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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을 생각하며

무한도전은 내 10대와 20대의 보고였다

ⓒhuffpost

내 기억 속 첫 무한도전은 차승원이 출연한 연탄특집이었다. 엠넷에서 이미 닥터 노의 즐 길거리로 (케이블) 네임드가 된 노홍철과 원래 좋아하던 개그맨 정형돈이 나와서 봤는데, 미친 개꿀잼이었다. 아마 지루하디지루한 큰집에서 봐서 더 그랬을 테다. 

지리멸렬한 외고 입시를 함께한 것도 무한도전이었다. 농촌특집, 형돈아 놀자 특집 다 기억난다. 요즘도 POOQ에서 과거 무한도전을 볼 때마다, 그때의 나를 추억하곤 한다. 의좋은 형제에서 정형돈이 건강이 좋지 않은 박명수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 때, 부모님과 할머니를 걱정하던 내가 생각났다. 지금은 후레지만 ㅠ

ⓒMBC

힘들던 고3 생활은 무한도전의 봅슬레이 특집과 함께했다. 에이스가 다 부상으로 나가떨어진 뒤, 박명수와 정준하가 해낸 모습에 감동했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들이 해내는 모습에 받은 감동이 내 원동력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수능 생활 말미엔 쩌리짱의 김치전이 있었다. 이런 시발. 욕하면서 봤다. 

매해 기억나는 특집이 있다. 시작은 복싱특집이었다. 누가 이겼고 누가 패했는지 보여주지 않는 복싱특집의 연출은 수능이라는 작디작은 전쟁을 끝낸 내게 작은 감동을 주었다. 최선을 다한 사람에 대한 예의를 배웠다. 프로레슬링과 텔레파시도 빼놓을 수 없다. 쩌리가 에이스가 되던 프로레슬링 특집. 재수하던 친구가 텔레파시 특집을 보며 우정에 대해 생각했다던 싸이월드 다이어리가 아직도 생각난다. 그편 덕분에 조금이나마 친구에게 연락할 수 있었다. 

 

ⓒMBC

안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오호츠크해 특집, 배를 잡고 웃었던 짝꿍 특집과 명수는 12살 특집, 후속이 궁금했던 탐정사무소편, 가요제 중 최애인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무한상사도 빼놓을 수 없다. 멤버는 꾸준히 바뀔지언정 내 삶과 무한도전이 함께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난 무한도전을 보려고 pooq을 결제했다. 

빅뱅의 2008년 라이브 앨범 중에, 지드래곤이 이렇게 말한다. “2008년도 갑니다”. 

요즘 무한도전을 볼 때마다 그 부분이 떠나질 않는다. 이제 무한도전도 끝나는구나. 10대 초반에 만나 20대 후반에 헤어지게 생겼다. 사실 아직까지 끝나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H.O.T.가 해체하고 원더걸스가 해체할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뭔가 아련하다. 스타크래프트는 아프리카에서 부활했지만, 무한도전이 저 멤버 그대로 부활할 확률은 너무나 낮다. 

ⓒMBC

쉼표 특집이었나. 유재석이 무한도전을 처음 시작할 때가 30대 초반이라고 말했던 부분이 있다. 그때 하하가 ”형은 그때부터 계획했어요?”라면서 무한재석교를 시전하는데, 이런 끝도 알고 있었을까. 어느 순간 무한도전이 늙었고, 그 끝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멤버들도 알았고 시청자들도 알았을 거다. 

유재석이 외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울컥했다. 누구는 그깟 예능이라고 말하겠지만, 무한도전은 내 10대와 20대의 보고였다. 그냥 재밌던 예능이 아니라 당시의 나를 기억할 수 있던 예능이었다. 내 10대와 20대의 기억이 담긴 예능이었다. 내 추억과 삶을 반추할 수 있던 예능이었다.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이랄까. 

‘끝까지 힘차게’라는 말이 이렇게 슬프게 들릴 줄 몰랐다. 오랜 친구가 되어주어서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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