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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조가 공개적으로 '반성'한 이유 (인터뷰)

"노조의 운동방향을 바꿔야 한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고용안정과 경쟁력 제고 등을 논의하기 위한 노사정 협의체 출범이 가시화되고 있다. 직간접적 고용인구만 180만명에 이르는 자동차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 노조를 이끄는 주인공의 입에서 공개적인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현대차 노동운동 30년 역사의 산증인인 하부영 지부장의 생생한 육성을 그대로 옮긴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30년 투쟁이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켰다고 국민의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제는 노조가 답을 내놓을 때가 됐다.”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은 지난 22일 현대차 울산공장의 지부장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하후상박 연대임금’ 제안과 관련해 “현대차 노조는 그동안 양극화 개선을 위한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노력이 부족했다”며 “노조의 운동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가 노동운동 방향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반성’의 뜻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하 지부장은 “국내공장의 경쟁력이 없으면 해외로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노조 차원에서 해외공장과 생산성 및 임금을 비교하기 위해 실사팀을 보내겠다”고도 밝혔다. 현대차 노조가 국내외 공장의 생산성 비교에 직접 나서는 것도 처음이다. 그는 또 회사의 적기생산과 품질향상 요청에 대해서도 협력할 뜻을 분명히 내비쳤다.

하 지부장은 “현대차는 최근 수년간 10조원이 넘는 거액을 들여 한전 부지를 인수하는 판단 실수를 하고 고객 트렌드를 못 맞췄으며, 신차 개발도 제때 못했고, 전기차 기술도 경쟁국보다 떨어진다”면서 경영진의 ‘무능’에 대해서도 매섭게 질타했다. 그는 “현대차도 차가 안 팔리고, 여유 인력이 남고, 특근이 줄고 임금이 깎이다 보니 위기감이 가시화하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4~5년을 못 넘기고 구조조정 얘기를 꺼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하 지부장은 자동차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의체 제안과 관련해 “노사협력 없이는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고용안정은 불가능하고, 정부도 할 일이 많다. 비록 늦었지만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가슴을 터놓고 지혜를 짜내서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하 지부장은 “정년이 3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지난해 지부장 선거에 나선 것은 대공장 노동운동의 변화와 혁신을 이루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는 말로, ‘정의로운 노동운동’을 위한 배수진의 각오를 밝혔다.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이 지난 22일 현대차 울산공장 내 지부장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긴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이 지난 22일 현대차 울산공장 내 지부장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긴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겨레

 ―금속노조가 최근 대기업 노동자 임금은 적게 올리고,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은 많이 올리는 ‘하후상박의 연대임금’을 제안하는데 앞장섰는데.

“현대차 임금은 5.3%,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임금은 7.4% 올리자는 것이다. 임금 인상률 차이인 2.1%포인트를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의 임금인상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하자고 올해 임단협 협상에서 특별요구할 계획이다. 그동안 현대차 임금이 100으로 타결되면, 중소기업은 80, 비정규직은 70으로 차례로 적용됐다. 결국 현대차를 앞세워 나머지 노동자들의 임금을 통제한 것이다. 현대차 노조가 열심히 선도투쟁을 해서 임금을 많이 올려야 중소기업도 임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논리는 맞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임금격차만 더 심화됐다. 노조 스스로 나머지 노동자들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지금까지 투쟁 방식은 옳았는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양극화 해소, 임금격차 완화를 위해서는 노조의 운동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동안 현대차 노조는 ‘연봉 1억 받는 노동귀족’이라는 지적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언론이 왜곡한다, 음해다, 자본과 부자의 논리에 불과하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하지만 국민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현대차는 임금투쟁을 통해 대한민국 10% 안에 드는 고임금을 받는 경제적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착취의 희생양이 됐다. 자본이 지급능력 있는 대공장과 나머지 부분을 분할통치했다. 현대차 노조가 노동시장을 정규직-비정규직, 대-중소기업 이중구조로 만드는 데 이용당했다. 또 자동차 생산물량 확보를 위해 장시간 노동을 원함으로써 노동자들을 과로사로 몰아넣었다. 심야근로를 없앤 2013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 해 과로사와 돌연사로 죽는 사람이 30여명에 달했다. 옆의 동료가 갑자기 죽었는데도 다른 노동자들은 (수당을 더 받는) 특근이 중단될까봐 걱정하는 일이 벌어졌다. 돈의 노예가 된 것이다.

현대차 30년 노동운동을 돌아보면, 1987년부터 97년까지 10년의 ‘전진’과, 이후 2018년까지 20년의 ‘후퇴’로 구분할 수 있다. 전반기 10년 동안 현대차 노동자 월급이 4배로 늘어나면서 노동자들도 ‘내 차’와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다. 과거 혁명사에서 볼 수 없었던 성과였다. 하지만 후반기 20년은 1998년 정리해고 사태로 시작돼 신자유주의에 밀리면서 노조가 무력화되는 과정이었다. 현대차 노동자에겐 인간다운 삶이 보장됐는지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다. 노동운동이 다 함께 잘 먹고 잘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현대차 노조가 지금까지의 노동운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성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나?

“줄곧 대공장 노동운동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지부장이 되면 욕을 먹어도 임금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방치해선 안 되겠다고, 반드시 노동운동의 방향을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편하게 정년퇴직하면 되지, 무엇 하러 나섰겠나.”

―노조원들이 반발할 수도 있을 텐데.

“왜 우리 임금을 적게 올리느냐고 그럴 수 있다. 우리가 뽑은 지부장이 왜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위원장처럼 행동하냐고 반발할 수도 있다. 조합원들을 설득할 거다. 이제는 우리가 많이 요구한다고 해서 많이 받을 수 있는 시기는 지나갔다. 현대차 경영실적이 하락하고 있는 지금이 오히려 좋은 기회다. 임금을 15만원 더 올리는 게 어렵다면, ‘하후상박 연대임금’ 요구를 통해 현대차 노조의 사회적 고립과 귀족노조 프레임을 극복해야 한다. 대공장 노동운동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데 앞장서지 않는다면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나.”

현대차 울산공장 제1공장 내부 모습. 주문량과 수출물량이 줄어들면서 울산공장 내 일부 공장에선 빈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이른바 ‘공피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 제1공장 내부 모습. 주문량과 수출물량이 줄어들면서 울산공장 내 일부 공장에선 빈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이른바 ‘공피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겨레

―‘하후상박 연대임금’만으로 양극화가 해결될 수 있을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고용보험을 2배 내고, 실업수당을 2배 더 받자는 운동을 대기업공장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할 생각이다. 한국지엠 사태가 보여주듯 앞으로 산업 구조조정 때문에 실업자가 넘쳐날 것이다. 임금만 가지고는 안 되고 사회보장 시스템도 바꿔야 한다. 재벌들이 다단계 하도급거래를 하면서 통행세(중간착취)를 받는 방식으로 배를 불리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로부터 받은 일감을 중소 물류회사에 넘겨주면서, 8~15%를 통행세로 챙긴다. 이것만 개선되면 노동자 임금을 20~30% 즉각 올릴 수 있는 재원이 확보된다. 또 현대차 1차 협력업체에 주는 시간당 임률이 현재 1만8천원인데, 최저임금이 올랐으니 2만원으로 인상해주자고 요구할 것이다. 또 현대모비스와 글로비스 소속으로 현대차에 파견된 2차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최저임금 수준인데, 현대차 근로자가 포기한 임금으로 마련한 재원을 이들을 위해서도 사용하자고 임단협에서 말할 것이다. 건설노조는 중간착취를 없애기 위해 국회에서 ‘임금 직불제’(발주처가 하청업체 임금을 직접 지급하는 제도) 도입을 논의 중이다.

제조업도 임금을 중간에서 착취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재료비와 최저임금이 올랐을 때 중소기업들이 힘을 합쳐 대기업에 단가인상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담합으로 처벌하지 않도록 공정거래법 19조를 개정해야 한다. 말로만 재벌개혁을 주장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요구를 해야 한다. 거대한 댐은 한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땅굴을 파서 쥐구멍이라도 내야 한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가 근본적으로 개선돼야 하지 않나.

“현대차는 계열사 이윤율은 7~8%, 비계열사는 2~3%로 차등 적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납품업체의 영업이익률이 높으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납품단가를 후려쳐왔다. 1990년에 노조 사무국장을 맡았을 때도 단협안에 적정 납품단가 보장을 넣었다. 하지만 말로만 하고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대안이 없었다. ‘하후상박 연대임금’, 통행세 금지 요구에는 그런 고민이 담겨 있다.”

―최근 한국지엠 사태와 관련해 현대차도 수년 내 똑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대차의 주문량과 수출물량이 줄면서 정상 가동이 안 되고 있다. 빈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이른바 ‘공피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울산 2·4·5공장과 전주 트럭공장은 이미 물량 감소로 인한 고용 우려가 나온다. 과거 좋은 시절에는 기본급이 적더라도 연장·특근으로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특근이 줄면서 급여가 감소하고 있다.

직원 평균 급여가 2014년 9700만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3년 연속 하락세다. 지난해에는 9200만원까지 떨어졌을 것이다. 조합원들은 임금협상을 통해서라도 더 많은 임금인상과 성과배분을 바라는데, 회사 경영실적이 악화되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지난해 임금협상 결과가 조합원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다 보니 찬반투표에서 부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실적이 악화되는 상황에서는 임금 하락이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기 전에는 이런 ‘부조화 현상’이 지속될 것이다. 한국지엠도 극단적 경영위기에 놓이자 노조가 임금 동결, 성과분배 포기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 전체 자동차산업의 위기도 예측보다 더 빨리 올 수 있다. 전기차 시대가 되면 현대차가 직접 생산하는 엔진, 변속기가 필요없게 된다.”

―회사에서는 국내공장의 생산성이 해외공장에 비해 낮다고 주장하다. 이게 개선되지 않으면 국내공장을 닫고 해외에서 생산할 수밖에 없다는 게 회사 쪽 얘기다.

“노조 차원에서 해외공장과 생산성 및 임금을 비교하기 위해 실사팀을 보내기로 했다. 언론에서는 생산성을 보여주는 HPV(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가 현대차 울산공장은 26.8시간으로, 도요타의 24.1시간, 지엠의 23.4시간, 현대차 앨라바마공장의 20시간에 비해 뒤진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제대로 검증된 적이 없다. 울산1공장의 경우 차 한 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은 아무리 많아도 20시간이 안 넘는다. HPV는 모듈화, 자동화, 투입 인원, 컨베이어 속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무조건 직접 비교하면 안 된다. 한국지엠 군산공장은 54라고 하는데, 가동률이 20%에 불과한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다.”

 

―실사 결과, 실제로 생산성이 뒤지는 결과가 나온다면?

“국내공장의 경쟁력이 없으면 해외로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결국 생산성과 임금이 관건인데, 나는 현대차가 시간당 임금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2015년 기준 시간당 임금은 독일 60달러, 지엠과 포드 50달러, 현대차 앨라바마공장 40달러, 현대차 울산공장은 30달러로 나온다. 현대차의 임금총액이 많은 건 연간 노동시간이 2070시간(무파업 기준)에 달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1360시간에 불과하다. 회사는 잘못 계산한 것이라고 펄쩍 뛴다. 서로 수치를 내놓고 비교하자고 제안했다.

현대차가 해외로 안 나가는 것은 울산공장의 인건비가 아직 낮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울산공장에는 25~30년 경력을 지닌 세계 최고 수준의 숙련인력들이 일한다. 현대차는 2000년 이후 국내공장 대신 해외공장만 지었다. 미국은 통상 문제 때문에 현지공장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 중국과 인도는 투자 유치를 위해 땅도 주고 세금도 깎아준다. 특히 중국은 수입차에 대한 관세도 높아 현지공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공장의 경쟁력이 떨어져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다.”

―고용보장과 회사 경쟁력 제고를 위해 노조가 할 일은?

“회사는 두가지를 요구한다. 첫째는 차를 적기에 생산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한쪽은 주문이 밀려 일손이 부족한데, 다른 쪽은 사람이 남아도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공장 옮기는 것을 싫어한다. 인간관계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회사는 인력 투입 관련 협의가 잘 안 되면 납기를 지킨다는 이유로 인력을 강제로 투입하며 밀어붙인다. 노조 대의원은 반발해 컨베이어벨트를 멈춘다. 회사는 징계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고소·고발한다.

이런 일들이 큰 사건만 따져도 공장마다 매년 서너건씩 발생한다. 노사 모두 잘못이 있다. 단체협약에 신차 투입, 자동화, 신기술 도입 등으로 고용에 영향을 미칠 때는 노사가 공동으로 심의·의결하도록 돼 있다. 새로운 모델에 대한 승인이 나면 설계에 들어가는데, 회사가 노조에 관련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생산시점이 닥치면 인력 상황을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당연히 현장에서는 난리가 난다. 노조도 평소에 제대로 정보 요구를 안 한다. 회사가 준 정보를 토대로 면밀히 검토해서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지난 30년간 그러지 못했다. 회사의 얘기는 앞으로 적기 생산이 어려우면 신차는 해외에서 만들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노조 때문에 차를 못 팔고 해외로 나간다는 얘기를 안 들으려면 힘들어도 적기 생산을 맞춰주자고 대의원들을 설득했다. 그래서 요즘은 지난해와는 달리 현장에서 큰소리 없이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회사도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 신차 승인이 나면 고용에 미칠 영향을 미리 검토할 것이다. 노사 간에 ‘맨아워’(한 사람이 1시간 동안 일하는 노동량)에 대해서도 약 30% 정도 차이가 난다. 같은 일감에 대해 회사는 적은 인력 투입으로도 할 수 있다고 하고, 노조는 그 인력으로는 부족하다고 맞선다. 노조 안에 ‘맨아워 평가 매뉴얼’을 만들려고 한다. 또 시장상황 변동 같은 합당한 이유나 근거가 있을 때는 맨아워 변동에 관해서도 협의할 것이다.”

―회사의 두번째 당부는 무엇인가?

“품질 향상을 위한 협조다.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실수를 할 수 있다. 회사는 이전부터 품질검증 장비를 도입하자고 했지만, 노조가 감시 기능을 이유로 반대했다. 리콜 사건을 조사해보면 80%는 설계 등 구조적인 문제, 15%는 부품 문제, 5%만 작업자 실수로 나온다. 하지만 회사가 품질이 중요하다고 하니 협조할 생각이다. 외국공장도 대부분 품질검증 장비가 있다. 대신 품질검증 장비에 감시 기능이 있는지 점검할 계획이다.”

 

―회사도 분명히 바꿔야 할 부분이 있을 텐데.

“노조를 대등한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고, 정확한 정보를 줘야 한다. 그동안 회사는 노조를 안 믿고, 무조건 감추려 했다. 개인적으로 현대차 경영진의 능력을 비관적으로 본다. 자동차산업이 급변하고 친환경차의 전망은 불확실한데 경영진은 10조원이 넘는 거액으로 한전 부지를 인수하는 부동산 투기를 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미국의 전장업체인 하만을 인수해서 자동차업종에 진출했다.

현대차는 한전 부지 인수 충격으로 인해 날개가 꺾이면서 최근 3년간 의사결정을 거의 못 했다. 고객 트렌드를 못 맞추고, 신차를 제때 공급하지 못했다. 미국 소비자의 60% 이상이 에스유브이(SUV·스포츠실용차)를 선호하는데, 현대차는 해당 차종이 고작 3개에 불과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들이 에스유브이를 찾는데 승용차만 팔려고 했다. 주가는 반토막 나고, 현대차에 대한 안티 고객은 늘었다. 뒤늦게 새로운 차종을 개발해서 미국 시장에 투입하고 있지만 이미 늦지 않았나 싶다. 중국 지리자동차는 기술에서 강점이 있는 볼보자동차를 2조원에 인수했다.

한전 부지 인수할 돈이면 볼보 같은 회사를 5개 인수할 수 있었던 셈이다. 경영진의 한순간 판단 실수가 위기를 초래했다. 그래 놓고 차 안 팔리고 실적이 악화된 책임을 노조에게 돌리고 있다. 조합원들 해외연수 지원, 체육대회 지원(1인당 3만원), 체육용품 공급을 중단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고전했지만 (중국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에) 성과급을 상당히 지급했다. 경영은 어렵지만 미래를 위한 격려 차원이라고 하는데, 왜 국내에서는 못 하나.”

―총수의 리더십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건강이 예년 같지 않고, 의사결정에 큰 문제가 생기고 있다. 자동차시장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데, 시간이 늦어지면서 현대차가 치명적 타격을 받고 있다. 경영승계를 이왕 할 거면 빨리 하는 게 좋다.”

지난 2월5일 경기도 고양시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넥쏘 미디어 익스피리언스 데이’ 행사에서 공개된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 
지난 2월5일 경기도 고양시 ‘현대 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넥쏘 미디어 익스피리언스 데이’ 행사에서 공개된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  ⓒ현대차

 

 ―현대차 최고경영진도 사석에서 이대로 가면 10년 안에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걱정했다고 하는데.

“나는 현대차 미래를 대단히 비관적으로 본다. 최근 신차 개발 이후 물량공세를 펴고 있지만 매우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회사가 4~5년 안에 구조조정 얘기를 꺼낼 가능성이 크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서 큰 위기를 맞았다. 현대차의 3세 경영은 어떻게 전망하나?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일감몰아주기로 수조원의 이익을 얻었다.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면 다단계 하도급을 이용한 통행세 수취, 불법적인 비정규직 고용은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대국민 선언을 해서 아버지 세대와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고급차 개발 경쟁보다는 고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을 과감히 선언해야 한다.”

―자동차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사회적 협의체를 제안했는데.

“지금 자동차산업에는 누구도 감당하기 힘든, 어느 일방이 책임질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나게 큰 변화가 닥치고 있다. 이는 혼자서 책임질 일도 아니고,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도 없다. 노사가 공동으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

정부도 할 일이 많다. 전기차 시대가 오면 완성차뿐만 아니라 중소 부품업체들도 위기를 맞으면서 대규모 해직 사태가 닥칠 수 있다. 독일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일자리 보호 대책을 미리 세우고 있다. 전기차와 수소차의 경우 일본, 중국보다 충전소 같은 인프라도 모자란다. 노사 간 이견이 생기면 정부가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북유럽 국가들은 이미 2025~2030년 이후에는 가솔린을 사용하는 화석연료차 판매를 금지하고, 전기차 등 미래형 자동차로 전환한다고 발표할 정도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산업에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될까?

“전기차는 악마의 신기술이다. 적자가 예상되고, 엔진과 변속기 공장이 사라지고, 인력은 최대 70% 줄어든다. 미리 고용보장이 가능한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국내 생산물량을 확보하려면 한국이 현대차 신차 생산의 글로벌 허브가 돼야 한다. 국내에는 연구소가 있고 최고의 숙련인력이 있으니 최고의 신차를 만들 수 있다. 해외시장에서의 리콜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러면 노사 간에 타협점이 나올 수 있다.

국내에서 적기 생산이 가능해지면 국내에서 차를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4~5년 뒤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쓰나미가 몰려올 것이다. ‘한국지엠의 오늘’이 ‘현대차의 내일’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자동차산업의 노사정 대화가 한국 사회 전체의 사회적 대타협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자동차산업은 직간접적인 고용인력이 18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노사정 대화의 파급 효과도 엄청날 것이다. 정부는 처음부터 너무 큰 그림을 그리거나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자동차산업에서 먼저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노사정 대표자회의도 길이 열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노동운동 30년 만에 현대차 노조 지부장을 맡았다. 정년까지 3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가장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원래 정년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사람이 나서면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스스로 ‘돈키호테’라고 부른다.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라는 가공인물을 내세워 중세의 낡은 체제를 깨고 민중을 각성시키려고 했다. 나도 노동운동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내가 정의로운 노동운동, 노조의 사회적 책임과 연대를 강조하는 것은 돈키호테와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조선 건국에 핵심 역할을 한 정도전은 혁명에 성공하려면 대의명분과 혁명 세력의 도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운동의 대의명분은 낡은 기득권 세력의 부패와 타락을 개혁하는 것으로 확보할 수 있다. 관건은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도덕성을 갖추고,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잘 먹고 잘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대공장의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적게 받고 장시간 노동에 착취당하는 다른 노동자들을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정의로운 노동운동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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