이 그야말로 ‘하루짜리 삶’을 대변하는 것들이다. 게다가 굉장히 현실감있게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전단지나 티슈 나눠주기라든지, 제약회사에서 실시하는 생체실험도 등장한다. 이른바 밑바닥 알바에서도 오사무는 좀처럼 끈기를 발휘하지 못하고 한단계 한단계 뒤로 밀려나간다. 돈이 없어지니 오히려 자격지심이 생겨 친구와 싸워 아예 관계를 끊는 지경에 이른다. 여자친구에 대한 의심과 결별은 결정적이다.

결국 신세를 지게 되는 게 신주쿠에 있는 넷카페다. 재미있는 장면은 오사무가 넷카페나 술, 음식 가격을 하나하나 체크하는 부분이다. 2300엔이 필요한데, 현재 수중에 얼마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새기는 장면은, 나름 독자의 긴장을 자아낸다.

ⓒRyanKing999 via Getty Images

돈이 부족할 때 찾은 곳이 티슈 알바를 하며 ‘선배’에게 듣게 된 카마타 넷카페촌이다. 주위에 앉은 손님과 가게 안 냄새, 풍경, 소음에 대한 묘사는 이 소설의 압권이라 할만하다. 특히 회원이 되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장면은 오사무의 처량한 신세를 대변하는 듯하다.

어찌어찌 다시 신주쿠로 돌아온 오사무. 지역적 특성도 있다 보니, 매춘이 이뤄지는 게이바까지 발을 디디게 된다. 역시 결정적인 순간에 발을 빼고 이번엔 어떤 여자에게 호스트바로 이끌려가 바가지를 쓴다. 독자에겐 ‘참 한심하네’라는 한숨이 나오는 장면의 연속들이다.

바가지를 써도 낼 돈이 없었기에 오사무는 호스트 클럽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나름대로 적성을 찾고, 호스트로서 여자들 돈을 뜯는 요령도 익혀갔지만 여기서도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느껴, 호스트 동료와 ‘쓸데없는 의리’를 지키느라 도망가고 만다. 이번엔 합숙형 육체노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나름 적응하려는 순간 호스트 사장에게 발각돼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 부분은 소설의 백미이기 때문에 생략해둔다.

막다른 곳에 이른 오사무는 넷 카페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위에서 적었듯 마땅한 신분증이 없으면 회원조차 될 수 없기 때문이다(지갑은 훨씬 전에 잃어버렸다). 결국 홈리스가 되고, 카마타 근처의 강변에서 불량배들에게 얻어맞은 뒤 홈리스들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는다. 그 길로 그들의 동료가 된다.

ⓒTORU YAMANAKA via Getty Images

알바의 질은 한층 더 낮아진다. 전철 역에 버려진 잡지를 주워다가 파는 일이다. 그럼에도 나날이 ‘실력이 느는’ 자신에게 감탄하고 만족할 만큼 오사무의 자존감은 이미 바닥에 가까워져 있었다. 홈리스 사람들에게서 처음으로 따뜻한 인정을 느끼는 장면도 나온다.

‘이렇게까지 막장으로 흘러가는 전개에 끝은 어디일까‘, 소설을 읽다가 몇 차례 드는 의문이었다. 주인공도 끊임없이 되뇐다. ‘밑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또 밑이 있다’고.

물론, 소설은 비극이 아니라 나름대로 희망을 주는 장치를 마련해 마무리된다. 뻔한 전개이기도 한데, 소설이나 혹은 영화(소설이 영화화됐다)를 볼 분들을 위해 이부분은 적지 않겠다.

소설을 쓴 후쿠자와 테츠조(福澤徹三) 는 원래 공포소설 작가라 한다. 그래선지 세심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을 그려냈다. 소설을 쓸 시점의 나이는 이미 50이 넘어있었다. 자신이 강의를 하던 전문학교(전문대학과 비슷한 위치) 학생들의 안타까운 생활을 보고 문제의식을 느껴 취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 문학의 장점은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쓴다는 데 있는 듯 싶다. 자기가 소재가 있다고 생각하면 일단 쓰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편의점 점원이 느낀 바를 생생하게 적어내 ‘편의점 인간‘을 썼고, 코메디언이 마찬가지로 자신의 한심했던 시절을 소재로 ‘불꽃’을 출간했다. 두 작품 모두 권위 있는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고 수십, 수백만부가 팔렸다.

한국은 한동안 소위 ‘문단’이 장악한 상황에서 비슷한 배경의 소설가(예를 들어 문학만 공부했다든지 문창과를 졸업했다든지)가 많아서 작품의 다양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소설은 문학이나 문창과를 졸업했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현실에 기반한 소설이 더 가치있다고 믿는다.

도쿄 난민의 실상이 한국과 어느 정도 다른지 모르겠지만, 현대판 리얼리즘 문학이라는 점에서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읽혔으면 하는 작품이다. 번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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